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신학회(회장 윤철호)가 최근 서울 광진구 소재 장로회신학대학교 세교협 2층 새문안홀에서 제51차 정기학술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최태영 박사(온신학대구아카데미 회장, 영남신대 명예교수)가 ‘죽음 내 부활: 비판과 응답’ ▲안윤기 박사(장신대 교양학)가 ‘하이데거의 죽음 이해’라는 주제로 각각 발제했다.
◆ 성도의 부활에 대한 3가지 견해와 이유
먼저, 최태영 박사는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은 성도(그리스도인)는 죽을 때 부활한다는 것, 성도의 죽음의 상태가 부활이라는 것을 의미한다”며 “부활에 대한 교회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역사의 마지막 날 부활(이하 마지막 날 부활)은 성도의 부활이 역사의 마지막 날, 곧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비로소 일어난다고 말한다”고 했다.
이어 “마지막 날 부활은 성도의 죽음의 상태를 잠자는 상태로 보든지(영혼수면론) 혹은 몸을 떠난 영혼이 낙원에 있는 상태로 보든지(영혼불멸론) 마지막 날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부활한 몸을 입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최 박사는 “영혼불멸적 부활론의 입장에 굳게 서서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 교리가 더 확산되는 것을 막으려는 움직임도 그동안 만만치 않게 진행되었음을 발견하게 된다”며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고 이 교리를 확립하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부정적으로 볼 일이 아니다. 새로운 사상이 교리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치열한 논쟁을 통하여 의심스러운 부분들을 해소시켜 나가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 교리에 대해 제기되고 있는 비판들은 먼저,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론은 성경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둘째로 죽은 자가 부활 상태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있다고 말하며, 셋째로 현세의 몸과 죽음 안에 있는 부활의 몸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넷째로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과 역사의 마지막 날 부활은 어떤 관계이며, 다섯째로 예수님의 부활은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과 다르지 않은지, 여섯째로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은 예수님의 부활이 첫 열매라는 것과 모순되지 않는지, 일곱째로 이미 부활한 성도는 예수님의 재림 때 어떻게 되는지, 여덟째로 죽을 때 일어나는 부활론은 천년왕국론과 충돌하지 않는지 등”이라고 했다.
더불어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 교리를 든든하게 세우려면 이와 같은 비판들에 대하여 성경 및 신학적으로 올바로 응답할 수 있어야 할 것”이라며 “성경적 근거는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비판의 분량도 가장 많고 또 가장 근원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성도의 부활에 대하여 대략 3가지 견해가 있다. 영혼불멸론적 부활론, 영혼수면론(영혼의 잠)적 부활론 그리고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론”이라며 “영혼불멸론적 부활론은 죽을 때 불멸의 영혼이 몸을 벗은 상태에서 역사의 마지막 날까지 기다리다가 그때 비로소 부활한 몸을 입음으로써 부활하게 된다는 사상이며, 영혼수면론은 죽을 때 영혼이 몸과 분리되지 않고 몸과 함께 잠자다가 마지막 날 몸과 함께 깨어나 부활한다는 사상이고, 희박하긴 하지만 각각 나름대로의 성경적 근거를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는 어느 부활론을 선택해야 좋은가”라고 했다.
이어 “당연히 성경적으로 그리고 신학적으로 가장 타당한 견해를 취해야 할 것이다. 또 만일 3가지 견해가 모두 성경적인 근거가 있다면 그래서 성경적 근거에 관한 논쟁에 승부가 가려지지 않는다면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좋은가”라며 “단연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을 선택하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 될 것이다. 그 이유는 죽음에서 일어나는 부활이 다른 부활론보다 확실히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아울러 “먼저, 성도의 부활에 대한 성경의 본문에 가장 일치하는 것이며, 둘째로 신학적으로 가장 타당하며, 셋째로 다른 견해에 비하여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가장 잘 나타낸다”며 “넷째로 다른 견해에 비해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바람직하고, 다섯째로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가장 잘 극복할 수 있으며, 여섯째로 죽음 때문에 마귀의 종노릇 하지 않게 하는 데 가장 적합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에서의 죽음 논의
이어서 발제한 안윤기 박사는 “죽음에 대한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 철학자)의 논의는 특히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1927) 제2부 제1장에 집중적으로 나온다”며 “하이데거의 「존재와 시간」은 존재의 의미를 물어 구명하는 존재론 저작”이라고 했다.
안 박사는 “「존재와 시간」 제2부 제1장에서 하이데거는 인간 현존재의 가장 고유한 존재 가능성인 죽음에 대해 논의한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현존재는 가능적으로 실존하는 존재자, 그의 가능성에 따라 자기 이해를 수행하는 존재자”라며 “그러나 동시에 현존재는 이미 그가 그 안에서 존재하는 세계에 내던져진 존재자”라고 했다.
이어 “‘현존재가 세계에 내던져졌다’는 것은 우선 현존재의 가능성이 이미 그가 항상 존재해온 세계 안에 주어진 가능성이라는 사실, 그리고 현존재가 분명 그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함축한다”며 “이제 현존재가 자신의 존재 이유가 아니라는 사실은 그가 자신의 근거를 스스로 놓아야 한다. 다시 말해서 자기 존재의 의미를 스스로 정초해야 함을 함축한다”고 했다.
또한 “죽음으로의 선구에서 고지되는 본래적 실존의 가능성, 가장 고유한 자기 자신이 되는 가능성은 바로 이러한 점, 즉 ‘자기 존재에 대해 자기 자신이 근거지어야 함’을 의미한다”며 “이러한 근거지움은 결단을 통해 일어나며 세계내부적 존재자들에 퇴락해 있는 채 스스로를 이해하는 현존재의 비본래적 자기 이해로부터 벗어나는 것이며, 그리하여 호기심과 잡담, 애매성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무엇보다도 세상 사람으로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스스로 자유로워지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이런 의미에서 죽음으로의 선구에서 고지되는 현존재의 본래적 실존 가능성은 세상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스스로를 고유한 자기 자신으로 근거짓는 가능성 자기 실존의 근거를 스스로 정초하는 가능성”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는 하이데거의 실존론적 죽음 이해를 ‘죽음’(Tod)이라는 단어로 현존재의 ‘종말에 도달한 존재’가 아니라 ‘종말을 향한 존재’ 곧 ‘죽어감’이라는 역동적 사태를 의미했다”며 “일상적으로 세상 사람은 그 현상을 외면하고 도피하고 은폐시키려 하나 현존재의 본래적 실존은 도리어 죽음으로의 선구를 결단하여 그 존재 전체성을 확보한다”고 했다.
아울러 “죽음으로의 선구는 현존재를 세계 내 존재자들로의 퇴락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자기 자신의 존재를 스스로 정초하게 한다. 현존재는 가장 고유하고 무연관적이며 결코 능가할 수 없는 가능성인 죽음의 확실성을 인정하고 그러한 죽음으로 선구할 때만 자유로울 수 있다”며 “그러나 이 자유는 현존재가 자기 자신이 되라 는 현존재에게 주어진 가장 준엄한 과제이기도 하다. 이 과제를 자기 스스로 떠맡는 자기 해방의 순간에만 비로소 현존재는 자유로울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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