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은 목사(지구촌교회 담임)가 31일 지구촌교회 분당 부활주일 찬양예배에서 ‘나는 부활을 믿는가?’(고린도전서 15:1-11)라는 제목으로 설교했다.
최 목사는 “매년 고난주간과 부활주일을 묵상하면서 어느 목회자가 ‘부활은 세상의 불공정해 보이는 삶에 대한 유일한 해답이며 절망을 느끼는 오늘 다시 일어나 내일에 대한 소망을 갖고 살아나가게 하는 유일한 구원의 통로이다. 그 부활의 첫 주인공이 바로 예수님이라면 말이다’라고 정리했는데 이것은 저의 고백이기도 하다”며 “한국 사회는 유난 떨면서 집을 사고, 노년을 준비해야 하는 치열한 경쟁 사회이다. 무엇 하나 쉽지 않은 대한민국의 우리는 유난 떠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이런 삶에 많은 사람이 지쳐있고 피로에 젖어있으며 우울감이 팽배해있다. 그리고 저마다 마음 한가운데 ‘잘 살아야 할텐데’라는 특유의 간절함이 있다. 특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그 간절함이 인생의 주관자 되시는 하나님께로 향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는 삶에 대한 간절함, 신앙에 대한 간절함이 있다. 우리가 그렇게 치열하고 간절하게 사는데 새벽부터 일어나서 자녀들을 깨우고 비몽사몽 한 상태에서 학교, 직장으로 가야 하는데 만약에 이렇게 사는 것이 인생의 끝이라면 그것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만약 우리 인생에 다시 사는 기회, 두 번째 기회가 없다면 우리의 삶에 대한 치열함이 그리고 열심히 선을 추구하는 것이 어떤 의미 있을까? 아무도 우리의 삶의 선과 악을 심판하지 않고 판단해 주지 않고, 격려해주지 않고, 아무도 우리 인생의 분명한 목적을 설명해주지 않는다면 살아가는 의미가 없어진다. 여기에 대한 분명한 답은 성경에 있다”고 했다.
최 목사는 “성경은 부활을 이야기 한다. 부활은 다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에게 있어 죽음은 끝이 아니라 다시 사는 것이며 이를 통해 오늘을 의미 있게 해주고 내일을 살아갈 소망을 제시한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함께하시고, 억울함을 갚아주시고 악을 벌하시며 심판과 구원을 가져오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는 모든 인간의 딜레마는 자신의 기준에 의해서 세상에 대해서 정의와 심판을 원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구원과 은혜를 원하는 것이다. 인간이 이렇게 너무나도 이중적인 잣대를 가진 이유는 바로 우리 스스로가 다 죄인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심판을 사회에는 정의를 그리고 나에게는 사랑과 은혜를 바라는 것은 이중잣대이며 이것이 다 우리 안에 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분의 잣대에 의해서 공평한 세상을 만드셨고 하나님의 잣대로 공평하게 모든 인간을 보시면 심판받을 수 밖에 없다”고 했다.
이어 “성경 말씀처럼 우리를 하나님의 잣대로 평가한다면 우리는 다 죄인이다. 그리고 그 결말은 멸망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 하신 방법은 십자가의 은혜이다. 십자가의 은혜로 죄의 결과, 죽음을 맞이하는 모든 인류를 향하신 하나님의 방법은 구원을 제시하는 것이었으며 바로 예수님을 십자가의 형벌에 내던지신 것이었다”며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데 ‘만약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꼭 그렇게 아들을 십자가의 끔찍한 죽음에 내어 주셔야만 했는가’라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현실은 그 십자가는 내가 죽었어야 하는 자리이다”고 했다.
최 목사는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이야기한다. 그래서 죄인이 용서받을 길을 활짝 열어둔 것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이라고 이야기한다. 니고데모가 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와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물어봤을 때 주님께서 그에게 요한복음 3장 16절 말씀을 해주셨다. 이 말씀의 의미는 인생의 의미가 무엇인지, 부활하고 살 수 있는 건지에 대한 질문에 대한 답이다. 이는 하나님이 니고데모를 너무나도 사랑하셔서 예수님께서 그를 대신해 십자가에 죽을 것이라는 것이 예수님의 답변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건 말도 안 되는 답변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우리 인간이 죄인이기에 그냥 가볍게 용서하시면 안 되나 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악과 불공평에 대해서는 정의를 원하고 나의 죄와 허물에 대해서는 은혜와 용서를 원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의 기준이 맞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방법은 그런 이중적인, 삼중적인 잣대를 가지고 있는 모든 죄인을 위해서 자신의 아들을 우리가 맞이해야 할 십자가의 죽음에 던지는 것이 우리에게 보여주신 사랑이다. 십자가는 인간의 구원을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사건이었다”며 “기독교 신앙에 있어서 십자가 사건 만큼 쌍벽을 이루는 중요한 사건이 있는데 바로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신 사건이다”고 했다.
최 목사는 “사도 바울은 본문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라고 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주님이 부활주일 새벽에 부활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구약 성경이 이미 예언하고 있었던 하나님의 계획하심이었으며 십자가 사건, 부활의 사건은 우연히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는 이야기다”며 “이것은 분명한 필요에 의한 하나님의 오래된 구원 계획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사건은 복음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이다.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기독교인들이 이야기하는 복음, 복된 소식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우리는 주저없이 하나님의 아들이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은 사건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십자가의 복음이 핵심이라면 부활이 복음의 완성인 것을 기억해야 하고 믿어야 한다. 부활이 우리의 복음에 있어서 이렇게 중요한 요소라면 우리는 부활에 대한 소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바울이 전한 것은 십자가의 복음이다”며 “살아가면서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마음속으로 혹은 입으로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선포하시길 바란다. 인생에서 절망을 만날 때마다 예수님께서 나를 살리시기 위해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다시 살리셨다는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길 바란다”고 했다.
최 목사는 “예수님은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40일 동안 금식하셨고 기도하셨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셨을 때 40일간 이 땅에 더 남으셨다. 그 40일간 사랑하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예수님께서 사역을 시작하셨을 때 제자들은 주님을 따랐지만, 십자가를 바라보면서 저주하고 떠났으며 두려워했다. 또한, 제자들은 메시아는 저렇게 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들은 부활하신 주님을 만났고 유대인들 앞에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셨다는 것을 담대하게 설교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지 않았다면 인간적으로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며 “주님은 제자들을 갈릴리호숫가에서 만나셨으며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제자들은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었다. 변화와 부활의 역사는 천국에서 이뤄지지만, 그 시작은 이 땅에서 내가 예수님을 만날 때 시작되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은 사람들을 분명히 변화시킨다. 십자가 부활의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 나타나는 현상은 자신의 죄를 뉘우치는 것이다. 주님이 나를 위해서 이렇게 돌아가셨는데 이제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도저히 받을 수 없는 은혜를 받은 내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에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라고 했다. 이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며 하나님의 거룩한 공의, 정의, 거룩한 의가 드러난다고 고백하고 있다. 우리가 십자가를 가까이 볼 때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동시에 나의 허물, 부족함, 연약함이 보이는 것이 정상이다”고 했다.
최 목사는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고백은 ‘주님 제가 죄인입니다. 부족한 존재입니다’라는 것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것이 되어야 한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는 고백은 ‘내가 하나님을 최고로 사랑합니다’라는 고백과 동일한 고백이다. 구원받고 나아갈 때 새로운 삶의 목표를 붙들고 살아가야 한다. 새로운 가치관이 내 삶 가운데 임하게 되는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나 같은 자에게도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그 소망을 주신 주님의 놀라운 소식을 받았을 때 인생 가운데 어떤 것보다도 비교할 수 없는 기쁨과 소망을 붙들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을 사랑하면 자연스럽게 예수님을 자랑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주님의 사랑은 명확한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내 삶속에서 흘러 넘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는데 그렇게 은혜를 주신 예수님을 자연스럽게 자랑할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동시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정말 사랑한다라는 것은 내가 가는 천국, 같은 장소에서 그 사람들을 같이 만나고 싶은 열망 가운데 있는 것이다. 죄인도 원수도 친구가 된다고 찬양하는데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얼굴 한 번 본적 없는 사람들을 위해서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날 것을 소망하는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하는 것이 구원받은 사람의 열매다”며 “복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순과 죄, 허물, 세상의 불의를 보시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셔서 십자가를 지게 하셨고 매달리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믿고 바라보는 자들을 향해서 예수님을 통해서 부활을 선물로 주셨다. 십자가와 부활의 소망 가운데 나아가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언드린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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