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자국 내 억류중인 탈북민 600여 명을 기습 북송한 이후 전 세계적으로 중국의 반인권적 처사를 규탄하는 여론이 갈수록 고조되고 있다. 일각에서 이미 중국 내 탈북민 대부분이 북송됐을 거란 우려 섞인 추측이 나오는 가운데 한·미·캐나다 3국의 북한 인권 관련 NGO들이 우리 정부의 획기적인 탈북민 보호조치를 요구하고 나서 주목된다.
중국이 항저우 아시안 게임 폐막식 직후비밀리에 군사작전을 하듯 탈북민을 북측에 넘겨준 충격적인 사실이 공식 확인되자 3국 NGO 대표들은 윤석열 대통령에 면담을 요청했다. 그 배경엔 남은 약 2000여 명의 탈북민도 이런 식으로 대책 없이 사지로 끌려가도록 내버려 둘 순 없다는 다급한 심정이 내포됐다.
이들이 윤 정부에 요구하는 건 “중국이 UN 난민협약과 고문방지협약, 여성차별철폐협약, 아동권리협약에 모두 가입 비준한 나라로 UN 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인권이사국의 위치에 있으면서 국제법상 ‘강제송환 금지원칙’을 정면으로 위반한 중대한 범법행위를 했으니 이제부턴 정부 차원에서 적극 대응해야 한다”는 것으로 집약된다. 지금까지 우리 정부가 중국의 탈북민 북송문제와 관련해 공식적인 요구를 한 적이 없었으나 이번이야말로 탈북민 북송 중단을 중국 정부에 요구할 적기란 뜻이다.
중국이 자국 내에서 들어왔다 공안에 체포된 탈북민을 본인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로 북한에 넘겨준 건 이미 20년 이상이나 지속된 매우 비인도적인 악행이다. 그러나 그렇더라도 이번처럼 600여 명을 한꺼번에 북송한 사례는 처음이란 점에서 충격의 강도가 훨씬 컸다.
국제사회는 탈북민은 성격상 정치·경제적 사유로 국경을 넘은 ‘난민’이므로 북송은 유엔 규약 위반이란 점을 누누이 강조해 왔다. 문제는 중국이 이런 문제 제기를 외면하고 단순 불법 월경자로 처리해 북에 신변을 넘겨줬다는 점이다. 중국이 이들을 ‘난민’으로 여기지 않는 한 비인도적인 북송조치를 국제사회가 강제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게 고민이다.
그러나 중국의 주장엔 설득력이 결여돼 있다. 단순 월경자라면 북에 돌려보내져 가벼운 처벌을 받고 일상으로 복귀해야 정상적이다. 그러나 북한에 돌려보내 진 탈북민들이 북한 당국에 의해 ‘국가반역죄’ 위반 등의 혐의로 정치범수용서에 갇혀 혹독한 고문과 강제노동에 시달리고 심지어 총살형에 처해지는 게 현실이다. 이를 중국 또한 모를 리 없다. 국제사회가 중국의 자세를 “살인 방조”라고 규탄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중국의 탈북민 대규모 북송 이후 국내외 북한 인권 단체들의 행보도 한층 빨라졌다. Human Rights Foundation 28개 북한인권단체는 지난 17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외교부에 탈북민에 대한 적극적인 대처를 주문했다. 이들은 박진 외교부 장관이 중국 정부에게 공개적으로 탈북민 강제북송 중단 및 탈북민들이 원하는 국가로 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 마련을 요구하라고 했는데 압박성에 가까웠다.
이런 가운데 방한한 줄리 터너 미국 국무부 북한인권특사의 행보는 당연히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터너 북한인권특사는 16일 고려대에서 열린 강연에서 “미국 정부는 (중국의)탈북민 강제 송환에 대해 굉장히 깊이 우려한다”며 “중국을 포함한 모든 국가들에게 유엔난민 의정서·협정서에 적힌 대로 박해가 우려되는 난민의 경우에는 강제 송환하지 말 것을 요청한다”고 했다.
이날 터너 특사는 탈북민에 대해 “자신의 신변 보호를 위해 (북한에서) 도망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할 우리의 의무가 있다”라고 정의했다. 그러고 나서 탈북민 문제 해결을 위한 3가지 방향을 제시했다. 첫째, 한국 정부와 긴밀하게 협력을 하고 있고, 둘째, 이들이 한국으로 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할 것이며, 셋째, 문제 해결을 위해 계속해서 미국, 유엔과 협력하겠다는 것이다.
앞서 터너 특사는 박진 외교부 장관을 만났는데 이 자리에선 탈북민 문제 해결을 위한 한미 공조 방안이 논의됐다. 이 자리에서 박 장관은 “어떤 경우에도 탈북민들이 자신에 의사에 반하여 강제 북송되어서는 안 된다는 게 우리 정부 입장”이란 점을 분명히 했다.
탈북민 문제에 대한 정부의 확고한 원칙은 박 장관이 밝힌 대로 “한국행을 희망하는 탈북민들은 전원 수용한다” 데 있다. 그러나 이런 원칙이 빛을 보려면 외교적 노력을 통한 실효적 결실이 반드시 나타나야 한다. 북한 인권 단체들이 대통령 면담을 요구하고 외교부에 적극 대처를 주문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그런데 이번 탈북자 집단 북송 과정에서 정부의 역할이 무기력했다는 비판이 일각에서 일고 있다. 북한 인권단체들이 수차례 문제 제기를 하고 이미 충분히 예견된 사태였음에도 정부가 어떤 실질적인 노력을 기울였는지 모르겠다는 건 데 결과론이지만 책임을 면키 어렵게 됐다.
이런 뒤숭숭한 분위기 속에서 정부는 탈북민 대책을 위해 한미 협의체를 출범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박근혜 정부 때도 비슷한 한미 협의체가 있었으나 한 두 차례 회의가 열린 뒤 문재인 정부 출범과 함께 종적을 감췄다. 매번 뒷북을 치는 협의체의 성격이 중요한 게 아니라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을 막을 실질적 조치를 도출해 내는 내용에 역점을 둬야 할 것이다.
다만 헌법상 대한민국 국민인 탈북민에 대해 끝까지 책임지고 보호하는 건 미국, 유엔이 아닌 우리가 할 일이다. 우리 정부와 국민의 강력한 의지가 국제사회에 외교력으로 발휘될 때에 중국의 야만적 행위에 제동이 걸릴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