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의 계기적 사건이 성경에선 아담과 하와의 타락이다. 그 후 등장하는 인물들은 갈등과 대립을 겪고 예언과 상징과 복선에 연결되며 절정을 향해 흘러간다. 절대자의 소설에서 참다운 사랑과 진정한 용서는 몇 마디 말로 대신하는 기계적인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죄의 용서와 은혜라는 사건은 눈물과 고난이 만들어내는 플롯을 통해서만 일어나고 하나님은 이 모든 과정에 개입하신다.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평소에 연습하지 못하는 신앙의 고민을 연습한다는 걸 의미한다. 소설에는 우리를 탁월하게 만들 무언가가 담겨 있다. 성실히 읽으면 소설은 감정적 혼돈을 통해 우리의 내면을 새롭게 빚어낸다. 오늘을 살아야 한다. 그것도 눈이 부시게. 그렇게 살려면 이해관계가 얽혔을 때 자기에게 ‘불리한’ 쪽을 선택할 수 있어야만 하고, 남들 눈에 사소하게 보여도 자기에겐 한없이 중요하게 느껴지는 가치관이 있다면 그걸 지킬 수 있어야 한다.
이정일 – 소설 읽는 그리스도인
“공교회 또는 보편적 교회는 무형”이다(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서 25:1). 그러나 “유형의 교회 역시 복음 하에서 공교회요 우주적 교회”이다(신앙고백서 25:2). 그래서 우리는 유형교회의 일원으로서 성도들이 진정한 믿음을 고백하는 무형교회의 성도로 세워져가는 것이다. 이 땅의 유형의 교회는 “더 잘 보이기도 하고 때로는 덜 보이기도 하였다”(신앙고백서 25:4). “지극히 순수한 교회라 하더라도 혼합과 오류에서 벗어날 수 없다”(신앙고백서 25:5). 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은 친히 하신 약속을 따라 성령의 역사로 성도를 모으고 보호하시는 일을 하신다(신앙고백서 25:3). 우리는 유형교회에 소속된 무형교회로 부름을 받은 자임을 기억하자. 교회를 교회답게 하는 것은 공교회(유형교회와 무형교회)를 세우는 일임을 기억하자. 청소년 목회현장과 현실은 그렇게 좋은 편이 아니다. 개 교회의 형편과 청소년 사역자들의 부재로 청소년들의 필요를 충분히 채워주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와 청소년들 사이에서의 소통의 문제도 발생한다. 또한 한국사회에 만연한 입시와 학업위주의 교육환경은 청소년들이 교회 내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친다. 부모들은 자녀의 신앙교육보다 학교생활과 사교육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더욱이 교회 내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를 암묵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이처럼 청소년 사역 현장의 어려운 여건 속에서 목회자와 교사의 역할은 어떠해야 하는지 여러 고민이 있다.
이현철 외 6명 – SFC, 청소년을 말하다: 교회편
나는 이 책에서 당신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한다. 오늘날과 같이 한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변함없이 신실하신 하나님에 관해 말하려고 한다. 하나님이 보이지 않거나 느껴지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에도, 변함없이 우리와의 약속을 지키시는 하나님을 의지하는 방법에 대해 당신과 이야기하려고 한다. 믿음을 대할 때 우리가 가진 흔한 오해가 여기에서 나타난다. 과연 우리의 문제가 믿음의 크기가 작기 때문일까? 아니다. 우리가 확인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우리가 누구를 믿느냐 하는 것이다.
해럴드 센크바일 – 하나님을 신뢰할 수 없을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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