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경을 왜 읽어야 하는가?

신동만 장로
신동만 장로

지금부터는 왜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알아보자.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가 죽은 후에 가나안 땅 정복을 앞두고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율법 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라 네가 형통하리라”(수1:8) 고 말씀하셨다. 성경을 읽고 행해야 할 이유다.

성경의 첫 장은 우리가 사는 세상이 어떻게 만들어 졌으며 누가 만들었는지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는지 명확하게 기록하고 있다. 성경의 주인공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이다.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말씀으로 만드시고 다스리며 통치하신다고 기록하였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자기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7) 심히 기뻐하셨다고 말씀하셨다.

인간사에 늘 문제와 사건과 크고 작은 일들이 있듯이 죄로 인하여 하나님이 창조한 사람이 타락한 사건이 일어난다. 인간의 타락이 극에 달하여 죄악이 관영하자 하나님은 엄청난 결단을 하신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6:5~8)고 말씀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노아의 홍수사건이 일어나고 홍수 이전과 이후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진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대로 모든 사람을 지면에서 쓸어버리시고 당대의 의인인 노아와 그의 가족만 구원하셨다. 노아의 후손이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다. 믿음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 하나님이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 믿음으로 순종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창12:2)고 말씀하셨다. 성경의 keyword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창조한 사람을 사랑하고 축복하고 인도하시는 말씀으로 가득 차 있는 비경이다. 성경을 읽어야 하는 이유다.

성경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인간사의 모든 문제와 우주 만물을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기록한 유일한 경(經)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는 하나님의 사람이며 선택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자들이다. 자녀이면 반드시 내 아버지가 누구며 어떤 분인지 알아야 하지 않겠는가? 성경은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기록한 책이기 때문에 성경을 읽으면 내 아버지가 누구신지 어떤 분인지 무엇을 원하고 좋아하고 싫어하시는지 얼마나 대단하신 분인지 알 수 있고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스스로 존재하는 분이다.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신 분이다.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며 이성과 감성을 초월하여 존재하는 분으로서 천지에 충만하신 분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아담과 이브를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신 이래 지금까지 하늘과 땅 어둠과 악한 영의 세계까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가운데 역사하고 있으며 이는 앞으로도 영원히 계속될 것이다. 하나님은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시대와 환경과 상황이 변하더라도 하나님의 때와 하나님의 방식에 따라 다양한 모양과 방법으로 역사하고 계신다. 주권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의 존재를 필자의 체험과 지혜와 지식을 동원하여 몇 마디 단어와 문장으로 하나님이 어떤 분임을 표현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임을 잘 알고 있다. 독자들도 성령 하나님께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인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글을 읽고 성경을 읽기 바란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아울러 지구상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각 자의 마음속에 내주하시는 성령님의 인도하심과 교통하심으로 체험한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와 각 자의 믿음에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해석하고 삶에 적용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정의하고 그 분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것은 중요하다. 각 자의 믿음이 다르기 때문이다.

믿음으로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나 새 생명으로 태어났다. 갓난아이로 세상에 태어난 것이다. 성장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다. 각 자가 성령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아 성경말씀과 기도와 행함으로 믿음의 삶을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따라 여전히 갓난아이로 머무르는 믿음이 있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고 때에 따라 하나님이 주시는 오곡백과를 먹을 수 있는 장성한 분량의 믿음이 있다.

갓난아이와 어린아이의 믿음이 다르고 장성한 분량의 믿음이 서로 다르다. 믿음은 유기체와 같이 자라고 변화한다. 청년시절에 장성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노년에 믿음이 소멸하는 경우도 있다. 초년 끝 발이 말년까지 이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주위 환경이 변하고 상황이 늘 변하기 때문에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것이 승리하는 길이다. 목회자도 그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아무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인 구원 즉 죄로부터 자유 함을 믿음으로 받지만 행함이 없는 믿음은 늘 갓난아이와 같다. 새 생명으로 거듭 났는데 아이가 자라지 못하고 사람구실을 못하면 부모가 얼마나 안타깝고 기가 막히겠는가?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사기,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2:1~2) 고 하였다.

다행스러운 것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늘 우리 곁에 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항상 말씀을 붙잡을 수 있다. 믿음은 말씀과 기도와 행함이 있는 각자의 삶의 결과다.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도하며 끝까지 믿음을 지키며 본을 보인 인물이 사도바울이다.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딤후4:7~8) 며 세상 끝 날까지 믿음을 굳게 지킬 것을 강조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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