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기독교역사학회가 2일 오후 새문안교회(담임 이상학 목사)에서 ‘2023년 한국기독교역사학회 학술 심포지엄’을 ‘간토대지진 100년과 한일 기독교’라는 주제로 개최했다.
학술대회는 김광열 교수(광운대학교 국제학부 명예교수)가 ‘1923년 간토대지진시 한인 대학살 사건과 제일 코리안’이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했으며 이어 성주현 교수(청암대학교 연구교수)가 ‘관동대지진에 대한 국내 종교계의 인식과 대응’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성 교수는 “1923년 9월 1일 오전 11시 58분 일본 교토와 치바 등 관동지역 일대에는 진도 6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일본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지진이었으며 이를 관동대지진이라고 한다. 관동대지진 보도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지진으로 인해 입은 피해 상황, 다른 하나는 지진 현장에 있는 동포의 안위였다”며 “지진은 9월 1일에 발생했지만, 식민지 조선에는 9월 3일 언론에 보도되었다. 보도가 된 이후 총독부는 아리요시 경무국장의 담화를 통해 ‘대지진의 혼란에 폭리를 위한 간상배 적지 않으나 7천만, 즉 일본인과 조선인이 일치단결하여 이를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담화의 다른 이면에는 계엄령이 발효되었음을 알려주고 있다”고 했다.
그는 “또한 각종의 유언비어가 발생했는데, 유언비어는 이른바 ‘조선인 폭동설’이었다.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직후부터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 우물에 독을 탄다, 방화를 한다 등의 유언비어가 사실처럼 확산되었다. 이에 총독부는 유언비어가 사실이 아님을 밝히지 않고 ‘두뇌를 냉정히 하여 사리를 판단할 것’을 당부했다”며 “왜곡된 관동대지진은 자연재해라는 단순한 인식보다는 조선인과 일본인의 복잡한 관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당시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에서는 관동대지진이 식민지배통치에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 하기 위해 총독부 관료와 사회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인물을 동원하여 내선융화를 도모하고자 했다”고 했다.
성 교수는 “이중 종교인으로 유일하게 참여한 기독교계의 유일선 목사는 ‘동경지방의 대진재와 오인의 감상’이라는 글을 통해 관동대지진은 ‘인류에게 무한한 교훈을 주었다는 것’과 ‘조선은 갱생의 길을 도모해야 한다’는 두 가지 인식을 보이고 있다. 유일선이 인식하는 갱생의 도는 다름이 아닌 희망이 아닌 ‘암담’이었다. 암담한 조선의 상황을 보면서 유일선은 관동대지진을 맞은 일본이지만 오히려 전화위복이 될 것이라고 본 것이다. 아울러 조선은 관동대지진을 계기로 독립운동을 전개하기보다는 인도적 의무를 하자는 자조적인 인식을 보여주고 있다”고 했다.
이어 “관동대지진 직후 일본 관동지방의 피해 상황이 언론에서 속속 보도되자 가장 우려한 것은 지진 현장의 동포, 즉 조선인의 안부와 이재민을 위한 구제활동이었다. 당시 동아일보는 동경 부근의 거주하는 학생과 노동자의 생사존몰을 무엇보다 먼저 염려했으며, 이들의 안부 조사를 목적으로 특파원을 파견했다. 이에 가족 또는 친족이 관동대지진 현장에 있는 가족들은 조그마한 소식이라도 확인할 수 있을까 하는 심정으로 신문사를 찾았다”며 “혼란한 상황에서 하기방학으로 귀향해 있던 유학생은 지진 현장에서 동포들의 생사여부와 소식을 조사하기 위햐 ‘재경일본유학생대회’를 개최한 바가 있으며, 이외에도 가족과 친지들의 안부를 확인하기 위해 일본재류동포친족회가 조직되었다”고 했다.
성 교수는 “이와 더불어 관동대지진 직후 이재민을 위한 의연금 모금도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인천, 경성에서 먼저 의연금 모금을 전개했으며, 이후 일본적십자사와 일본애국부인회도 의연금 모금에 참여했으며 의연금 기부자 명단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와 같은 활동이 적극적으로 확산되면서 종교계에서도 발 빠르게 안부 조사와 의연금 모금 등 구제활동에 참여했다”며 “1923년 9월 8일 경성지역 유지들 중심으로 중앙기독교청년회관에서 일본진재의연금모집조성회가 조직되었으며, 많은 사람이 참여했다. 이처럼 경성지역과 같이 사회 유지들이 참여하는 구제 단체에 종교인들이 참여하기도 했지만, 종교계는 독자적으로도 구제회를 조직하고 의연금을 모금하는 구제 활동을 전개했다. 종교계 중에서는 기독교가 가장 적극적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의 대응을 살펴보면 관동대지진 발생 5일 째 되는 9월 5일 오전, 경성중앙기독교청년회 총무 신흥우와 조선회중기독교회 목사 유일선은 기독교를 대표하여 총독부 정무총감을 관저에서 만나 지진 피해에 대해 위로했다. 이후 두 사람은 ‘이재민 구제헤 힘 닿는 데까지는 양 교회에서 노력하여 볼 것’을 결심했다”며 “기독교계는 경성뿐만 아니라 강원도, 인천, 평양, 전주, 마산 등지에서 관동대지진 구제활동을 시행했다. 이들은 의연금, 위문금 모금 활동을 통해 관동대지진에 조금이나마 보템이 되고자 했다”고 했다.
끝으로 성 교수는 “기독교뿐만 아니라 타 종교에서도 의연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불교, 천도교는 기독교처럼 의연금 모금 활동을 펼쳤다. 이들도 경성 외에 지방에서도 활동을 펼쳤다. 관동대지진 구호활동은 경성지역처럼 사회 유지들이 참여하는 구제 단체에 종교인들이 참가했다. 불교, 천도교, 기독교 중에서 기독교가 가장 적극적으로 활동에 나섰다”며 “종교계는 자체적으로 잡지와 신문 등 기관지를 발행했지만, 이에 대한 조사를 통해 반드시 보완해야 한다는 것을 지적하며 마무리하고자 한다”고 했다.
한편, 학술대회는 이어 이상훈 교수가 ‘일본기독교계의 간토대지진 역사서술에 대한 입장 고찰’, 홍이표 교수가 ‘한일 기독교 지식인의 간토대지진 인식과 대응’이라는 주제로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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