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나는교회(담임 김호윤 목사)에서 지난 21일 진행된 찬양간증집회에서 최용덕 간사가 ‘내 인생 최고의 기적’(롬 8:28-29)이라는 제목으로 간증을 전했다. 최용덕 간사는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가서 제자 삼으라’ 등을 작사·작곡했으며, ‘찬미예수’의 발행인으로 알려져 있다. 이날 최 간사는 찬양에 담긴 은혜와 함께 그의 인생 가운데 경험한 기적을 간증했다.
최 간사는 “저는 늘 죽음을 생각하고 스스로를 살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 미혼모의 자식으로 애초부터 거절당한 인생이었다. 가난해서 라면이라도 실컷 먹어보는 게 소원이었고, 수업 시간에 불려 일어나면 책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별명은 찌질이, 누구도 제가 가치 있는 존재라는 걸 알려주지 않았다”고 했다.
그는 “고등학교 때 친구의 초청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고, 2학년 때 세례를 받았다. 수백 년 불교, 유교 집안의 장손인 제가 예수를 믿자, 집안이 발칵 뒤집혔다. 집안 어른들은 어르고 달래도 안 되자 소리 지르고 때렸다. 그래도 말을 안 듣자 가문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고3때 류마티스 관절염이라는 큰 재앙이 저를 덮쳤다. 졸업을 3개월 앞두고 더 이상 학교를 다니지 못할 만큼 악화되어 휴학했다. 예수 믿으면 복 받는다는 말을 어렴풋이 기대했는데 가문에서 쫓겨나고 여전히 가난하고 난치병까지 걸린 누가 봐도 완전히 끝난 인생이었다”고 했다.
이어 “병원에서도 치료 약이 없었다. 그때 금식기도원에서 기도하고 관절염이 나은 친구가 이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가자고 했다. 내게도 그 기적이 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10월 1일 이른 새벽, 하나님이 다리를 안 고쳐주시면 스스로 목숨을 끊겠다고 목발을 부러뜨리고 금식을 작정하고 울부짖기 시작했다”고 했다.
이어 “사흘 밤낮을 목이 쉬도록 부르짖었는데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10월 3일 밤, 나같이 찌질한 인생을 하나님이 왜 택하시겠냐며 서글퍼서 울고 있을 때 제 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찌하여 나를 바라보지 않고 너의 문제를 들여다보고 있느냐는 음성에 깜짝 놀라서 주위를 들여다보니 아무도 없었다. 네가 생각하는 하나님, 기도하는 하나님이 어떤 하나님이냐 물으시며 이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면 해결된다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생각나는 게 없어서 성경책을 뒤적거렸다. 마태복음부터 읽다가 예수님의 말씀을 노트에 옮겨적기 시작했는데 놀라운 심령의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때까지 저는 내 인생의 주인이 나인 줄 알았다. 그런데 내 인생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성경 속에서 깨달았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 가운데 나를 불러내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자녀로 부르셨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을 믿기는커녕 저주하고 원수 노릇 하던 나를 동구 밖에서 기다리던 사랑의 하나님, 내 존재 자체만으로 사랑해 주시는 사랑의 하나님을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만났다”고 했다.
이어 “드디어 로마서 8장 28절 말씀에 이르렀고, 그다음 이어지는 구절에 눈이 휘둥그레졌다.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사람의 인생에 일어나게 될 위대하고 경이로운 사건이 기록되어 있었다. 인생의 좋은 일, 나쁜 일, 착한 일, 치명적인 죄, 그 사람의 어떠한 조건이든 이 모든 것을 합력해서 하나님께서는 결국 반드시 선을 이루신다는 것이었다. 이 하나님이 예수님이 말씀하신 하나님이라면 하나님께 내 인생을 걸겠다고 소리쳤다”고 했다.
이어 “저도 모르게 무릎 꿇고 두 손을 높이 들고 내 출생 배경, 저의 가난, 잘 삐지고 소심하고 용기 없는 저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 합력해서 반드시 선을 이루신다는 걸 믿는다고 고백했다. 마지막으로 저에게 불치병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이 병을 고쳐 달라고 기도했다. 그다음 저도 모르게 병 낫기를 간절히 바라지만 그대로 있는 게 유익이라면 그것도 감사하다고 기도했다. 10월 3일 밤 개천절, 내 인생에 하늘이 열린 날이다”라고 했다.
최 간사는 “10월 9일, 제가 주머니에 도토리를 한가득 넣고 참나무숲 한 가운데 서 있는 꿈을 꿨다. 제가 걸어 다니면서 도토리를 줍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꿈이 아니라 생시였다. 저는 제 다리가 언제 나은 줄도 몰랐다. 저는 기도원 산비탈을 미친 듯이 뛰어 내려가서 교회에 전화를 걸어 하나님이 내 다리를 고쳐주셨다고 외쳤다”고 했다.
이어 “의사도 못 고치는 병을 기도해서 나았다고 하니까 불교, 유교 집안 장손이 합법적으로 기독교인으로 인정받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제가 예수 믿는 걸로 누구도 뭐라 하지 말라고 집안에 선포하셨다. 그리고 제사 지낼 때 절하지 말고 뒤에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것은 내 인생에 시작된 수많은 기적의 시작에 불과했다”고 했다.
그는 “다시 고등학교에 복학했고, 졸업 후 건축과에 진학했다. 유명한 설계사가 되어 멋진 성전을 지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싶었다.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입상도 하고 지도교수님의 인정을 받는 잘 나가는 건축학도였는데, CCC 간사님의 설교를 듣고 내가 엉뚱한 길로 잘못 가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고 했다.
이어 “이후 마태복음 25장 달란트 비유를 읽고 나서 내게 주어진 작은 재능 하나라도 땅에 묻어두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에 유익이 되는 일을 성실히 감당하면 똑같은 칭찬과 상급을 내린다는 걸 깨달았다. A4 용지에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재산을 적었다. 나의 재주, 내 육신, 천성적으로 타고나는 기질까지 적었다”고 했다.
이어 “잘 삐짐, 소심함, 눈물이 많음, 결단력 부족, 용기가 없음, 염세주의적인 성격. 적고 나니 눈물이 났다. 그때 내가 너에게 맡긴 이 보화를 네가 이런 식으로 모욕할 수 있냐는 음성이 들렸다. 깜짝 놀라 엑스표를 긋고 섬세함, 감수성이 풍부함, 예술성, 착함, 분석을 잘함, 치밀함, 끈질기고 인내심 있음, 눈치가 빠름, 이상이 높음이라고 적었다. 지금껏 마귀의 시각으로 나를 분석하고 평가하고 있었다. 그런데 동전의 뒷면을 보니 제가 걸작품 중의 걸작품이었다. 그날 새벽 하나님께서 제 내면을 치료하셨다”고 했다.
이어 “엉엉 울며 무릎을 꿇고 종이를 들고 하나도 땅에 묻어두지 않고 하나님과 이웃에 유익이 되는 길을 가기 원한다고 했다. 기왕이면 복음을 위해 쓰임 받고 싶다고 기도하는 순간 손으로 그린 성가 악보를 보여주셨다. 제가 종이에 적은 모든 재능을 100% 쏟아 부어서 할 수 있는 일이었다”고 했다.
그는 “1987년,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CCC 회관에서 대구지역 월요 정기 찬양집회를 시작했다. 이게 소문이 나서 큰 규모로 커졌다. 그때는 악보를 복사해서 나눠주던 시대인데, 너무 낭비가 심했다. 그래서 작게 축소해서 A4 용지에 네 곡을 넣은 구성으로 160곡짜리 악보집을 내기 시작한 게 ‘찬미예수’의 시작이다. ‘찬미예수300’이 나왔을 때 대구경북지역에 퍼졌고. ‘찬미예수400’이 나왔을 때는 한국교회에 퍼졌고, ‘찬미예수1000’이 나오자 전 세계 한국인이 세운 교회에 퍼져서 쓰임 받았다. ‘찬미1500’은 단일로 최소 100만 부가 나갔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은 동시에 또 다른 역사를 쓰셨다. 하늘에서 가사와 멜로디가 동시에 쏟아졌다. 스물다섯 나이에 주신 노래가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가서 제자 삼으라’다. 이 노래들이 한국교회에 퍼지기 시작했고, 하나님께서 이 노래를 들어서 쓰기 시작하셨다. 또 음악선교단과 전국을 다니면서 기적의 하나님을 찬양하고 다녔다”고 했다.
최 간사는 “내 인생의 클라이막스라고 보일 만한 그때 목소리가 안 나오기 시작했다. 성대를 혹사해서 물혹이 생겼는데 병원에선 수술하고 2~3개월 쉬면 낫는다고 했다. 병실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목에 안수기도하자 그 다음날 물혹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다. 그런데 여전히 목소리가 안 나오는 기적이 저를 기다리고 있었다. 6개월이 되어도 회복이 안 되자 사역을 위임하고 아내와 함께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고 했다.
그는 “2년이 지나도록 목이 회복되지 않았다. 그때 가장 많이 들었던 소문이 제가 후두암에 걸려서 죽었다는 소문이다. 이해가 안 되고 잠시 원망의 마음이 들 뻔했다. 그때 제 귀에 네 인생에 최고의 기적이 무엇이냐는 작은 질문이 들렸다. 저는 고등학교 3학년 때 불치병이 나은 거라고 소리쳤다. 그런데 다시 그 질문이 귀에 맴돌았다. 자살을 생각하던 나를 들어서 성가를 만들고 문서 사역자, 집회 인도자로 쓰시는 게 최고의 기적이라고 답했다. 그게 네 인생 최고의 기적이냐는 물음에 묵상하다가 눈물이 확 쏟아졌다”고 했다.
이어 “내 인생 최고의 기적은 불치병 나은 게 아니라 10월 3일 밤에 일어난 기적이었다. 내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었다. 어머니는 도망가 있고 저는 여전히 가난하고 소심하고 용기도 없는 불치병 환자였다. 누가 봐도 끝난 인생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이 이루실 선을 바라보면서 평안 가운데 감사할 수 있는 인생, 이게 예수 믿는 사람의 인생에 일어나는 최고의 기적이라는 걸 그날 깨달았다. 벙어리로 있는 산속에서 로마서 8장 28절의 하나님을 다시 만났다”고 했다.
그는 “돌아보니 예수 믿고 나서 고난도 많았다. 그런데 주님께서 구원받는 천국 가는 은총, 이 땅에서 쓰임 받는 은총과 더불어 성도이기 때문에 반드시 주어지는 고난과 시련이 있다는 걸 체크해 주셨다. 예수님은 나사로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주어지는 죽을병과 같은 시련이 우리에게도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고 했다.
이어 “그리고 신명기의 말씀을 주셨다. 하나님께선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것인지 우리의 마음을 알기 원하신다. 하나님은 많은 어려움을 통해 우리를 테스트 하시는데, 결국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성도의 모든 아픔과 고난, 시련은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는 자격증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자비와 위로의 하나님은 고난 겪는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가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 고난당하는 또 다른 사람을 위로할 수 있게 하신다”고 했다.
최 간사는 “저는 로마서 8장 28절 다음에 29절이 있다는 걸 미처 몰랐다. 우리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것을 통해서 선을 이루시겠다고 하시고는 그 선 중의 최고의 선이 29절에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게 하시려고 그들을 예정하셨다. 하나님의 최고 관심사는 우리의 인격과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게 만들려는 것이라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다”고 했다.
또 “나는 결코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주셨다. 내가 너와 함께 말 못 하는 벙어리의 골짜기를 함께 통과하고 있다. 이 기간을 통해서 큰 선을 이루겠다는 말씀을 주셨다.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벙어리로 있을 때 다시 만났고, 드디어 하나님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 없으시다는 이 노래가 저의 살아있는 고백이 되었다. 만약 제가 잘 나가고 유명해졌을 때 이 노래를 만들었으면 이 노래는 가짜다. 그러나 내 인생이 끝난 것처럼 보였을 때 이 노래가 저의 살아있는 고백이 되었다”며 ‘오 신실하신 주’를 찬양했다.
그는 “그날 이후 저는 목을 회복시켜달라는 기도를 중단하고 6년 동안 행복한 벙어리로 살았다. 잘나가던 사역자를 갑자기 벙어리로 만들어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위대하고 놀라운 선이 찬미예수1000, 1500이다. 제가 벙어리가 안 됐으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책이다. 갑자기 벙어리가 되어서 할 수 있는 게 악보 그리는 것밖에 없었다. 1년에 600곡, 700곡을 그려서 찬미예수500 다음에 바로 1000이 나왔다. 엄청난 쓰임을 받고 1년 반 뒤에 1500이 나왔다. 겉으로 보기엔 제 인생이 끝난 것처럼 보였지만 그 이면에 하나님께서 이 놀라운 선을 행하셨다“고 했다.
최 간사는 사랑스러운 딸을 뇌종양으로 열여섯 살 때 하나님 곁으로 보낸 이야기를 전하며 “저 같은 완벽주의자는 내가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사라지거나 빼앗기면 못 산다. 그러나 생명과 같은 딸아이를 데려가신 그날에도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불평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주신 자도 여호와요 가져가시는 자도 여호와라는 욥의 고백이 저의 고백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지금 저는 또 다른 사명자의 길을 가고 있다. 저는 이혼한 부모를 둔 아이들, 첩의 자식들, 미혼모의 자녀들과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 저의 출생을 이야기하면 아이들이 마음을 연다. 저는 가난한 이들의 마음을 알기에 가난한 이들을 위한 사역에 모든 것을 전념하고 있다. 저는 특별히 잘 삐지는 사람의 친구가 될 수 있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 중병 환자들, 사랑하는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를 위로할 수 있는 자격증을 갖고 있다. 저를 만나서 손 붙잡고 울면 위로가 된다”고 했다.
마지막으로 “A.M. 오버톤 목사는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을 잃었을 때 ‘하나님은 절대 실수하시지 않으신다’는 시를 썼다. 제가 벙어리로 있을 때 이 시를 만났고, 이 시가 저의 살아있는 곡이 되어서 저의 노래로 만들었다. 하나님은 실수하는 분이 아니다. 저는 ‘운명이여 오라’는 구절을 좋아한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운명, 팔자 그 어떤 것이든 오라, 나 두려워하지 않으리. 이 노래를 선물로 드린다”며 ‘하나님은 실수하지 않으신다네’를 들려준 뒤 간증을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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