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등고래는 다른 고래들보다 느리다. 하지만 춤을 즐기고 노래를 많이 부른다. 이들이 춤추고 노래를 부르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혹등고래는 그 거대한 몸집만으로도 경이로움과 두려움을 느끼게 하지만, 사실 ‘바다의 수호천사’로 불릴 만큼 착한 성격을 가졌다. 바닷속 작은 동물들을 큰 동물들에게서 보호해 주기도 하고, 바닷속을 탐험하는 사람들에게 신호를 주어 위험한 곳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도와주기도 한다.
류인현 목사(뉴프론티어교회 담임)는 모든 이산화탄소를 끌어안고 심해로 내려가 죽는 흑등고래에게서 십자가의 낮은 곳으로 내려가서 죽음을 맞이한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았다고 한다. 저자는 본 도서를 통해 독자들이 21일 간의 묵상과 기도를 따라갈 때 그 끝에서 샬롬을 누리길 소망하고 있다.
저자는 책 속에서 “내가 주인이 되어 사는 삶에는 아이러니가 있다. 그와 같은 삶은 자유롭고 행복할 것 같지만 사실은 완전히 자유롭지 못하다. 그렇게 행복이 왔다고 해도 일시적이고 순간적이고 불완전할 뿐이다. 왜일까? 삶의 모든 것을 오롯이 자기 스스로, 다 독박으로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다. 듣기만 해도 버겁지 않은가? 내가 내 삶을 모조리 다 책임져야 한다니. 내 인생을 내가 다 운전하고 경영하고 책임져야 한다는 건 자유로운 삶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유가 아니라 너무나 가혹한 형벌이다. 혼자서 모든 걸 다 감당하다가 큰 고난이나 불행한 일을 만나면 어떻게 할 참인가? 정신 승리를 외치거나, 술이나 약물에 의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비유를 보라. 집 나간 탕자, 둘째 아들이 바로 자유의 역풍을 맞은 대표적인 인물이다. 자유와 행복을 찾아 집을 떠났지만 그 결말은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는 신세가 되는 거였다. 자기가 주인 된 삶의 아이러니를 보게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자주 넘어진다. 자주 실패의 쓴맛을 본다. 어릴 때는 달리다가 혹은 자전거를 타다가 넘어졌다면, 커서는 마음이 넘어진다. 자신의 실패나 실수가 드러나고 누군가에게 창피를 당할 때면 우리의 얼굴은 어린아이처럼 붉어진다. 하지만, 실패는 창피한 일이 아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저 운이 없어서 실패할 때가 사실은 더 많기 때문이다. 전 세계 프로 야구에서 안타를 가장 많이 치는 선수도 타율이 고작 3할대다. 투수가 던지는 공 열 개 중에 세 개 남짓 밖에는 안타를 못 친다는 뜻이다. 공격의 70퍼센트는 늘 아웃인 셈이다. 타자는 땅볼이나 삼진 아웃으로 쓸쓸히 퇴장한다. 만약 이 선수가 아웃을 당할 때마다 자책하고 좌절했다면 3할대 타자가 결코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소위 소명이라고 하는 것, 하나님의 부르심의 자리를 지키며 묵묵히 그 길을 걷는 것 그 자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용기 있는 사람의 모습이다”고 했다.
끝으로 그는 “오늘날의 한국 사회의 삶의 컨텍스트와 이천 년 전 갈릴리를 비롯한 유대 지역의 삶의 컨텍스트가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천 년 전이라는 시간적인 큰 간격과 중동이라고 하는 공간적인 큰 간극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우리 사회와 이천 년 전 유대 사회와 닮은 꼴이 있다. 바로 백성들이 지쳐 있다는 점이다. 예나 지금이나 삶이 힘들다는 건 두말하면 잔소리다. 삶은 쉬지 않고 우리를 지치게 한다. 이런 세상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성육신하여 이 땅에 임마누엘하셔서 평화의 왕으로 오셨다. 이 땅의 지친 수많은 영혼들에게 참 생명과 안식이라는 선물을 주시기 위해, 영혼 구원을 통한 삶의 총체적인 구원과 하나님 나라의 샬롬을 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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