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위그노연구원 한국본부,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개관
지도자들부터 ‘위그노처럼 믿고 위그노처럼 살기’ 운동 일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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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위그노연구원 공동대표 성원용 목사(오른쪽)와 장광수 목사(왼쪽)가 성 목사의 저서 ‘위그노처럼’과 묵상집을 놓고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이지희 기자

“코로나 이후 한국교회 재부흥의 불씨는 개혁신앙의 본질을 따라 살아간 위그노에 있다고 확신합니다.” -성원용 유럽위그노연구원 공동대표(파리 선한장로교회 담임목사)

“위그노들이 독일 경건주의에 영향을 주고 이것이 누적되어 독일 통일이 이뤄졌습니다. 위그노 운동이 남북통일에도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장광수 유럽위그노연구원 공동대표(베를린 오병이어 교회 담임목사)

프랑스 칼뱅주의 개신교도들인 ‘위그노’(Huguenot)는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300년간 박해와 억압 가운데서도 개혁신앙과 예배를 굳건히 지킨 이들이었다. 극심한 박해 속에서 수많은 위그노가 생명을 맞바꿔 신앙을 지켰고, 수십만 명은 신앙의 자유를 찾기 위해 네덜란드, 독일, 영국, 스위스 등 유럽 각국과 러시아, 아프리카, 북미, 중남미까지 흩어졌다. 위그노는 정착한 나라에서 개혁교회를 세웠을 뿐 아니라, 직업소명설을 따라 당대 최고의 기술력을 가진 이들이 많아 각국의 산업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일례로 영국에서는 위그노의 증기기관 기술로 직물과 기계 산업이 급발전하면서 산업혁명의 기초를 닦았고, 독일에서는 위그노가 화학과 기계공업, 섬유산업을 일으켰으며, 스위스에서는 위그노의 시계 기술로 시계산업이 일어났다.

이처럼 교회 역사와 세계 역사를 바꾼 위그노들의 신앙과 역사를 연구하여 한국교회의 미래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2022년 1월 프랑스 파리에 ㈔유럽위그노연구원이 설립됐다. 그리고 1년 반이 흐른 지난 7월 12일 경기도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유럽위그노연구원 한국본부가 개관했다. 유럽위그노연구원 공동대표 성원용 목사와 장광수 목사는 최근 서울 종로 5가 모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연구원의 목적과 비전, 사역 등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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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위그노연구원 한국본부 개관예배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유럽위그노연구원

성원용 목사는 1996년 예장통합 PCK세계선교사회의 파송을 받은 선교사로, 파리 선한장로교회 담임목사로 한인목회를 하고 있다. 이와 함께 한·불선교협력 코디네이터로서 선교 및 신학 협력을 하고, 유럽 및 아프리카 불어권 선교를 하고 있다.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과와 동 대학원 신대원, 미드웨스트 유니버시티 리더십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MU 글로벌 리더십 연구원 교수로도 활동하고 있다.

장광수 목사는 2010년 성은세계선교회에서 파송된 선교사로, 현재 베를린 오병이어교회 담임목사로 한인목회를 하고 있다. 1995년부터 독일 하이델베르크 대학원에 유학하여 박사과정 중 IMF를 만나 독일의 서로 다른 주에 위치한 기장, 예장고신, 성결교단 소속 교회에서 한인목회를 하게 됐다. 또 한국유럽유학생선교회인 ‘코스테’(KOSTE, Korean Students Mission in Europe) 실행총무를 역임하며 청년, 대학생 사역을 펼쳤다. 장 목사는 서울신학대학교 신학과와 동 대학원 신대원을 마치고, 하이델베르크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성 목사와 장 목사는 모두 1964년생 동갑 친구로, 유럽위그노연구원 공동대표뿐만 아니라 HUGO(Humanité Globale Organisation) 공동대표와 신한대학교 객원교수도 함께 맡고 있다.

ㅡ위그노 운동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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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용 목사는 “위그노의 역사가 위기 상황인 한국교회가 재부흥하는 불씨가 되고 모멘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성원용 목사(이하 성 목사): 우리가 유럽에 살면서 조국과 조국 교회를 위해 어떤 보답을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위그노의 역사가 위기 상황인 한국교회가 재부흥하는 불씨가 되고 모멘텀이 될 수 있겠다는 확신을 하게 됐습니다. 선교 현장에 있다 보면 반드시 한국교회만이 해야 하는 선교 영역이 있는데, 그것을 위해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재부흥의 불씨가 어디에 있을까, 또 우리가 던질 수 있는 불씨는 무엇일까라고 할 때 위그노의 역사 속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드 폰테스’(Ad Fontes)는 라틴어로 ‘근원으로 돌아가라’는 종교개혁의 원리인데, 오늘날 개신교회의 근원이 바로 16~18세기 위그노의 역사와 신학, 문화, 정치 등에 다 들어있습니다.

그리고 해외에 있다 보면 더 애국자가 되는 것 같습니다. 독일 통일 이후 지금 유일한 분단국가인 이 나라가 우리 생전에 통일될 수 있도록 저도 프랑스 교회와 더불어 어떤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마음을 갖게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북통일을 동력화하여 세계선교까지 가는 목표가 세워졌습니다. 이에 위그노 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장광수 목사(이하 장 목사): 코로나를 만나면서 새로운 목회에 대한 정리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성원용 목사님이 책을 한 권 썼는데 와 보라고 했습니다. 미국 LA 사랑의교회 김기섭 담임목사님과 친구들과 같이 위그노 유적지를 탐방한 것이 책 ‘위그노처럼(위그노에게 배우는 10가지 교훈)’으로 출판된 것입니다. 저자인 성 목사님을 독일 현지인 UBF 모임에도 초청해 세미나를 했는데 (위그노에 대한 내용이) 굉장히 충격적이었습니다.

또 그동안 조국 교회가 저를 독일과 유럽으로 파송하여 28년간 케어해 주었는데, 코로나 시기부터 한국교회가 더욱 주저앉는 모습을 보고 해외에서 통탄했습니다. 이러한 마음을 성 목사님과 나누는 가운데 이제 조국 교회를 위해 헌신하자고 마음을 모았습니다. 우리를 수십 년간 도와준 조국 교회를 위해 본질, 곧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작은 목소리라도 낼 수 있는 부분이 위그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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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수 목사는 “위그노들은 독일 산업을 일으켰을 뿐 아니라 독일 경건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후에 독일 통일에도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ㅡ위그노에 대해 잘 모르는 분들을 위해 소개해 주세요.

성 목사: 위그노는 16세기에서 18세기 프랑스 개신교도를 지칭하는 말이며, 숱한 박해 속에서도 신앙의 본질을 붙들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그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이고 복음입니다. 위그노들이 화형장에 올라갈 때 찬송하는 소리가 듣기 싫다고 혓바닥을 자른 뒤 올라가게 하기도 했습니다. 일부는 카톨릭으로 개종했지만, 일부는 살기 위해 낮에는 카톨릭으로 개종한 것처럼 하다가 밤에는 집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 ‘니고데모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부는 목숨을 걸고 해외로 탈출했습니다. 나머지는 모든 것을 잃고 남프랑스로 들어가서 광야 생활을 했는데, 102년간 광야교회를 이루며 살았습니다.

흩어진 위그노 디아스포라들은 사실 세계 역사에 획을 그었을 뿐 아니라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위그노들은 영국, 독일, 스위스, 네덜란드 등 가는 곳마다 개혁교회 신앙과 교회를 전파했고, 또 자신들이 가진 기술과 지식, 문화 예술을 함께 전파했습니다. 그리하여 영국에서는 산업혁명의 기초를 놓았고, 독일에서는 브란덴부르크라는 작은 지방 영주 국가가 나중에 프로이센을 주도하면서 비스마르크를 만들어 냈으며, 보불전쟁에서 승리하게 하는 역할을 했습니다. 또 위그노들은 네덜란드, 스위스의 산업도 발전시키고, 심지어는 미국 건국 정신 중 ‘자유’에 결정적 영향을 주었다고 봅니다. 한 집에서 미국 독립선언서를 만들고 반포하는데, 위그노의 집이었습니다.

한국교회에서 루터, 칼뱅은 너무나 잘 아는 시대적 영웅입니다. 그런데 위그노는 종교개혁의 신앙을 가졌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 많은 목사가 순교하여 사라졌고, 교회들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면서 본질을 붙들고 복음대로 살았습니다. 제가 위그노 박물관에서 발견한 위그노 신앙의 결론은 ‘의를 위하여 박해받는 자는 행복하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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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개신교도인 위그노는 카톨릭의 박해로 인해 유럽을 비롯하여 세계 각국으로 흩어지면서 개혁신앙과 함께 기술과 지식, 문화 예술을 전파하여 세계 역사를 바꾸었다. ©유럽위그노연구원

장 목사: 300년 동안 박해를 받으며 이름도 빛도 없이 역사에서 사라지고 순교했던 이들이 위그노입니다. 저 같은 경우 독일에서 목회하면서 독일 역사를 정리하다가, 역사적으로 독일이 점핑하게 된 시기가 3~4번 정도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첫 번째가 독일이 앞서서 유로화를 통일시킨 것인데, 이것이 기독교 정신임을 발견했습니다. 두 번째는 지방 자치제에서 통합시킨 것입니다. 더 깜짝 놀란 것은 독일에서 산업이 육성되면서 프랑스, 영국과 맞서는 강력한 힘을 갖게 된 것이 바로 위그노 때문이라는 점이었습니다. 프랑스가 프랑스 개신교인들을 박해하여 정해진 기한 안에 목사들이 떠나지 않으면 목사는 죽이고, 성도들은 개종하지 않으면 감옥에 보낸다고 하여 25~30만 명이 해외로 탈출했는데, 독일에 4만 명 정도 왔습니다. 독일은 이들이 일어설 수 있도록 땅과 건물, 예배당을 제공하고 세금을 면제해 주었습니다. 특히 위그노의 노동력이 독일 사람들의 노동력보다 6배나 더 강력했는데, 결국 위그노들이 와서 독일 산업을 일으킨 것입니다. 또 위그도들은 신앙을 일으켜 독일 경건주의에 영향을 주었고, 이것이 누적되어 독일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통일에 대한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프랑스에 오시는 분들은 정말 위그노에 대해 알고 가시면 좋겠습니다. 저도 20여 년 넘게 프랑스에 가면서 성 목사님이 이야기해 주지 않아 몰랐는데, 짧게 말씀드리면 프랑스의 상징 에펠탑이 세워지기 전 탑을 세우기 위한 땅을 조성하기 위해 파보니, 위그노 순교자들이 그대로 묻혔던 장소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유골들을 다 캐낸 뒤 탑을 세웠습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후에는 에펠탑을 보면 (감탄하면서) ‘와~’가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버지...’ 하게 되고, 올라가지 않았습니다.

ㅡ유럽위그노연구원은 어떤 사역을 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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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원용 목사는 “내년 초에는 위그노 역사박물관과 독일 통일박물관도 만들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성 목사: 이 연구원은 영적 플랫폼입니다. 여기서 교단과 인종, 신학을 초월하고, 이해관계를 떠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형제가 되어 교류하기 위해 작년 1월 파리에 사단법인으로 등록하고 사무실과 숙박이 가능한 연구원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이사회가 구성되어 이사장은 현 예장통합총회 부총회장 김의식 목사님이시고, 많은 교회와 단체가 관심을 가지고 협력하고 있습니다. 지난 7월 12일에는 파주 헤이리 예술마을에 한국본부 사무실을 열었고, 내년 초에는 위그노 역사박물관과 독일 통일박물관도 만들 예정입니다. 현재 유럽 본부와 함께 한국, 미국 동부, 미국 서부, 중남미, 아시아 태평양, 인도차이나에 지역 본부가 세워졌는데, 건물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세워져 탄탄하게 조직을 이뤄 가고 있습니다. 국가 본부는 프랑스, 독일, 영국, 네덜란드, 스위스, 스페인, 체코 본부 등이 있습니다.

장 목사: 말씀과 영성 집회, 유럽 목회자 선교사 세미나, 청년 대학생 수련회, 차세대 리더십 아카데미, 교회 지도자 수련회, 선교지 현지인 리더십 세미나와 위그노 역사 유적지 탐방, 종교개혁 현장 순례, 위그노 달력 주문 제작, 난민 지원, 문서 및 도서 출판 등의 사역을 하고 있거나 계획하고 있습니다. 오는 9월에는 파리에서 유럽 위그노 세미나를 진행할 것입니다. 한국에서도 경기 북부와 서울 지역은 헤이리에서 1년에 한 차례 세미나를 열려고 합니다. 그다음 전북 지역 세미나는 이리남중교회가 호스팅하고, 또 광주에서도 세미나를 진행하며, 거제, 울산, 부산 지역 세미나는 고현교회에서 열릴 예정입니다.

ㅡ파주에 한국본부가 개관한 이유가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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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12일 파주 헤이리 예수마을에서 유럽위그노연구원 한국본부 개관예배가 드려졌다. ©유럽위그노연구원

장 목사: 대한민국 교회가 하나님께 가장 영광을 드리려면 우리 민족의 아픔과 사명인 통일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럽에서도 제일 많이 관심 갖는 것은 한국교회가 얼마나 크냐가 아니라 언제 통일할 것이냐입니다. 독일 라이프치히 니콜라이교회에서 7명이 통일 기도회를 시작하여 100만 명이 모이게 되고, 이들을 통해 장벽이 먼저 붕괴하여 1년 뒤 통일을 선포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위그노라는 작은 역사의 뿌리를 연구하여 통일을 이루는 데 한국교회가 앞장설 수 있다면, 또한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전 세계선교를 위해 사용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통일동산 관광특구 내 헤이리 예술마을의 기록문화연구소 이태형 소장님이 기도하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기록문화연구소 내 25평 사무실을 사용하고 있는데, 앞으로 위그노 역사박물관과 독일 통일박물관을 같이 세우려 합니다. 위그노 역사박물관은 영적인 공급을 하고, 독일 통일박물관은 사역적으로 대한민국 통일을 이뤄가는 데 기여하려 합니다. 또 올해 1월 1일에는 한국본부 채플실에 성령이운행하시는교회(안재형 목사)가 개척돼 묵상집 ‘위그노처럼’으로 위그노 예배를 쭉 드리고 있습니다.

지난 한국본부 개관예배에서는 제가 사회를 맡아 장순현 선교사님(위그노연구원 아태지역 대표)이 기도, 박호근 대표님(하프타임 코리아)이 성경봉독, 서은영 목사님(유럽위그노연구원 이사)이 직접 작사, 작곡한 위그노 주제곡 ‘망치와 모루’ 특별찬양에 이어 김의식 목사님(유럽위그노연구원 이사장)이 ‘종말론적 위그노 신앙’에 대해 눈물로 설교하시고 많은 분이 감동받았습니다. 또 안재형 목사님(성령이운행하시는교회 담임), 손성기 목사님(유럽위그노연구원 후원이사)의 축사, 이승민 교수님과 김선덕 교수님의 축가, 성원용 목사님의 환영 및 소식, 김태환 목사님(유럽위그노연구원 이사)의 축도로 드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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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광수 목사는 “위그노라는 작은 역사의 뿌리를 연구하여 통일을 이루는 데 한국교회가 앞장설 수 있다면, 또한 하나님이 우리 민족을 전 세계선교를 위해 사용하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희 기자

ㅡ위그노 책 소개도 부탁드립니다.

성 목사: 2021년 발간한 ‘위그노처럼(위그노에게 배우는 10가지 교훈)’에서는 위그노의 신앙과 역사, 또 프랑스 교회가 오늘날 왜 이렇게 쇠퇴했는지에 대한 이유와 500년 역사를 정리했고, 테마별로 우리가 얻어낼 수 있는 10가지 교훈을 정리했습니다. 그 10가지 교훈은 ‘△용기를 내라 △고난을 감당하라 △저항하라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라 △개혁자로 서라 △톨레랑스 하라 △5개의 솔라(Sola)를 기억하라 △참된 프로테스탄티즘을 추구하라 △교회를 교회 되게 하라 △주 안에서 행복하라’입니다. 위그노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 세계 개신교회가 가야 할 길을 보여주는 등불과 같고, 우리는 위그노의 과거 역사에서 미래의 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책이 역사책이라면, 지난 2월 나온 묵상집 ‘위그노처럼(생명 걸고 예배드린 사람 위그노와 함께 하는 한 달 묵상)’은 적용 중심의 책입니다. 기록문화연구소와 함께 5~6분 분량의 유튜브 콘텐츠 31개를 만들고 있습니다. 말씀뿐 아니라 역사로 큐티를 하니, 말씀을 통해 내가 어떻게 세상을 바꿀 것인가 하는 역사적 지평까지 넓혀줍니다.

장 목사: 저는 알렉산더 쿤카 박사의 저서 ‘DIE HUGENOTTEN’을 번역하여 출간할 예정입니다. 이 책은 16세기 이후 프랑스 개신교회의 형성과 발전, 박해를 피해 흩어진 위그노 디아스포라에 의해 이뤄진 유럽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변화를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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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성원용 목사의 저서 ‘위그노처럼’과 묵상집 ‘위그노처럼’, 장광수 목사가 번역 출판할 예정인 ‘DIE HUGENOTTEN’

ㅡ앞으로 위그노 운동을 어떻게 펼쳐나갈 예정인가요.

장 목사: 성경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사건은 디아스포라의 부르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고 ‘네가 복이고 너를 영접하는 자는 복을 받고,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으며, 너로 인하여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유대인 디아스포라, 그다음 위그도 디아스포라를 통해 어떻게 이루어져 갔는가를 봅니다. 그리고 21세기 세계 최고의 디아스포라는 한민족입니다. 디아스포라 인구는 중국이 많지만, 국가로는 한국이 최고의 디아스포라 국가인데, 한인 디아스포라 크리스천들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고 우리를 통해 복을 받게 될 세계의 역사를 전망하면서 선교적 지평을 열어가려 합니다. 이 연구원을 통해 하나의 무브먼트가 일어나 선교가 다시 한번 불붙도록 기도하면서 사역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바라는 것은 먼저 지도자들에게서 위그노처럼 살아내는 운동이 시작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성 목사: 종교개혁 때도 초대교회 사도들이 전해준 복음, 곧 은혜의 복음을 이야기하면서 ‘본질로 돌아가라’고 강조했습니다. 종교개혁 500주년 때도 계속 ‘본질로 돌아가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지금 우리는 이 본질을 매우 잘 압니다. 문제는 본질을 몰라서가 아니라, 본질대로 살아내지 못하고, 본질을 붙들지 못하고, 본질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종교개혁 시대에 찾은 본질을 끝까지 붙들고 살아내서 성공한 사람들이 바로 위그노들입니다. 이 위그노 운동을 연구하여 오늘날에 적용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기 위해 자매결연을 맺은 기관들과 대학 등을 중심으로 활동하려 합니다.

먼저 저는 아직 알려지지 않은 위그노 자료들을 발굴하여 출판하려 합니다. 위그노 디아스포라도 다루지만, 위그노의 뿌리인 왈도파도 다루고, 위그노 인물들을 중심으로도 저술 활동을 하여 알리려 합니다. 특히 유럽 세미나에서는 현존하는 가장 탁월한 위그노 관련 개혁교회 학자들이 발표하게 되는데, 그때마다 자료집을 책으로 제작하려 합니다. 또 하나는 앞서 말씀드린 대로 미디어를 활용할 것인데, 묵상집 ‘위그노처럼’을 기록문화연구소와 함께 영상으로 만들어 위그노를 소개할 계획입니다. 그리고 위그노 역사 강의를 하는 컨퍼런스를 열면서 놀라운 부흥의 역사가 있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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