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최근 교회 등 종교단체 내에서 직무상 지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한 ‘공직선거법’ 조항에 대해 평의 참여 재판관 8명 전원일치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목회자가 강단에서 특정 정당을 지지하거나 비판하는 발언을 했을 경우 직무를 이용한 선거운동으로 인정돼 처벌받을 수 있다는 점에서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
대통령선거, 국회의원 선거, 지방선거에 적용되는 ‘공직선거법’은 제85조(공무원 등의 선거관여 등 금지) 3항에 ‘누구든지 교육적·종교적 또는 직업적인 기관·단체 등의 조직 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라고 규정돼 있다.
이 법 조항은 본래 공무원 등이 법령에 따라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행위를 하지 못하게 함으로써 정치적 중립을 지키도록 하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런데 이런 공무원의 선거관여 금지 조항에 지난 2014년, 종교기관과 단체 관련 조항이 새로 추가됐다. 목회자가 강단에서 선거에 영향을 미치는 발언을 해도 처벌받을 수 있게 된 건데 성직의 개념을 폭넓게 해석한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성직자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표현의 자유에 정치적 중립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이 과도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법 조항이 위헌 시비에 휘말리게 된 건 한 제255조 제1항 제9호 처벌 규정 때문이다. 서울 송파구 소재 교회 A 목사가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교회 내에서 10여 명의 교인에게 특정 정당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다는 혐의로 고발돼 기소된 사건이 발단이 됐다. 1심 법원은 이 목사가 직무상 행위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한 혐의 등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항소심은 공직선거법 일부 조항이 개정돼 특정 혐의에 대해서는 면소 사유가 있다고 판단해 1심 판결을 파기하고 벌금 50만 원을 선고했다. 이후 2021년 9월 대법원에서 벌금 50만원이 확정됐다.
B목사도 2022년 1월 6일 신도들에게 당시 대선 후보로 나섰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비판하고, 표를 주지 말라고 했다가 벌금 15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들은 재판 중 목사의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조항이 헌법에 위배된다며 위헌법률심판제청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그 후 A 목사는 교회 등에서의 직무를 이용해 선거운동을 할 수 없도록 한 ‘공직선거법’ 제85조를 종교인에게까지 적용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 위헌 소지가 있다며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비슷한 사안으로 벌금형을 선고받은 광주 소재 교회 B 목사도 이 조항에 대해 같은 청구를 했다.
그러나 헌재는 ‘공직선거법’은 제85조 3항 규정에 대해 ‘합헌’이란 결론을 내렸다. “직무이용 제한조항은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입법목적은 정당하고, 위와 같은 금지를 위반한 사람에 대해 형벌을 부과하는 것은 입법목적 달성에 기여하는 것으로서 수단의 적합성도 인정된다”고 했다.
헌재가 이 법 조항에 위헌 소지가 없다고 한 이유는 성직자의 신분과 지위에 따르는 영향력 때문이다. “성직자는 종교지도자일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 사회 지도자로 대우를 받으며 신도에게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신도 조직의 대표자나 간부는 나머지 신도에게 큰 영향력을 행사할 여지가 있다”고 한 데서 드러난다.
헌재는 또 “공통된 신앙에 기초해 구성원 상호 간에 밀접한 관계를 형성하는 종교단체의 특성과 성직자 등 종교단체 내에서 일정한 직무를 가지는 사람이 가지는 상당한 영향력을 고려하면, 선거운동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위반한 경우 처벌함으로써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고, 종교단체가 본연의 기능을 할 수 있도록 하며, 정치와 종교가 부당한 이해관계로 결합하는 부작용을 방지함으로써 달성되는 공익이 더 크다”고 했다. 직무이용 제한조항이 과잉금지원칙을 위반해 선거운동 등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은 근거다.
헌재 측은 이번 결정의 의의에 관해 설명하며 해당 법 조항이 성직자 등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해 이들의 종교단체 내에서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일각의 반론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성직자 등의 종교단체 내 지위와 영향력을 간과할 수 없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게 합헌을 결정한 배경임을 밝혔다. 선거의 공정성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법 해석인 셈이다.
이번 헌재의 결정은 총선이 2개월여 넘은 시점에서 한국교회에 비상등이 켜졌음을 의미한다. 선거에 출마한 후보자들이 교회를 찾는 일이 빈번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냥 예배에 참석한 사실을 교인들에게 알리는 정도라면 몰라도 지지를 부탁하는 일은 하지 않는 게 좋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교회가 지켜야 할 공직선거법’ 지침 등을 발표했는데 이에 따르면 특정 후보나 정당에 대한 지지를 유도하거나 비난하는 행위, 교회 구성원이 정보통신망을 이용해 후보자에 관해 ‘허위사실’ 등을 유포하는 행위도 삼가야 한다.
헌재의 결정은 존중돼야 하나 선거의 공정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측면에서 앞으로 정치적 표현의 자유에 대한 논란은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다만 당장 총선을 2개월여 앞둔 시점에서 목회자들이 선거의 공정성 시비에 휘말리는 건 교회에 덕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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