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가 5일 베이직교회의 주일예배에서 말씀을 전했다. 조 목사는 요한복음 18장 36절에서 40절까지 말씀으로 ‘누가 내 음성을 듣는가?’라는 주제로 설교했다.
조 목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재판 과정은 세기의 재판 과정이다. 인류역사상의 엄청난 재판이다. 그 재판에서는 온갖 불법이 자행됐다. 불법적 체포과정, 전직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 심문 받고,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심문을 받고, 빌라도의 관정으로 가서 심문을 받는다”며 “빌라도는 로마 황제의 대리인으로 법을 집행하는 총독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전권대사나 마찬가지이다. 그분이 세상 권력자 앞에 섰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의 권력에 접점이 있는가? 평행선이다.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의 질문과 답변은 접점을 찾기 어려운 이질감을 이 장면이 참 상징적으로 보여준다”고 했다.
그는 “로마제국 강압적, 억압적 사법적 시스템을 소유했으며 ‘황제 권력에 대한 반역과 조세제도에 거부는 로마의 가장 큰 죄’이다. 특히 세금, 특히 징세권은 로마와 유대 지도자 사이에 타협적 방식으로, 악덕 소유업자의 불법은 로마권력이 보호와 통제를 받고 있다”며 “이런 부분에 이해한 유대 지도자들은 ‘예수를 자칭 유대의 왕, 황제에 대한 반역’으로 몰고 갔다. 이것은 로마에서 반드시 조사를 해야 한다. 또한, 바리새인은 세금으로 소요를 일으키기 위해 예수님에게 유도심문을 했지만, 예수님은 ‘카이사르의 것을 주라’고 얘기하셨을 뿐만 아니라, 물고기 입에서 나온 은화로 세금을 내시기도 했다”고 했다.
이어 “빌라도는 이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었다. 그는 교활하고 똑똑하며 야심많은 사람이다. 그러나 정치적 야심을 위해 유대 지도자들과 타협이 필요했다. 예수님은 빌라도가 ‘유대인의 왕이냐’고 물었을 때, 즉시 답하지 않았다. 왜냐면 ‘왕’이라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나라와 세속의 개념 사이에서 조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라며 “그리스도는 유대인의 왕이 맞다.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뜻으로 그 시대에는 ‘왕, 선지자, 제사장’만 기름 부음을 받았기 때문에 ‘왕’이라는 뜻을 포함한다. 그러나 세속에서 왕은 국토와 추종자 혹은 정치적 세력, 조직과 체계가 있어야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지 않다. 빌라도는 예수님이 이런 것이 없음을 알고 있었다”고 했다.
조 목사는 “빌라도 시대에는 카이사르 밖에 황제가 없다. 그런데 예수님은 자신이 세속의 왕과 다른 차원의 왕이라는 것을 소개시켜 준다. 소위 하나님 나라에 대한 특강을 해주고 계신 것이다.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다르게 작동하는 ‘나라, 질서, 백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며 “세상의 방식과는 전혀 다른 하나님의 나라와 주권과 다스림, 통치를 받는 백성, 그 백성의 머리가 되는 왕이 있다. 우리가 이 논쟁에 있어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의 통치와 다스림에 대해 분명히 인식하지 않으면 우리의 신앙은 세상에서 아무 의미와 가치가 없는 것이 되고 마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오늘 예수님은 사전 각본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이다. 카이사르에 대한 반역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위해서다. 그리고 소명을 마치시고 떠나실 것이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시고 그분의 나라는 2000년간 흘러왔다”며 “예수님은 세상의 질서와 방법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않으신다. 그래서 빌라도에게 ‘내가 세상에 속하였다면 내가 내 종들로 싸우게 해서 잡혀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세상의 방법으로 하지 않는다’고 하셨다. 어떤 운동, 조직이나 권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의 힘이나 질서로 유지되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세워지는가? 예수님은 '나는 어두운 세상에 빛이라고, 거짓된 세상에 진리'라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거짓으로 온통 오염된 세상 속에 진리로 질서를 새롭게 하시기 위해서 오셨다. 그분은 진리를 증언하기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우리는 진리의 나라에 초청받아 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리를 알아들을 능력이 주어진 사람들”이라고 했다.
조정민 목사는 “예수님은 ‘진리에 속한 자들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어디에 속했는가에 따라 그분의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리 큰 서울역 광장에서 아이가 울고 있어도, 어머니는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는다’고 말씀하신다. 진리에 속한 자는 진리의 음성을 듣는다. 그럼 안 듣는 사람은 왜 안 듣는가? 요한복음 8장 44절에 ‘내 말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거짓의 아비인 마귀에게 속했다’고 말한다. 작은 거짓이든 큰 거짓이든 거짓은 거짓이다. 거짓말하면 못 살 것 같다면 그냥 침묵하면 된다. 그런데 두려움 때문에 거짓말을 한다”고 했다.
그는 “‘누구의 음성을 듣고 사나?’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해 설명할 때, 청중들이 마음에 찔려 ‘우리가 어찌할꼬’라고 한다. ‘마음에 찔렸다’는 것은 ‘들었다는 것’이고, ‘어찌할꼬’라는 것은 ‘마음이 열렸다는 것’이다. 그랬더니 베드로가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라’라고 한다. 그렇게 회개하면 성령이 임하기 시작한다”고 했다.
이어 “그런데 스데반의 경우는 어떤가? 산헤드린 공회원들은 마음에 찔리기는 찔렸지만, 이를 부득부득 갈고 결국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인다. 우리는 ‘무슨 말을 듣고 사는가? 어떤 음성을 듣고 사는가’를 잘 체크하며 살아야 한다”고 했다.
조 목사는 “왜 다른 책은 잘 읽히고, 다른 영상은 잘 보는데, 왜 성경이 잘 안 읽히는지 아는가? 내가 진리에 속하지 않아서 잘 안 읽히는 것이다. 이것은 심각한 문제이다. 우리는 그래서 끊임없이 말씀이 잘 들리도록, 우리의 귀와 눈을 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고 했다.
이어 “로마서에 보면, 바울은 우리가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법에서 우리를 해방한다’고 말씀한다. 빌라도는 진리이신 예수님 앞에 섰다. 이 세상에서 가장 진리를 들을 좋은 기회였지만, 결국 그는 세상으로 돌아가고 말았다”고 했다.
조정민 목사는 “에베소서 1장을 보면, 진리의 말씀이 들려야, 그 구원의 말씀을 믿어야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는다고 한다. 예수님은 씨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돌작 밭, 길가 밭, 가시덤불 밭’ 등을 설명하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하는 예에 대해 말씀하신다”며 “그분은 또한 진리의 말씀이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로 확장되어지는가를 말씀하신다. ‘겨자씨’ 비유에서 겨자씨는 씨 중에 가장 작은 씨이다. 아주 작은 씨지만 이것이 진리의 생명의 말씀일 때, 이것이 심겨지면 나중에 많은 새들이 깃드는 큰 나무가 된다고 말씀하신다”고 했다.
이어 “가루 서말의 부풀린 누룩과 같아서, 아주 적은 양의 효모이지만 이것이 가루에 들어가서 부풀기만 하면, 가루 전체를 큰 덩어리로 만들어 놓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이것이 ‘어떤 말씀을 듣는가’에 따른 것이다”고 했다.
이어 “마음을 열고 듣는 것을 일상으로 삼고, 그 듣는 것을 복으로 은혜로 받으면 우리는 이 세상과 다른 삶을 산다. 놀랍게도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찌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게 된다. 예수님은 강력한 로마의 권력자 앞에서도 누가 누구를 심문하는지 모를 정도의 일을 하셨다. 이 세상과 권력과 질서와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의 정체성으로 시민으로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이 유한하고 작다는 것은 깨닫고, 크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일들이 보이고 들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것은 세상 질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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