* 본지는 최더함 박사(Th.D. 바로선개혁교회 담임목사, 개혁신학포럼 책임전문위원)의 논문 ‘구원론’을 연재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 24)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롬 1:18)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엡 2:16)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
1. 사도들의 복음전파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후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함께 계시다가 승천하기 전에 제자들에게 복음전파의 지상명령을 주셨습니다. 대표적인 구절이 마 28:19~20과 행 1:8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 말씀에 따라 사도들은 온 세상으로 흩어져 주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복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주님의 십자가였습니다. 넓은 세상 어디를 가든 그들은 십자가를 지고 갔습니다. 훗날 사도들이 지고 간 십자가는 가톨릭교회의 여러 상징물들이 되어 여러 종류의 십자가로 변형되었습니다. 이후 십자가는 불행히도 여러 종파의 상징물로 전락했습니다. (그림을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현대인들에게 십자가는 하나의 상징물이거나 장식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첨탑으로 세워진 십자가는 그나마 봐줄만 합니다. 어두운 밤에 십자가의 불빛을 비추므로 세상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살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은 여전히 필요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 거룩한 십자가가 요즘 사람들에게서 어떻게 사용됩니까? 젊은 여자들의 목걸이용으로 십자가가 전락하였습니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꼭대기에서 불을 밝히는 상징물로 사용됩니다. ‘비아 돌로레사’(십자가의 길)를 강조하며 실제로 십자가 모형을 만들어 그것을 지고 산길이나 언덕길을 올라가는 퍼포먼스를 선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이는 실제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실험을 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악령을 쫓는답시고 얼굴 앞에 십자가 모양의 성호를 그어 십자가의 마술적 능력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아직도 행세합니다. ‘검은 사제들’ 같은 영화들이 버젓이 방영되면서 십자가를 하나의 주술적 도구나 무기로 오인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십자가 퍼포먼스가 발흥하고 십자가의 참된 정신이 사라지면서 십자가의 참된 능력도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죽음의 십자가’가 화려한 장식물이 되었을 때 십자가의 능력은 사라진 것입니다. 교회는 십자가의 능력으로 세워진 하나님의 진리의 등대입니다. 이 등대의 불빛이 온 세상에 비추일 때 세상은 구원의 희망을 가지게 됩니다. 구원에 대한 희망이 사라진 곳이라면 이미 그곳은 죽음의 땅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점점 교회가 십자가의 능력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전기로 만든 불빛은 화려한데 참된 복음의 빛이 비추어지지 않는 껍데기만 살아있는 교회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누가 이런 교회를 살아있다고 말하겠습니까? 누가 이런 교회에서 새로운 생명이 탄생한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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