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질그릇’이라 말하는 성경...실패 당연해
삶의 성패는 복음을 ‘제대로’ 아는 것

예수동행집회
유기성 목사가 청년예수동행집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청년예수동행집회 영상

유기성 목사가 4일 감리교신학대학교에서 ‘청년예수동행집회’를 이끌며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마태복음 11:28-30)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유기성 목사는 “내가 섬겼던 교회의 청년 대학부 회장이 이단에 빠진 적이 있다. 그 청년은 장로님 아들로 명문대 학생이었으며 대학부의 회장으로 일도 잘했었다”며 “그렇지만 그가 실제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알지 못하고, 복음의 영광을 알지 못했다는 것을 몰랐다. 나는 그 당시 성실한 것이, 교회를 열심히 섬기는 것이 믿음인 줄 알았다. 오랫동안 같이 있었으면서도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지 못했던 것이 너무 후회스럽다”며 운을 띄웠다.

이어 “대학 캠퍼스에 예수 믿는 사람이 적다는 것은 참 걱정이지만, 교회 나오는 학생들이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있는가는 더 심각한 문제이다. 이단에 빠진 청년들이 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복음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떄문”이라며 “이단에 빠지는 것도 문제지만, 자기 자신의 인생을 실패라고 여기는 교회 다니는 청년들이 너무 많다. 사회와 주위의 환경이 그렇게 몰아가기도 하고, 자기 자신이 이미 자신의 삶 의미있게 살 수 있다는 것을 대해 포기하는 청년들이 교회 안에도 있다”고 했다.

그는 “이것은 복음을 듣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믿지는 않는 것이다. 우리가 이것을 말씀을 통해 직접 확인해 봐야 한다. 세상의 방송국이 우리를 찾지 않는다. 대통령이 우리를 찾아주지는 않는다. 세상이 우리를 알아주지 않는다. 그런데 주님이 우리를 찾아주신다”고 했다.

유기성 목사는 “청년 정도가 되면 이미 많은 실패를 경험했을 것이다. 실패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자기가 계속 실패하고, 능력이 없고, 재주가 없는 것에서만 너무 마음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문제에만 너무 귀 기울이고 있다”며 “이것은 사실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성경은 우리를 질그릇이라고 말하고 있다. 질그릇이라는 말은 깨져도 아깝지 않은 그릇이다. 그냥 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가 그런 모습이라고 해서 이상할 것이 하나도 없다. 왜? 성경이 그렇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경은 사람을 ‘질그릇’이라고 말해...
질그릇은 ‘깨져도 상관 없다’는 뜻
실패과 무능력 속에 좌절하는 청년들...
우리의 실패...이상할 것 없어

이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따로 있다. 고린도후서에서 ‘이 세상에서 약한 자, 없는 것, 천한 것, 미련한 것을 찾아 택하신다’고 말한다. 우리 안에도 좀 못나고 유난히 많은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은, 기뻐할 일이다. 왜냐면 주님이 그들을 부르셨기 때문”이라며 “주님은 수고하고 짐진 자에게 '나와 함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만약 ‘주님, 나는 또 실패할 거에요’라고 말한다면 주님은 ‘괜찮다. 또 실패하자, 그런데 나와 함께 하자’라고 말하신다”고 했다.

그는 “우리가 친구들끼리 함께 놀러가서 게임을 하게 되면, 승패를 떠나서 재미있다. 그저 깔깔거리고, 웃고, 즐기는 것이다. 주님과 함께 인생을 다시 산다는 것은 세상에서 실패해도 재미있다. 그 비밀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살면서 우리는 부족하기 때문에, 안되고, 넘어지고, 실패하는 일이 있다”며 “중요한 것은 주님과 함께하면, 실패도 유익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성공한 자보다 실패한 자를 찾는다고 하신다. 왜냐면 그때만이 주님을 향해 마음이 열리기 때문이다. 모든 것이 갖춰지고 잘 되는 사람은 주님을 오히려 잃어버린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있는 자들은 좌절하고, 낙심하고, 실패하고, 자기 자신에게 무너진 자들이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실패하고 나면 백 마디 사람의 말이 위로되지 않는다. 사람들이 나를 위로해 주려고 던지는 말이 나를 더욱 비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위로받기를 거절한다'고 표현한다. 주님의 위로는 다르다.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말씀하신다. 만왕의 왕이신 온 세상의 구주가 하신 말씀이시다”며 “친구의 말이 위로되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나를 도와줄 능력이 없는 것이다. 부모님이 자녀를 위로하지만, 이것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왜냐면 결국 내가 그 일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님은 다르시다. 예수님 안에서는 실패조차 유익하게 된다”고 했다.

이어 “본문의 29-30절에,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가볍우니라’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나에게 주시려는 것은 마음의 쉼이다. 그 말은 내 인생은 끝났고, 결국은 실패자로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바꾸셔서, 다시 시작해 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이라고 했다.

유 목사는 “우리는 힘들고 어려워서 고통당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놀이공원에 가면 굉장히 무서운 놀이 기구를 탈 것이다. 놀이동산에 가서 회전목마를 탈 청년들이 있는가? 애들이나 탄다. 청년들은 난이도가 높아서 가슴이 졸리는 그런 기구를 줄을 서서 탄다”며 “사람은 힘든 것을 즐긴다. 사람은 죽을 것 같은 아찔한 것을, '놀이 기구'라고 명명한다. 우리는 힘든 것을 통해서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다. 안전하다고, 이길 수 있다고, 결국을 통과한다고 믿음이라면 오히려 더욱 스릴있는 것을 즐기는 것이다. 예수 믿는 즐거움이 거기 있다. 결국은 이기고, 능히 이길 수 있는 확신을 주시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집이 가난하고, 몸이 약해도, 공부를 많이 못해도 주님이 우리를 결국 이길 수 있다는 믿음이 있으면, ‘주님 나를 쓰십시오’라는 기도를 하게 된다. 누가복음에 주님이 베드로의 실패를 앞서서 기도하셨다. 주님은 베드로가 주님을 3번 부인할 것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를 위해 먼저 기도했기에, 베드로가 다시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런데 궁금한 것은, 왜 부인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으셨는가이다. 애초에 부인하지 않기를 기도하면 되지 않는가?”라고 했다.

초대교회 가장 위대한 사도인 베드로의 실패 전력...
극심한 핍박 속 많은 배교자들 위로했을 것

유기성 목사는 “주님이 베드로가 넘어진 후에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한 것을 보면, 베드로의 실패는 유익함이 있었던 것이다. 우리가 베드로의 실패가 주는 유익에 대해 우리가 다 헤아릴 수는 없지만, 몇 가지를 살펴보면 베드로는 초대교회에 가장 위대한 사도이다. ‘그의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겠다’는 신앙고백의 주인공이다. 초대교회에 베드로는 예수님에 버금가는 사도”라며 “그런데 그 베드로가 예수님을 3번이나 부인했던 사람이고, 심지어 저주까지 했던 사람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무서운 핍박 아래 있었다. 우리 시대의 핍박도 힘들지만, 초대교회의 핍박은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이다. 그래서 초대교회에는 많은 배교자들이 나왔다. 주님을 부인하면,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사람이 얼마나 약한가? 많은 배교자들이 있었을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근거가 무엇이었는가? 베드로다. 그리고 주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았는가? 그래서 배교자들이 하나님이 '실패자를 쓰시는, 완전히 믿음이 무너진 자를 통해 일하시는 것'을 깨닫는다”며 “‘주님이 다시 받아주실 수 없는자’, 베드로에게는 그 실패가 고통스러웠던 일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렇지만 주님은 그것을 쓰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할 수 있다. ‘우리의 실패를 쓰십시요, 저는 너무나 무너진 자입니다. 저는 너무나 무거운 짐으로 눌려 있습니다. 저는 너무 초라합니다. 믿음도 없고, 의지도 약하고, 아는 것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지만 하나님께 어떤 쓸모가 있을지라는 생각이 듭니다. 주님 그런 저를 쓰십시오’라고 말할 수 있다. 너무 놀라운 일”이라고 했다.

그는 “나는 내가 목사로서 스스로 ‘목회를 잘 할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교인들을 잘 목양하고 은혜를 끼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설교를 잘 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없었다. 말주변이 부족하고, 사람들 앞에 서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이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죽은 사람을 살리거나, 병든 자를 고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어떤 사람을 용서하거나 사랑하는 것’에도 부족함이 많았다”며 “나는 ‘하나님이 정말 나를 목사로 세우셨을까’에 대해 믿어지지가 않았다. 목사인 아버지가 장남인 나에게 목사하라고 한 것이지, 하나님이 정말 나를 택하여 그분의 종으로 삼으신 것인지도 믿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자신감을 잃어버린 영적 좌절을 회복한 말씀이 있었다. 요한복음 15장 5절(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이다. 나는 ‘나를 떠나서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말이 너무나 강하게 다가왔다. 내가 무엇이 부족하고, 왜 실패이고, 무엇이 문제인지를 명확하게 얘기하고 있었다. 내가 말주변이 부족하고, 능력이 부족하고, 목회의 은사가 없다는 것은 크게 문제가 안된다는 것”이라며 “주님을 떠났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했다.

“나 스스로도 목회자 부르심에 오랜 의문...
복음 경험하며, 그 이유 깨닫기 시작”

유 목사는 “목회를 잘하는 목사, 설교를 잘하는 목사가 있을 수 있다. 그런데 그것보다도 포도나무와 가지처럼 예수님과 하나 된 목사, 이것은 정말 놀라운 것이다. 이것이 내가 가장 사모하고 갈망하는 목표로, 이것이 명확해졌다”며 “그리고 그 은혜는 이미 이루어진 것이다. 앞으로 애를 써서 성취해야 될 일이 아닌 것으로 하나님이 이루신 것이다. 나는 믿고, 고백만 하면 되는 것이다. 나의 무능함, 열등감, 부족한 자신감 등을 이 말씀 하나가 완전히 바꾸어 놨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이것을 믿어도 이기지 못하는 죄와 반복하는 습관적인 죄들이 있었다. 그 가운데 나는 ‘속으로는 은밀하고 반복하는 죄를 지으며 겉으로는 아닌 척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그것이 아니였다. 주님은 저에게 왜 우리가 육신과 죄에 무너지는지를 알게 하셨다. 왜냐면 예수님이 이미 이루신 일을 진정으로 붙잡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과 함께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죽었고, 예수님의 부활의 생명과 함께 살고 있음에도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그래서 나는 로마서 6장 11절의 말씀을 가지고 계속 기도했다. ‘나의 옛사람은 죽었고, 부활의 생명과 함께 살았다’라고 계속 고백했다. 그러던 중에 한번은 너무나 비참한 내 자신의 좌절에 빠졌을 때, 주님께서 ‘죄의 종 노릇하는 너는 죽었음을 믿으라, 그리고 편안하게 자라’고 말씀하셨다”며 “그런데 이것이 쉽지는 않았다. 앞으로도 죄에 무너질 것 같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그런데 그때 내 마음에 ‘이것이 믿는 것이구나, 나는 도무지 할 수 없지만, 주님은 하실 수 있고, 그렇게 해 주실 것이다’라는 생각으로 믿고, 맡기고 편안히 잤다. 그날 처음으로 주님을 믿고 맡긴다는 것을 느꼈다. 나는 그전까지는 교회에 다니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다”며 “그런데 믿는다는 것은 약속을 의지해서 나의 실패와 무능함에 연연하지 않고, 주님이 나를 바꾸실 것을 나를 이기게 하실 것을 온전히 신뢰하고, 더이상 걱정하지 않고, 더이상 안달하지 않고, 편안히 맡기고 쉬는 것이라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유기성 목사는 “우리가 실패하고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나면, 우리 자아는 막 소리를 지르고 비명을 지르고 한다.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아주 어둡고 바람이 불고 무서운 곳을 간다면, 어른은 사실 이것이 무섭지 않지만, 어린 아이들은 무서워한다. 너무 두려워한다”며 “그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무서워하지 말라고 위로하며, 함께 가자고 격려해도, 아이들이 무서워서 떨며 한발자국도 내딛지 못한다면, 얼마나 안타깝겠는가? 그런데 우리가 꼭 그렇게 하고 있다”고 했다.

이어 “우리의 환경, 나 자신의 연약함, 계속 일어나는 여러 문제들 앞에, ‘됐다, 못한다. 나는 여기서 끝이다. 왜 나같은 자를 이땅에 나게하셨나요?’라고 말한다. 이것이 우리의 자아가 주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을 방해하는 것”이라며 “내 자아가 죽지 않으면, 주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가 없다. 주님은 내 안에 오셨지만, 나를 붙잡아 주실 수도, 한 걸음 더 나아가게 하실 수도, 승리하게 하실 수도 없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죽는 것이 힘들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죽지 않는 것이 힘든 것이다. 무거운 짐을 지는 것이 힘든 것인가? 아니면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는 것이 힘든 것인가? 무거운 짐을 주님께 맡기면 얼마나 편안한가. 이제는 주님을 믿고 맡겨야 한다. 나를 변화시키시고, 세우시고 말씀대로 살게 하시고, 능력으로 충만하게 하실 분이 주님이시라는 것은 얼마나 평안한 것인가? 마음이 쉼을 얻는 것”이라고 한다.

자아 내려 놓고, 주님께 맡기는 법 배워야
주님의 멍에는 쉽고 가벼워

유기성 목사는 “하루는 ‘주님 저를 도와주세요, 저를 붙잡아 주세요’라고 기도할 때,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 같았다. ‘더 이상 도와달라, 붙잡아 달라 기도하지 마라’라고 하셨다.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미 주님은 도와주고 계신데, 못 믿고 계속 그런 기도를 하니 주님이 얼마나 답답하셨겠는가? 그래서 습관적으로 ‘도와달라’고 하던 기도가 바뀌었다”고 했다.

이어 “‘주님 감사합니다. 찬양합니다. 나는 형편없는 실패자입니다. 그러나 나에게 오셨고, 생명이 되신 것을 믿습니다. 3번씩이나 주님을 부인하고 저주까지 했던 베드로를 쓰신 것을 믿습니다. 간음했던 다윗을 쓰신 것을 믿습니다. 저는 부족하지만 주님이 저를 쓰실 것을 믿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내가 죽고, 예수님이 나의 생명이심’을 찬양하기 시작했다. 그때부터 나의 혈기 성질, 연약함, 죄로부터의 승리를 경험하기 시작했다”고 했다.

그는 “청년들부터 이 말씀을 실제로 경험해야 한다. 다윗도, 요셉도, 다니엘도, 청년의 때에 하나님을 알고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기에 그의 삶이 위대하게 쓰임을 받았다. 주님과 하나되는 것은 절대로 도달할 수 없는 높은 표가 아니다. 이미 허락된 은혜이며 주어진 은혜이다. 우리는 ‘수고하고 짐 지은 자’”라고 했다.

이어 “우리의 주변에 사람이 없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왜 내 주변에는 제대로 된 사람이 없을까? 신뢰할 만한 사람이 없을까? 유능한 마음이 없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자신도 실패해 마음이 무너져 있는데, 주변에도 쓸만한 사람이 없는 것 같다. 그럴때 정말 주님을 바라봐야 한다. 베드로는 대 실패자였지만 위대한 사도가 됐다. 그 당시 예수님의 제자 중에 실제로 우리의 눈에 보기에 유능하고 쓸모있는 사람이 누가있었나? 한 사람 꼽는다면, 가룟 유다이다. 그런데 그는 은 30냥에 예수님을 팔아버렸다”라고 했다.

유 목사는 “우리 주님은 사람을 바꾸신다. 우리 주변에 쓸모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그런데 하나 조건이 필요하다.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고 분명하게 우리의 왕이시라는 것을 분명하게 고백하게 될 때에,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보잘 것 없는 사람이 깜짝 놀라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며 “우리 눈에 보이기는 잘난 사람 못난 사람 구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이 받기 전에 얘기다. 성령이 임하고 나면 무능한 사람, 못난 사람, 실패자가 없다”고 했다.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유기성목사 #청년예수동행집회 #예수동행집회 #베드로실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