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 급변하는 노동환경에 유연하게 대처하기 위한 전면적 교육개혁이 불가피하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이 공존하는 이 시대에는 노동과 임금에 대한 전통적 관점이 획기적으로 변화됨으로써, 전통적 고용 형태가 퇴조하고 임시직 일자리들이 대거 등장할 것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의 키워드 중 하나는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 개인의 취미나 재능, 경험 등을 토대로 기존 직장 개념에서 탈피하여 디지털 기기가 있고, 인터넷 연결만 가능하다면 어디서든 업무를 하는 신개념 직업군)이다. 현재 세대는 2017년경부터 디지털 노마드로 산다고 볼 수 있는데, 한 국가 안에 살면서도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 의사소통하고 주로 이메일로 업무를 수행한다. 특히 COVID-19 사태 이후 재택근무라는 새로운 근무환경을 접하면서 굳이 사무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 모여 근무해야 할 필요성이 희석되고 있다. 한곳에 정착하지 않는 것이 특징인 노마드는 물리적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인터넷만 연결되면 어느 곳에서든 근무할 수 있는 새로운 근무형태 패러다임을 추구한다.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 시대는 급변하는 노동환경으로 인해 평생 한 직장에서 일하기 힘들기 때문에 계속 새로운 직업을 찾는 ‘잡 노마드’(job nomad) 시대이기도 하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한 직업을 가지고 여러 세대가 먹고살았고, 산업사회에서는 한 직장에 근무하면서 평생 먹고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혁신적 신기술이 등장하고 산업이 새롭게 재편되며 변화의 속도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진 이 시대에는 과거의 패러다임으로는 살 수 없는데, 평생에 걸쳐 평균 5회 이상 직업을 전환하게 될 것이다. 더욱이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기술혁신의 급속한 진보로 인해 근로자가 평생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자신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중요한데, 그렇다면 시대의 흐름에 따라 여러 분야를 넘나들면서 변신할 수 있는 유연하고 적극적인 사람이 끝까지 생존할 수 있다. 이제 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 평생 먹고살던 시대는 끝났기 때문에 새로운 역량을 업그레이드하면서 평생 배워야 하는 시대이다. 자신에게 새로운 지식이 필요하다면, 학습하여 자신의 역량을 끌어올리고 학습 내용을 현실에 응용하는 능력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
미래학자 다니엘 핑크(D. H. Pink)는 자신의 저서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 새롭게 출현한 프리에이전트가 우리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에서 20세기에는 샐러리맨으로 대표되던 조직 인간이 사회·경제의 주체였다면, 21세기는 자유롭게 자기 삶을 조절하고 일하면서 여가를 즐기는 프리 에이전트의 시대라고 진단한 바 있다. 원하는 시간, 원하는 장소, 원하는 만큼, 원하는 조건으로 일하기를 원하는 현대인들에게 조직을 벗어나 자신의 의지대로 일하고 여가를 즐기며 살 수 있는 세상이 도래한다는 것이다. 혹은 ‘깃 워커’(gig worker)로 노동하며 살아갈 수도 있는데, 이것은 본래 재즈 연주자들이 임시로 팀을 만들어 공연한 데서 유래된 용어이다. 대다수 기업이 풀타임 정직원을 뽑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기 때문에 고용이 불안정해지는 상황 속에서 임시직 긱 워커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것은 향후 더 많은 이들이 독립형 근로자로서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디지털 잡노마드가 양산될 거라는 방증이다.
사실상 과거 전통적 농경사회에서는 대다수 사람이 깃 워커여서, 일이 있으면 일하고 없으면 쉬는 임시직 고용 형태가 다반사였다. 오늘날처럼 ‘9 To 5/6’의 근무 형태를 갖추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긱 경제’에서는 고용이 불안정하다는 단점이 있는데, 이것이 줄어든 노동자 보호에 대한 우려 또한 낳을 수도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한편 이것은 노동시장에 완전히 새로운 혁신의 바람을 일으킬 수도 있어서, 근로자들이 각자의 일정에 맞춰 가장 생산성이 높은 시간대와 장소를 선택해 업무를 탄력적으로 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긱 워커로 여러 가지를 시도하다 보면, 의외로 자신의 재능을 발견하여 자신에게 맞는 일을 찾아서 이를 전문화할 수 있을 것이다. 긱 워커가 디딤돌이 되어 자신이 원하는 꿈을 시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전통적 고용 형태가 사라지고 새롭게 급변하는 노동환경에서는 긍정적이고 유연하게 대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관건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4차 산업혁명 단일요인만으로도 엄청난 변수인데, 팬데믹이 합세하여 이 시대는 거대한 문명사적 변곡점에 서 있다. 4차 산업혁명과 COVID-19 팬데믹의 여파로 노동환경을 위시하여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여건은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급변하였다. 이러한 급변화는 교육 분야에서도 미래 준비와 적응을 위한 대전환을 요구하는데, 단언하면 문명 대전환기에 교육은 어떤 변화가 도래해도, 어떤 세상이 펼쳐져도 이에 잘 대처하고 적응할 수 있는 다음세대를 길러내야 한다. 필자는 21세기 대한민국의 주역인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육자 입장에서 막중한 책임감을 느낀다. 현재 청년세대가 직면한 위기를 바라볼 때, 문명사적으로 대전환하는 이 시대를 선도(先導·善導)하는 교육을 제대로 시행하지 못함으로써 청년들이 현실 적응에 실패함으로 인한 불상사라고 진단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대학에서 이뤄지는 교육과 21세기가 요구하는 인재 사이에 큰 간극이 있다는 사실도 통감하기 때문이다. 사실상 4차 산업혁명 단일요인만으로도 너무나 버거운데, 팬데믹이 합세한 위기 국면에 교육자들이 미래세대를 치밀하게 준비시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노동환경이 급변하는 4차 산업혁명의 가속화로 인해 대량 생산하듯 만들어내는 교육방식은 더 이상 작동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교육 시스템의 전면적 개혁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학교 의무교육은 인지능력 향상(지식 습득이나 지적 능력 개발)에 초점을 맞춘 교육에 주력하였다. 하지만 21세기 들어와 교육 전문가들은 인지능력 향상에만 주력하는 교육 시스템이 더 이상 유지 불가능하다면서 기존의 교육방식과 인재 개발에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AI시대에는 비인지 능력(공감력·소통력·인내력·집중력 등)의 강화가 미래 교육과 인재 개발의 핵심으로 자리 잡아가는데, AI가 인간의 인지능력 관련 영역을 가장 먼저 대체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한국의 교육문화가 시행하던 규격화된 사지선다형 문제에서 답을 찾는 교육에 대해 숱한 비판이 제기되었음에도 거의 시정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제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 시대가 도래한 이후로는 창의적으로 주관식을 풀어야 생존할 수 있기에 정답을 찾기가 어려워질 것이다.
이제는 스마트폰으로 모든 지식에 순간적 접근이 가능해지면서, 지식을 쌓는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이 아닌 정보를 활용하는 창의적 교육이 더욱 중요해졌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1970~80년대식 근면과 성실함만으로는 새 시대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왜?’를 질문하면서 남들보다 더 창의적이고 혁신적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기존의 모든 사안에 대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문제를 제기하고 발상의 혁명적 전환을 하면서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이 대세이다. 이를테면 유대인들이 하는 하브루타(Chavruta) 교육처럼 질문하고 생각하고 토론하여 비판적 통찰력을 기르는 교육을 한국의 교육문화에 적용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2023년 3월 방한한 미국 예일대 피터 샐러베이(P. Salovey) 총장의 말을 귀담아들을 만하다. 2013년 23대 총장으로 취임하여 10년째 예일대 혁신을 이끌고 있는 샐러베이 총장은 “챗GPT 시대 학생들은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 명확하게 의사소통하는 법, 지식을 융합하는 법 등을 배워야 한다”고 조언하면서 “AI가 인간의 비판적 사고를 대신할 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예전에는 많은 지식을 축적하는 지능으로만 교육평가를 했지만, 이제는 뇌의 영역을 다중적으로 쓰는 시대가 도래한 점도 주목할만하다. 하버드 심리학과 교수 하워드 가드너(H. Gardner)의 「다중지능: 인간 지능의 새로운 이해」는 인간의 지능이 서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여덟 개(언어지능, 논리-수학 지능, 시간-공간 지능, 음악 지능, 신체-운동 지능, 자연지능, 대인지능, 자기이해 지능)의 하위요소로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 지능은 AI가 따라 하기 힘든 부분이기 때문에, 남들과 차별화하고 기계와 경쟁하지 않으려면 다중지능을 개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평생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배우면서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 일찍이 앨빈 토플러(A. Toffler)는 “21세기 문맹은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잊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는 사람이다”라고 주장한 바 있다. 이는 급격한 변화가 몰려오는 4차 산업혁명과 팬데믹 시대에는 변화에 민감해야 생존할 수 있다는 경고이기도 하다. 금번 COVOD-19 기간에도 많은 사람은 무의미한 일로 허송세월했지만, 팬데믹이 종결되면서 이 기간을 어떻게 활용했느냐에 따라 개인과 사회마다 엄청난 차이를 보이게 될 것이다.
끝으로 교육개혁과 관련하여 첨언하면, 챗GPT의 등장으로 대학의 교육현장에 상당한 변화가 불어닥친 상황 속에서 향후 신학대학을 포함한 모든 대학들의 구조와 기능이 변경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이다. 이미 학생 수의 감소와 교수 역할의 변호, 산업 생태계의 변화로 대학 교육이 필요한지, 대학 학위는 유용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 시작하였다. 현재 대학에서 배울 수 있는 학문적 내용은 인터넷이나 AI의 도움으로 대학에 가지 않아도 어느 정도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추후 상당수 대학이 사라질 것이고, 남은 대학도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교육해야만 생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것은 신학대학도 비껴갈 수 없는 현실이다. 신학대학은 신입생 감소 문제가 일반대학보다 빨리 시작되었기 때문에 일반대학보다 빠른 구조적 개혁이 요구된다. 하지만 신학대학은 일반대학과는 달리 지식 전수가 주된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일반대학과는 다른 형태로 존속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신학대학은 신학 지식을 가르치는 곳에서 영적인 지도자를 양성하는 곳으로 변화할 뿐 아니라, AI가 대신할 수 없는 영적·정신적 가치를 선도해가는 교육의 장이 되어야 할 것이다.
3.3 고난과 역경에 긍정적으로 대처하는 회복 탄력성이 문명 전환기의 중요 관건이다.
4차 산업혁명의 특징은 디지털 초(超)연결을 향해 전력 질주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휴먼 커넥션(human connection)은 더욱 빈곤해지는 디지털 탈(脫)인간화 시대이기도 하다. 특히 팬데믹 장기화로 대인관계가 위축되고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면서 정신건강 문제가 급격히 대두되고 있다. 이때 가장 필요한 마인드가 바로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다. 회복 탄력성이란 자신에게 닥친 온갖 역경과 어려움을 오히려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 현실을 극복하는 힘, 밑바닥까지 떨어져도 꿋꿋하게 되튀어 오르는 능력을 말한다. 바닥을 쳐 본 사람만이 더 높이 날아오를 힘을 갖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회복 탄력성의 비밀이다. 강한 회복 탄력성으로 되튀어 오르는 사람들은 대부분 원래 있었던 위치보다 더 높은 곳까지 도약할 수 있다.
회복 탄력성이 특히 중요한 이유는, 아무리 탁월한 여러 능력을 갖췄어도 회복 탄력성을 지니지 못하면 한 번의 결정적 위험이 치명적 실패로 이어져 나락으로 떨어지고, 종국에는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빠져들 수 있기 때문이다. ‘왜 어떤 개인은 망가지고 어떤 개인은 회복하는가?’ 예측할 수 없이 급변하는 시기에는 반드시 던져야 할 질문이다. 급변의 시기에는 뿌리를 포함한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경험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서두에서 언급했듯이 ‘위험 사회가 도래한 21세기는 ‘누가 더 위험을 피해가느냐’보다는, ‘누가 위험과 절망을 딛고 더 빨리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렇게 하려면 고난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능력, 고난 속에서도 의미를 찾아내고 위기를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긍정적 스토리텔링, 곧 회복 탄력성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앞서 필자는 인류 문명 대전환 시대에 교육도 대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회복 탄력성 교육이 학교 의무교육에 수용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자 한다. 대한민국은 세계 역사상 유례없는 최단기간의 압축적 국가발전을 강행하면서 그 역작용으로 국민의 심성이 피폐해지게 되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사회갈등 지수와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 팽배, 승자독식의 무한경쟁 사회에서 붕괴된 영적·정신적 가치체계, 자살과 살인이 서로 맞물린 반생명적·반인륜적 우리 사회 분위기는 이를 단적으로 대변한다.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상당수 청년과 중장년이 위태로운 삶을 살아가다가 실패한 후 재기에 성공하지 못함으로 인해 인생이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이다. 그러므로 필자는 실패하고 도전하고, 또 실패하고 도전하면서 실패를 툭툭 털고 일어나는 회복 탄력성이 이 시대처럼 격변하는 문명 전환기, 특히 한국 사회처럼 사회변동이 극심한 사회에서는 반드시 학교교육 및 평생교육 차원에서 시행되어야 한다고 역설하는 바이다.
인류 문명의 대전환 시대에 교육 또한 대전환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우리가 새로운 미래를 준비하고 현재의 역경을 극복하기 위해 필수적 요소이다. 이를 통해 위태로운 청년세대가 강력한 미래를 구축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다. 더욱이 AI와 로봇이 인간의 노동을 대신 해준다면, 우리는 남는 시간에 더욱더 인간 본연의 가치를 만들 수 있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으로 세상이 더욱 디지털화되고 첨단 기술화될수록, 인간은 친밀한 관계와 사회적 연계에서 비롯되는 인간적 감성을 더욱 갈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관계가 충족되지 않을 때 정신건강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도록, 인간다움을 회복하는 친밀한 관계적 삶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일이 대단히 중요하다. 회복 탄력성이 특히 이 시대에 강조되는 이유는, 노동의 종말이 예고되는 4차 산업혁명 시대는 노동 요소로서의 인간이 별로 효용가치가 없어지는 시대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인간의 존재 이유는 무엇이고 무엇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가?’ ‘4차 산업혁명 시대 속에서 대다수 사람이 일자리가 없고 할 일이 없게 된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이런 실존적으로 매우 절실한 문제들이 인간의 심성을 계속 피폐하게 하고 자괴감에 빠지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가장 필요한 것이 위기 속에서도 기회를 발견할 수 있도록 되튀어 오르는 마음 근력의 힘, 회복 탄력성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다.<계속>
※ 상기 본문은 지난 11월 10일 서울영동교회에서 있었던 한국복음주의협의회 11월 월례회에서 곽혜원 박사(21세기교회와신학포럼 대표)가 전한 강연 전문입니다. 지면 관계상 일부 각주는 생략했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