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로부터 멀어지고 영적 침체를 경험할 때 성도는 온전한 판단을 하지 못하고 사람의 눈으로만 세상의 일들을 바라보게 된다. 그 때 다시 신앙을 회복하고 믿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해야할까? 저자 이인호 목사(더사랑의교회 담임)는 영적 침체 속에서 믿음의 회복을 경험하게 하는 것은 사람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이 책을 통해 보여준다.
특히 ‘룻기’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이 택하신 가정 속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고난 가운데에서도 인애와 헤세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섭리와 보살핌을 경험하게 한다. 나아가 룻기에 나타난 모든 사건들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의 모범이 되시는 예수님을 드러내고 있음을 깨닫도록 한다.
저자는 책 속에서 “한 집안의 가장인 엘리멜렉은 큰 결단을 내렸다. 흉년으로 더 이상 먹을 것을 얻지 못하게 되자 유다 베들레햄으로 떠나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들이 가기로 한 곳이 모압 지방이라는 데 있다. 모압은 우상숭배와 배신의 역사로 이스라엘 총회에서도 거절된 지역이었기에 하나님을 섬기던 엘리멜렉 가정이 발을 들여놓아서는 안 되는 곳이다. 그런데도 그는 이주를 결심하였다. 왜 이런 결단을 내리게 되었을까? 모든 실패의 출발은 해석의 실패에서 시작된다. 엘리멜렉은 극심한 흉년이 닥치자 좀 더 풍요로운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대로 있으면 가족이 망할 것 같은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간? 고린도전서는 사람이 감당할 시험밖에는 당한 것이 없다고 단언한다. 하나님은 미쁘셔서 우리가 감당하지 못할 시섬 당함을 허락하지 않으시고 또 시험당할 즈음에 피할 길을 내주시어 능히 감당하게 하시는 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시험을 당할 때면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는 어떻게 문제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살필 수 있을까?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가능하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그 말씀을 오늘 내 삶에 비추어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귀를 기울일 때 하나님은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주시고 그 말씀이 내 삶을 해석해 주는 은혜를 경험한다. 우리 삶에서 문제가 해석되면 이제 더 이상 문제는 우리를 괴롭히지 못한다”고 했다.
이어 “가나안 땅은 그리스도 안에 들어온 우리의 위치를 상징한다. 예수님 안에서 우리 가정은 하나님이 돌보시는 은혜를 얻는다. 예수님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가정은 항상 하나님의 눈이 살펴보시는 은혜 안에 살게 된다. 이것이 그 땅의 의미요, 예수님을 믿는 가정의 은총이다. 왜 하나님이 돌보시고 지켜보시는 그 땅에 흉년이 온 것일까? 왜 이렇게 거대한 시련이 온 것일까? 하나님이 주무시기 때문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계시지 않기 때문일까? 1절은 그 이유를 추정하게 된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이 문제는 바로 사사 시대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성경은 사사 시대의 특징을 단 한 줄로 설명한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여기서 왕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림, 다윗 같은 왕이 없었다는 의미이다”고 했다.
그러면서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자기 소견대로 마음껏 죄를 범했다. 이런 흉악한 시대를 향해 하나님께서 심판의 칼을 꺼내신 것이다. 그렇다면 흉년을 통해 하나님은 어떤 메시지를 주시고자 하셨을까? 그것은 왕이신 하나님의 통치 아래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흉년이 없는 모압 땅은 엘리멜렉에게 큰 유혹이었을 것이다. 그는 분명 잠시 흉년을 피하면 된다는 계산을 세웠을 것이다. 하지만 모압 땅은 어떤 곳인가? 모압은 룻이 두 딸과 근친상간으로 출생한 아들 중 하나에서 시작된 족속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음란에 빠지게 한 바 있었다”고 했다.
끝으로 저자는 “하나님은 이 흉년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이 왕이신 하나님께 돌아오길 원하셨다. 그런데 어리석게도 엘리멜렉은 눈앞의 풍요에 눈이 멀어 하나님의 통치 밖으로 넘어가 그모스 신의 땅으로 갔다. 성경은 그의 죽음의 이유를 명확하게 밝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심판이 따랐던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며 “성경은 보아스를 낳은 자로 ‘라합’을 지목한다. 그가 가나안 정복의 초기 사람임을 감안하면 이때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땅을 분배받고 정복하는 사명을 실행해야 하는 때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엘리멜렉은 흉년이 들자 자신이 분배받은 땅을 버리고 떠났다. 이는 사명을 저버린 중범죄가 아닐 수 없다. 그의 행동은 오직 경제적 원리만이 삶의 전부라고 고백한 것과 같다. 신자는 먹고살라고 부름받은 사람이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신앙이고 사명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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