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 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예배와 찬양과 기도입니다. 그리고 각종 봉사와 선교 등이 신앙 생활에 중요한 요소들입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하게 중요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신학 공부입니다.
많이들 착각하는 게 신학은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분하고 어렵다고 막연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신학은 모든 성도들이 공유하고 공부해야할 신앙 생활의 핵심적인 요소입니다.
왜냐하면 신학은 신앙을 설명하는 도구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신학을 공부한 성도는 복음의 메시지를 더 잘 설명하고 전도하기에 유리합니다.
16세기 종교개혁 당시에는 성경을 읽지 못한 대중들에게 성경을 번역하여 읽도록 만든 것이라면, 오늘날 현대의 종교개혁은 신학공부를 등한시하거나 배척하는 풍토에 신학 공부의 중요성을 알리며 신학의 다양함과 즐거움을 성도들에게 공유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면 안 된다’라고 주장합니다. 더 나이가 ‘신학을 공부하면 머리만 커지고 교회에 반감만 가진다’라고 우려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과 주장은 대단히 잘못된 주장입니다. 신학을 소위 자유주의 신학만 접했을 때는 그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지만, 건강하고 바른 신학을 접한 성도들은 교회를 위해 더욱 헌신하며 위대한 성도로 세상에 강한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따라서 교회의 유익을 위해 평신도도 신학을 반드시 공부해야 합니다.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할 때 따라오는 효과와 유익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면 이단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습니다.
오늘날 현대에 각종 이단 사이들이 판을치며 대대적인 포교를 일삼습니다. 그러나 교회사 공부를 했다면 과거 이단(영지주의, 마니교, 아리우스, 세르베투스 등등)이 왜 잘못되었는지 정확한 지식이 있기에, 현대의 그와 흡사한 이단(구원파, 신천지, 안상홍증인회, JMS 등)에 쉽게 빠지지 않습니다.
또한 성경의 어원을 공부하고 현대 성경신학의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하고 있는 평신도라면, 신천지식 비유풀이 성경 해석이 얼마나 유치하고 조잡한 것인지 매우 쉽게 간파할 수 있습니다.
둘째,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면 잘못된 신학사조에 대한 면역력과 대응력이 생깁니다.
성도가 신학을 공부했을 때 가장 큰 유익이 바로 이것입니다. 오늘날 잘못된 신학지식으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부활을 거부하거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을 거부합니다. 불가지론 종교학자 바트 어만의 잘못되고 편향된 시선이 마치 지성적인 것 인냥 왜곡하고 각종 메스컴을 통해서 성도들의 분별력을 흐리게 만듭니다.
또한 도마복음이라는 정경에 포함되지도 않은 위서를 복음서보다 권위있는 것처럼 내세우거나, 퀴어신학 및 각종 유행신학등을 가지고 교회의 질서와 전통을 부수려는 사특한 무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평신도라 할지라도 교부, 종교개혁, 청교도, 개혁주의, 복음주의 등의 교회 중심적 정통신학을 공부한 이들이라면 이러한 잘못된 신학사조를 단호하게 대응하고 넉넉하게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로써 평신도에게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결국 교회를 보호하고 부흥하게 만드는 원인이 됩니다.
셋째,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면 예배의 예전의 깊이를 깨닫게 됩니다.
예배의 찬양과 교독문과 사도신경에 안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평신도들이 공부해서 안다면, 이들이 예배를 대하는 태도와 깊이는 틀림없이 달라질 것입니다. 예전적인 의미와 교회 절기에 대한 지식, 그리고 교회사적인 예식 전통에 대한 역사를 꼼꼼하게 공부하면 한 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 평신도들에게 자긍심까지 불어넣어 줄 수 있습니다.
세례와 성찬이 가지는 신학적 의미를 아는 성도가 대충 대충 성찬에 참여하거나, 세례 예식을 장난처럼 여길 수 있을까요?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따라서 목회자는 교회의 거룩함과 예배의 깊이를 더하기 위해서 평신도들에게 신학을 공부시켜야 합니다. 또한 평신도는 신학 공부의 필요성을 속히 인지하고 신학 공부를 즐거워할 수 있어야 합니다.
넷째,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면 더 전도에 열심을 내게 됩니다.
복음의 깊이와 위대함을 깨닫는 성도는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 안달나게 됩니다. 이런 상태는 성령의 감동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때때론 신학 공부가 전도의 당위성과 중요함을 가르쳐주기도 합니다. 특히 기독교 변증학은 무신론자들의 거센 논리에 대항하여 신앙을 왜 지켜야 하는지 우리 스스로에 대한 답도 제공해주지만, 그와 동시에 믿지 않는 이들에게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는 도구가 되기도 합니다.
이처럼 신학은 나의 신앙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믿지 않는 영혼들을 설득해내는 포승줄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불신앙이라는 고통에서 허우적대는 이들에게 평신도들은 신학을 공부하여 복음의 구명 튜브를 그들을 향해 던져줄 수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건강한 복음적인 신학은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설명서가 될 수 있습니다.
다섯째, 평신도가 신학을 공부하면 목회자도 더욱 성실하게 공부하게 됩니다.
평신도가 공부한다면, 목회자는 그보다 더 공부해야 할 책임이 생깁니다. 목회자는 반드시 신학자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공부하지 않는 것은 성도들의 영혼을 방치하는 삯꾼의 행태입니다. 목회자는 성도들의 삶을 돌아보고 심방하고, 말씀 연구를 성실하게 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철두철미한 신학 공부를 통해 교리와 성경에 있어서 수준급에 이르러야 합니다.
간혹 신학교에 신학생들이 ‘나는 소명 받았으니깐 하나님이 쓰실 거야!’라고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맨날 기타 매고 다니며 놀러 다니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목회자가 되었을 때 성도들의 영혼이 갈급함을 느끼고 괴로워하게 됩니다. 따라서 평신도들이 공부함으로 목회자들에게 자극을 주고, 목회자들은 공부하는 평신도들에게 더 깊고 정밀하고 풍성한 신학을 선물로 주기 위해서 평생토록 공부해야 합니다. 따라서 평신도의 신학공부는 성도 본인들에게 좋고, 다음으로는 목회자들에게도 좋습니다.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요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