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민 목사(베이직교회)가 최근 GoodTV를 통해 ‘편견에 눈이 먼 종교인’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조정민 목사는 “믿음을 크게 둘로 나눈다면 ‘올바른 믿음’과 ‘빗나간 믿음’이 있다. 유익한 믿음과 해악한 믿음이 있다. 하나 되게 하는 믿음도 있고 분열시킬 수 있는 믿음도 있다”며 “어쩌면 우리 안에 이 두 가지 믿음이 다 있다. 믿음으로 인해 온 인류가 살아오면서 상상할 수도 없는 열매도 얻었겠지만, 상상할 수도 없는 해악도 경험했다. ‘믿음’이란 이름으로 인간이 끼친 해악과 인간이 받은 저주는 어떤 것인가? 과연 어떤 믿음이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믿음인가? 아니면 ‘해로운 믿음’들은 어떤 뿌리에 근거하고 있는가? 그리고 해로운 것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살펴보자”고 운을 띄었다.
그는 “예수님은 초막절에 ‘누구든 목마른 자들은 내게 와서 값없이 마시라’라고 하셨다. 어쩌면 이 자체가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자체가 복음이었을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목마르고 허기진 시대에 ‘누구든지 와서 목을 축여라’는 그 자체가 생명의 말씀”이라며 “그러나 어떤 이들은 흘려듣거나, 반발하거나, 조롱하거나, 무시하는 반응을 보였다”라고 했다.
이어 “요한복음 6장 14절을 보면 ‘어떤 이들은 예수님을 외면했지만 어떤 이들은 예언된 메시야다’라고 반응했다며”며 “안 믿는 이들은 왜 반대했는가? 이들은 성경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강력한 편견이 있었다. ‘어떻게 갈릴리에서 메시야가 어떻게 나오는가. 메시아는 예루살렘에서 나와야 한다’라는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알았지만 정작 예수님께는 관심이 없었다”라고 했다.
또한, “예레미야서나 미가서에 예수님이 유다지파에서 다윗의 후손으로 베들레헴에서 나온다는 것이 기록됐다”며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이 갈릴리라는 시골에서 목수로 성장했다는 것만 알았지 그분이 성경의 예언대로 충족된 대로 오신지는 몰랐다. ‘갈릴리 시골 구석에서 성장한 목수의 아들이 어떻게 메시야일 수가 있는가’라는 편견 때문에 성경은 알았지만 정작 성경대로 해석할 생각조차 품지 않았고 예수님을 통해 성경이 성취됐다는 것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지 않았다”고 했다.
조 목사는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기술하며 구약에 예언된 예수님의 혈통적, 육신적 배경에 초점을 맞주지 않는다. 그는 그것에 대해 세세하게 설명하지 않고 있다. 요한은 근본적으로 예수님은 ‘위로부터 오셨다, 아버지로부터 오셨다, 하나님으로부터 오셨다’라고 반복적으로 강조하며 서술하고 있다”며 “이것이 더욱 그 당시기득권 층에 궁금증을 유발하거나 더욱 큰 반발을 일으켰다”고 했다.
이어 “성경을 아는 사람들은 예수님을 반대했지만 예수님에 의해 안식일에 눈을 뜬 맹인은 ‘이 사람이 하나님께 오지 않았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었으리이다’라고 고백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봤다”며 “그 맹인은 바리새인들이나 관원들 종교지도자들, 율법학자나 서기관보다 한참 나중에 왔지만 예수님을 먼저 알아봤다. 우리 중에도 그럴 수 있다. 성경은 그토록 많이 알지만 정작 나중 된 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활력이 있어 우리의 마음을 찔러 쪼갠다. 그러면 아프다. 그런데 시원하다.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감찰한다. 그러면 불편하다. 진리란 그런 것”이라며 “이것이 불편한 사람이 누군가? 종교전문가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메시야이면 안되기 때문에 거부한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하는 하나님’이어야 하기에 예수님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라고 했다.
조 목사는 “가장 율법에 통달한 사람들, 율법을 전유물처럼 가지고 있던 사람들에게 성경이 오히려 눈을 가리고, 성경이 편견이 되고, 성경이 오히려 선입견이 됐다”며 “성경도 색안경이 될 수 있다. 무섭도록 선입견과 편견의 원천이 될 수 있다. 성경이 문제가 아니다. 성경을 받아들인 그들의 태도가 문제”라고 했다.
이어 “성경마저도 자기중심적으로, 자기유익을 위해서, 성경마저도 자신의 기득권을 확고히 쌓기 위한 수단으로 삼았다. 그래서 정작 하나님을 눈앞에 두고도 하나님을 거부했다.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기보다는 믿음으로 믿음을 거부했다. 이 얼마나 역설적이고 어처구니 없는 일인가”라며 “강한 믿음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사람들과 세상의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하나님을 망령되게 일컫는다. 심지어 하나님을 잘 믿고 있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는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시대는 없는가”라고 했다.
그는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는가’하는 나다나엘도 예수님의 제자가 됐다. 그는 선입견의 틀이 깨졌고, 색안경을 벗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더욱 강고한 기득권의 틀이 있었기에 그 틀을 유지하고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님을 용납할 수 없었다”며 “예수님이 아니라 ‘자기들이 만든 하나님’이 하나님이어야 하고, ‘자신들이 강요하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었다. 어떻게 보면 ‘우상 하나님’을 강요한 것이다”라고 했다.
이어 “그러면서 그 ‘안다’는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끊임없이 자신을 ‘합리화’하고 ‘강변’하는 것에만 쓸 줄 알았지 ‘성경적 지식이 자신의 삶을 바꾸는데 무슨 도움이 됐는가?’”라며 “어쩌면 그 강력한 정치권력과 결탁한 종교시스템을 만들어 백성들을 종교적 박해 속으로 몰아 놓은 사람들이 그 사람들이 아닌가”라고 했다.
또한, “그들은 성경을 끼고 살았지만 보고 싶은 데로 보았고, 읽고 싶은 대로 읽고, 기억하고 싶은 데로 기억하는 사람들이 됐다. 어쩌면, 그들은 어떤 성경이 들어가도 생명의 열매가 맻칠 수 없는 사람이 되고 만 것인지도 모른다”라고 했다.
조 목사는 “좋은 나무에서는 나쁜 열매를 맺지 않는다. 열매를 보면 나무를 안다. 사과나무에서 배가 열리지는 않는다. 열매를 보면 그들이 누구였는지 드러나고 안다”며 “그들은 그들이 평생 가졌던 ‘좋고 나쁘고’의 기준, 강력한 편견이 그들의 신앙 전체를 ‘좋고, 나쁘고’로 양분하는 편견적 신앙의 테두리를 만들었다. '나' 보기에 '나' 좋은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기준이 일반 백성들에게 강력한 기준으로 가르치고자 했고, 제시하려고 했고, 그 백성들을 병들고 목 마르고 허기지게 했다”고 했다.
이어 “예수님은 종교인들이 세운 ‘좋고, 나쁘고’의 기준, 그들이 여전히 먹고 있는 선악과를 빼앗아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살리기 위한 거룩한 열정으로 이 땅에 오셨다”며 “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뿌리채 뽑고자 하는 것이 그분의 이땅을 향한 발걸음”이라고 했다.
그는 “어쩌면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메달았을 때 승리했다고 생각했지만, 십자가가 골고다 언덕에 뿌리 박힘으로서 골고다로 상징되는 종교인들의 깊은 마음 속에 뿌리박힌 편견이 두 쪽으로 쪼개졌다”며 “그들이 자신의 ‘좋고, 나쁨’의 기준으로 율법을 세워놓은, '종교적 자유'가 아니라 '종교적 질곡' 속에 가둬놓은 것들을 해방하시기 위해서 골고다에서 피 흘리시고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값없이 마시는 생명수가 됐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날마다 하나님의 생명수를 마실 때, 종교인들의 만들어 놓은 ‘좋고 나쁨’의 틀을 벗어나서 하나님의 사랑의 기준으로 우리는 새롭게 인생을 살아낼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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