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법안에 승인한 것을 놓고 논란이 쉬 가라앉지 않고 있다. 가톨릭 내부에서 교황의 ‘동성애 축복’ 허용에 반대하는 주교들이 나오는가 하면 기독교계는 교황이 촉발한 혼란에 선을 긋는 모습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 18일 바티칸 정책의 급진적인 변화를 설명하는 새로운 문서를 통해 사제들이 동성 커플을 축복하는 것을 공식적으로 승인했다. 비록 이번 교황의 승인이 결혼미사 등 가톨릭 교회 내 공식 예식엔 여전히 허용하지 않는다는 단서가 붙었지만, 동성애에 대해 1300여년 간 지속해온 바티칸의 금기가 깨졌다는 점에서 내부 혼란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로마 교황청은 지난 수 세기 동안 “결혼은 남녀간의 불가분의 결합”이라며 동성 결혼에 반대해왔다. 지난 2021년에 발표된 바티칸 신앙교리회에서도 “신은 죄를 축복할 수 없기 때문에 (교회가) 두 남자 혹은 두 여자의 결합을 축복할 수 없다”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그랬던 교황청이 동성애 커플에 축복을 허용하는 쪽을 돌아서자 지역의 가톨릭 주교들이 반발하는 모습이다. 카자흐스탄의 한 가톨릭 대주교는 가톨릭교회가 ‘성 이데올로기’를 전파한다고 비판하며 동성 커플에게 축복을 허용한 신앙교리성의 지침을 공식 거부했다. 가나, 말라위, 잠비아,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여러 나라의 주교들도 프란치스코 교황의 ‘동성애 축복’ 허용에 반대하는 입장을 명확히 했다.
바티칸의 지침에 반발하고 있는 게 비단 아프리카 주교들만은 아니다. 미국 내 많은 주교가 이 지침이 가톨릭의 공식적인 가르침을 바꾸지는 않는다는 점을 지적하고 나섰다. 상명하복의 전통이 살아있는 가톨릭교회 내에서 교황이 승인한 문제에 지역의 주교들이 이처럼 집단적으로 반발하는 전례가 거의 없는 데다 많은 주교가 자신들의 교구에서 동성애 커플에 대한 축복을 금지하겠다고 나오면서 가톨릭교회가 내분 양상으로 치닫는 분위기다.
교황의 ‘동성애 축복’ 승인이 가톨릭교회 내에서 이처럼 연쇄 혼란으로 이어지는 근본 원인은 하나님이 죄로 규정한 동성애에 대해 누가 감히 축복할 수 있는가 하는 데 있다. 이에 대해 가나 주교회의 의장인 매튜 크와시 쟘피 주교는 “교회는 동성애 커플 또는 혼외 성적 결합에 대해 축복할 어떤 권능도 갖고 있지 않다”며 “그것은 곧 신의 법과 교회의 가르침, 그리고 국내법과 우리 시민들의 문화적 민감성을 거스르게 될 것”이라고 일침했다. 그의 주장은 아무리 가톨릭교회를 통치하는 교황이라도 하나님이 규정한 걸 바꿀 권한은 없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교황의 이번 결정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건 기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의 아들인 미국의 프랭클린 그래함 목사는 교황을 향해 “그러한 ‘축복’이 당신을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크리스천포스트(CP)에 따르면, 그래함 목사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가톨릭 사제들의 ‘동성 커플 축복’을 승인했으나 교황을 포함한 우리 중 누구도 하나님께서 죄라 부르시는 것을 ‘축복’할 권리가 없다”라고 비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동성 커플 축복’을 공식 승인했다는 소식에 국내 교계는 이번 결정이 한국사회와 교계에 미칠 영향을 예의 주시하는 분위기다. 그동안 프란치스코 교황이 보여준 진보적 성향으로 볼 때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라면서 동성애·차별금지법과 싸우고 있는 한국교회에 미칠 파장을 차단하려는 의지가 읽힌다고 하겠다.
한국교회는 동성애와 성 소수자를 혐오하는 세력이란 일각의 비판 속에서도 동성애는 죄라는 분명한 원칙에서 흔들린 적이 없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씀에 입각해 죄에 빠진 한 영혼을 구하려는 일념으로 성 소수자들이 죄에서 돌이키도록 교화하고 권면해 온 것이다. 그걸 혐오·증오로 매도하는 것이야말로 매카시즘적 조작에 불과하다.
교황의 동성애자 축복 승인을 보며 한국교회가 걱정하는 건 가톨릭교회의 변화와 그에 따른 내분 양상이 아니다. 그보다는 젊은 세대들의 동성애를 바라보는 시선의 변화를 더 경계하는 눈치다. 가톨릭교회도 동성애를 허용하는데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인식이 바뀔 수 있고, 교리적으로 보수를 유지해온 가톨릭의 변화가 개혁교회에 뿌리를 둔 한국교회를 압박하는 상황으로 이어지지 않을까를 염려하는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그런데 이번 교황의 ‘동성애자 축복’ 승인을 보며 떨쳐버릴 수 없는 생각이 있다. 가톨릭교회 내에선 동성결혼 미사 등 공식적인 축복 집례를 하지 못하도록 하면서 교회 밖에서 동성애자를 축복하라는 게 과연 무슨 의미냐는 거다.
결혼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이란 대원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동성애자를 축복한다는 건 이론적으로나 실제로도 양립할 수 없는 문제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마5:37)고 하신 성경 말씀에 비쳐볼 때 입으로는 죄라고 하면서 그 죄를 저지르는 사람을 축복하라는 건 솔직히 ‘언어유희’에 불과하다. 교회는 성경을 떠나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