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하나님!
우리는 섬기는 쪽보다는 섬김받는 쪽을 택합니다. 희생이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고 하면서도 희생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의 높은 신분을 버리시고 이 땅에 낮은 신분으로 오셨습니다. 스스로 종이 되셨고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어떻게 십자가까지 지셨습니까? 너무나 어리석고 미련한 순종으로 보일 뿐입니다. 악한 사람 누가 네 오른쪽 뺨을 치거든, 왼쪽 뺨마저 돌려 대어라, 누가 너더러 억지로 오 리를 가자고 하거든, 십 리를 같이 가 주어라 하신 주님. “네게 달라는 사람에게는 주고, 네게 꾸려고 하는 사람을 물리치지 말아라”(마5:45)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시면서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예수의 십자가는 결코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십자가야말로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라고 했습니다. 우리 눈에는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는 십자가가 하나님에게는 능력과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사랑하시되 악한 자녀도 사랑하시고 선한 자녀도 사랑하시는 분입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 못나고 허물이 많은 자녀도 기다리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이런 사랑으로 우리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아서 우리도 온전하게 하옵소서. 원수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었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은 백성이 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것 같이, 우리도 완전하게 하옵소서.
사랑이 가장 기초적인 근본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였던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이제 이 사랑을 받은 우리가 누구를 원수라고 미워할 수 있겠습니까?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가장 근본적인 사랑입니다. 우리의 사랑은 원수를 사랑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분명히 어렵고 어리석게 보입니다. 하지만 정말 어리석고 미련하게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순종하여 바보가 되는 일을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옵소서. 이렇게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고 지키는 것이 어리석고 미련하게 보이지만 십자가를 향하는 아름답고 거룩한 어리석음이라는 이해할 수 없는 논리를 가지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만 따라 살게 하옵소서.
사랑의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찬송가 339장)
■ 연요한 목사는 숭실대와 숭의여대에서 교수, 교목실장으로 일했으며, 한국기독교대학 교목회 회장, 한국대학선교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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