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남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변화는 그가 삶에 있어서 가장 어려운 시기를 감옥에서 보내는 동안에 회개(悔改)하고 예수를 영접하여 기독교인이 되었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가 직면한 상황은 영적(靈的)인 세계로부터 도움을 구하지 않기에는 너무나도 암담하였다. 그는 배재학당에서 예배에 참여하기는 하였지만 의무적으로 참여하는 강좌나 예배가 종종 그러하듯이 냉소적인 태도로 대하였었고 이미 자신이 배우고 익힌 전통적인 사고로 인하여 기독교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못하였다. 그러나 감옥이라는 혹독한 환경에 처한 그는 오랫동안 들어온 구원의 복음을 되새기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렇지 않기에는 그의 처지가 너무나도 참혹하였다.
사실 우남의 사상적인 변화는 이미 신문화를 접하고 신교육을 받았던 배재학당에 입학하면서 시작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가 한성감옥에서 그리스도인으로 회개하고 변화되는 순간은 그의 삶의 전적인 변화였으며 장차 대한민국의 정치사가 변화되는 시간이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남은 국내 양반층 지식인 가운데 거의 처음으로 옥중에서 기독교로 회심하였고, 회심 후 약 40명의 동료 죄수 및 옥리를 회심하게 하였다고 하였다. 우남의 회심이야 말로 감옥 안에서 그의 신상에 일어난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던 것이다. 우남은 한성감옥에 투옥된 직후 육체적, 정신적 한계상황에 직면했을 때, 애비슨 선교사를 통해 선교사 에디(Sherwood Eddy, 1871-1963)가 보내준 영문『신약성서』를 입수하고 이 책을 정독하고 회심하게 되었다. 그는 기독교에 귀의(歸依)하는 순간부터 감사, 기쁨, 소망이 넘치는 영어(囹圄)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자기를 보호하고 있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다. 그는 감옥에서 성경 반, 옥중학당 및 서적 실을 조직, 운영하고 죄수 및 옥리들에게 기독교 복음을 전파한 결과 간수장이었던 이중진(李重鎭) 형제를 비롯하여 이상재, 이원긍, 유성준, 김정식, 홍재기, 신흥우, 안국선 등 40여 명의 죄수들이 기독교로 개종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한국 개신교 사상 대서특필할 만한 업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남은 옥중에서『신학월보(神學月報)』라는 잡지에 6편 이상의 논설을 기고하였고, 개신교를 권장하는 한문 논설을 집필한 사실 역시 한국 기독교사(基督敎史)에서 주목해야 할 사항들이라고 여겨진다. 필자는 이 장에서 우남이 5년 7개월간 영어생활을 할 당시, 한성감옥의 상황을 살펴보고, 우남의 회심과 그 회심의 성격 그리고 그의 옥중 독서, 교육, 전도, 그리고 우남의 옥중 집필 활동을 살펴보려고 한다.
1. 한성감옥의 상황
우남이 갇혀있던 한성 감옥은 조선 왕조 초기부터 존속했던 전옥서를 갑오경장(1894) 때 개칭한 형무소로서 일명 종로감옥이라고도 하였다. 이 감옥의 원래 위치는 현재의 종로구 선린동 41번지, 지금의 영풍문고 언저리였는데 갑오경장 후 서소문 안으로 한동안 옮겼다가 1900년 4월 종로감옥 건물이 개수된 다음 다시 원위치로 환원되었다. 원칙적으로 한 방에 15명을 수용하도록 설계된 감방 안에서 죄수 1명 당 차지할 수 있는 공간은 0.23평 이었다. 감방은 온돌도 있었지만 감방 내의 위생 상태와 형정 질서는 이루 형언할 수 없이 열악하였다.
김형섭은 기록하기를 당시의 감옥이 초만원이고 불결했고, 벌레가 득실거리는 생지옥이라고 묘사했는데,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당시는 정부가 형을 선고받은 죄수들은 말 할 것도 없고, 일반 국민들의 복지에 관하여서도 전혀 관심을 기울이지 않을 때였다. 서울에는 수돗물 혹은 하수처리 시설이 없었고, 위생기준은 전국에 걸쳐서 매우 열악했었다. 1899년 초에 우남에게 신약성서를 공급해 준 미국인 선교사 에디는 한성감옥 내 죄수들의 생활 실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술한 바 있다.
"그들(한국인)의 감옥이란 이루 형언 할 수가 없다. 자백을 받아 내거나 남을 연루시키기 위해 자주 고문을 가하고 죄수들을 축사(畜舍)에 가둔 소떼처럼 이리저리 몰아 부친다. 죄수들은 위생상태가 형편없고 해충이 우글거리는 흙바닥 위에서 숨 막히게 답답한 분위기를 참아가며 잠시도 방을 비우지 못한 채 생활한다. 그들(정치범들)은 흉악범, 무뢰한들과 어울려 있다. 답답한 감방 안에 사람이 너무 많기 때문에 재빨리 칼을 쓰고 준비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과 겹쳐 앉지 않는 한 제대로 않을 수조차 없다. 그들은 간수들과 동료 잡범들에 의해 잔인하게 취급 받는다. 구역질나고 때로는 부패한 급식이지만 약한 자의 몫을 강한 자가 빼앗아 먹는다. 정치범들이 겪는 고문은 죽음의 고통이다. 김 모(某)씨는 고문을 받다가 다리가 부러졌다." (Bible Society Record 63;9 (September, 1918) p. 155, 이 인용문은 에디(Sherwood Eddy)의 저서(The New Era in Asia)에서 챔버래인(Chamberlain)이 인용한 것이다. 이 자료는 연세대 현대 한국학 연구소 소장 이승만 문서 속에 포함되어 있다.)
우남은 자신의 자서전『청년 이승만 자서전』에서 감옥에서의 생활을 다음과 같이 회고하고 있다.
"7개월 동안 나는 10kg 쯤 무게가 나가는 나무로 만든 목걸이(칼: 수판,首板)를 목에 달고 두 손은 수갑에 채우고 발은 형틀에(차꼬: 足鎖)에 끼워져 있었다. 그런 나에게 다른 죄수들은 몰래 감옥으로 들여온 조간신문에서 내가 사형되었다는 보도를 눈물을 흘리면서 읽어 준 일이 몇 번 있었고 그럴 때마다 나의 선친은 나의 죽은 몸을 매장하겠다고 찾으러 오시곤 하셨다. 사형 선고를 받은 사형수가 나와 같은 형틀에 얽매여 있었다." (이정식, 『이승만의 구한말 개혁운동』, 「청년 이승만 자서전」에서 p. 304.)
서정주는『우남 이승만 전』에서 당시 고문하는 상황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경무청엔 그때 박돌팍 이라는 사람이 경무사(警務使)로 있었는데 그는 손수 승만에게 온갖 고문을 다하였다. 화젓가락에 불을 빨갛게 달구어 팔다리를 지지는 것, 두 팔을 뒤로 틀어서 공중에 오랫동안 매달아 두는 것,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잔인한 형벌을 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미 각오한 바가 있는지라 굳이 끝까지 입을 다물고 박돌팍의 힐난에는 대답도 하지 않았다." (서정주, 『우남 이승만 전』, p. 162.)
한편 이승만 전기를 쓴 올리버는 우남이 고문을 받는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살갗을 파고드는 포승줄에 두 팔이 묶인 상태에 등 뒤로 단단하게 묶여졌고 두 명이 양다리 사이에 주리를 틀고 손가락 사이에는 대나무 가지를 끼워 살점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비트는 고문을 당하였다. 매일같이 마룻바닥에 끌려나와 사지를 큰 대자로 눕히고 죽창 봉으로 살갗이 떨어져 나오도록 채찍질을 계속하였다. 이승만이 강인한 체력이 아니었다면 결코 살아남을 수 없었을 것이다. 밤이면 어두운 고문실에서 끌려나와 어두운 지하실에 던져졌고 아침이 되면, 또 다른 고문을 당하였다." (로버트 올리버,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이승만』 p. 60-61.)
우남은 이처럼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며 하나님을 찾게 되었고 비로소 처음으로 기도를 드리고 회심하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 나의 조국을 구원해 주소서. 오, 하나님 나의 영혼을 구해 주소서. (Oh, God, save my soul and save my country.)” 우남 자신은 『신학월보』에서 자신의 옥중 경험을 다음과 같이 남기고 있다.
"혈육의 연한 몸이 5∼6년 육고(肉庫)에 큰 질병 없이 무고히 지내며 내외국 사랑하는 형제자매들의 도우심으로 보호를 많이 받았거니와 성신이 나와 함께 계신 줄 믿고 마음을 점점 굳게 하며 영혼의 길을 확실히 찾았다. 작년 가을에 호열자가 옥중에 먼저 들어와 4∼5일 동안에 60여 명을 목전에서 끌어내었다. 심한 때는 하루 열일곱 목숨이 앞에서 끊어진 때는 죽는 자와 호흡을 상통하며 그 수족과 몸을 만져 시신과 함께 섞여 지냈으나 홀로 무사히 넘기고 이런 기회를 당하여 복된 말씀을 가르치매 기쁨을 이기지 못하였다." (최종고, 『대한민국 건국 대통령 사상록 - 우남 이승만』, p. 32. 신학월보, 1903. 5.)
2. 우남의 회개(悔改)와 회개의 성격
기독교인으로 처음으로 입문하는 과정을 회개 혹은 회심이라고 한다. 회개란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이다. 기독교에서의 회개(metanoia, repentance)는 신앙생활로 들어가는데 필수적인 요건 중에 하나로 생활의 전비(前非)를 자각하여 잘못된 죄인임을 깨닫고 뉘우치며 반성하여 그로부터 돌아서서 고치려는 뜻을 세워 새로운 생활로 들어가려는 일 혹은 잘못을 뉘우치고 고침인 것이다.
존 칼빈(J. Calvin)은 회개는 우리의 생활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전향하는 것인데, 그 전향은 하나님을 순결하고 진심되게 경외할 때 일어나는 것이요, 그것은 우리의 육신과 옛사람이 죽는 것이며 또한 성령에 의해 새로 사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회개는 신앙의 현관과 같은 것이어서 회개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신앙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이다.
대부분의 신앙인들은 부르심의 과정을 거처 회개하게 되고 회개 후에는 기독교 신앙인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하나님의 부르심과 회개의 과정은 그 사람이 처한 환경과 입장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그의 여러 가지 환경과 여건에 따라서 그의 신앙의 성격, 혹은 신앙의 색깔이 형성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영적형성(Spiritual Formation)이라고 하는 것이다. 이 장에서는 우남의 회개와 그 신앙의 성격을 밝혀 보려고 한다.
가. 우남의 회개
우남의 전기를 쓴 이원순은 우남이 회개하기 전의 상태를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불교도인 어머니가 우남이 배재학당에 다니는 것을 아직 모르고 있을 때에 우남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는 것이다.
"이승만은 자기가 개종하기까지에 대해 다음과 같은 글을 남겼다. ‘가장 기묘하게 생각되는 것은 1900년 전에 죽은 사람(예수)이 내 영혼을 구해 준다는 생각이었다. 나는 자문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 이야기를 해 주던 이상한 사람들이 이처럼 바보 같은 교리를 믿을 수 있을까? 확실히 그들은 이 무지한 우리에게 믿을 수 없는 사실을 믿게 하려고 온 것이다. 따라서 가난하고 무지한 사람만이 교회에 가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다. 위대한 불교의 지식이나 유교의 지혜를 가지고 있는 교양 있는 학자는 결코 이와 같은 교리에 미혹(迷惑)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결론에 도달하자 나는 아무튼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나는 어머니에게 배재학당에 다니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 할 수 있었다." (이원순, 『인간 이승만』, p.71)
후에 배재학당을 다니는 동안 기독교에 대한 우남의 생각들이 변해 가는 모습을 이원순은 다음과 같이 그리고 있다.
"나는 새벽 예배에 이따금 참석하게 되었고, 그리스도는 구원 이상의 그 무엇을 포함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는 동포애(同胞愛)와 봉사의 복음을 나에게 베풀어 주었다. 나는 이 외국 종교가의 가르침에 마음을 두었고 그리스도는 공자(孔子)와 동일한 위치에 있는지도 모른다고 가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을 생각 할 수는 없었다." (이원순, 『인간 이승만』, p. 72.)
이 이야기는 그가 투옥되기 전까지의 정치운동을 하던 시기에 기독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던 그의 자세와 감정을 명확하게 나타내 주는 이야기이다. 우남은 1899년 초에 체포되어 병영과 경무청을 거쳐 한성감옥에 이감되었고 이곳에서 약 7개월 간 손목에는 수갑, 다리에는 족쇄 그리고 목에는 10kg의 무거운 칼을 쓰고 미결수의 생활을 강요당하였다. 이때에 그는 자신이 조만간에 처형될지도 모른다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심각한 종교적 고뇌를 겪었다. 그때 그는 애비슨(O.R. Avison) 박사에게 사람을 보내어 영어성경과 영어사전을 차입해 줄 것을 부탁하였고 애비슨은 때마침 서울에 부임한 노바 스코티아(Nova Scotia) 출신 선교사 헤로이드(Harroyd)양을 통하여 셔우드 에디(Sherwood Eddy)가 영문 신약성서를 우남에게 차입하여 주었다. 이렇게 입수된 신약성서를 탐독하던 우남은 어느 날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회개하고 기독교에 귀의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 p. 60.)
우남은 이러한 회개의 과정에 관해서 자신의 영문 투옥 경위서(Mr. Rhee's Story of His Imprisonment)에서 자신의 회개 경위를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나는 감방에서 혼자 있는 시간이면 성경을 읽었다. 그런데 선교학교〔배재학당〕에 다닐 때에는 그 책이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는데 이제 그것이 나에게 깊은 관심거리가 되었다. 어느 날 나는 선교학교에서 어느 선교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말씀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나는 평생 처음으로 감방에서 “오, 하나님 나의 영혼을 구해 주십시오. 오, 하나님 우리나라를 구해 주십시오. (Oh God, save my soul and save my country.)”라고 기도하였다. 〔그랬더니〕 금방 감방이 빛으로 채워지는 것 같았고, 나의 마음에 기쁨이 넘치는 평안을 누리면서 나는 〔완전히〕 변한 사람이 되었다. 동시에 그 때까지 내가 선교사들과 그들의 종교에 대해서 갖고 있었던 증오감, 그리고 그들에 대한 불신감이 사라졌다. 나는 그들이 우리에게 자기들 스스로 값지게 여기는 것을 주기 위해서 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O. R. Avison, "Memories of Life in Korea." p. 275-276.)
우남은 성경을 읽던 도중에 자신이 배재학당에 다닌 시절에 들었던 선교사의 설교를 떠올리게 되었던 것이다. 우남의 머릿속에 떠올랐던 설교는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해 주신다는 내용이었다. 경무청 감방에서 목에 무거운 형틀을 쓰고, 사형 선고를 기다리는 극한 상황에서 우남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되었고, 예수를 자신의 그리스도로 영접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는 불교인 혹은 유교(儒敎)인에서 기독교인으로 개종(改宗)하였던 것이다. 그리고 우남은 바로 그 자리에서 기도하였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우남의 기도 생활은 그의 일생을 두고 계속되었다고 하와이에서 우남의 마지막 삶을 지켜본 우남의 양자 이인수 박사는 말하고 있다.
이처럼 하나님께 처음으로 기도를 드리는 순간, 우남은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되었다. 지금까지 두려움과 공포로 얼룩진 어둡고 침울했던 마음에 기쁨과 평화가 찾아 온 것이다. 이 짤막한 기도야 말로 유가(儒家)에서 태어났고 독실한 불교도인 어머니의 영향 아래에서 자란 우남이 기독교에 귀의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다음은 우남이 그 당시를 회고한 글이다. 우남은 당시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이 이야기의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저버린데 있다. 어두운 감방 안에서 일부 죄수들은 죽음의 시간을 고통스럽게 기다리고 있었고, 어떤 지들은 교수대로 끌려갔고, 또 다른 이들은 마치 사탄 자신이 영원히 옥좌에서 군림하고 있는 듯 희망의 빗줄기라고는 하나도 없이 끝없이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런 시간과 그런 상황에서 우리 각자는 예수가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해 고통을 받았다고 믿었고, 예수가 당한 무고와 불의는 너무나 현실적이고 참된 것이어서 우리 각자가 이상스럽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다. 우리들은 기독교의 가르침이 진실이 아닐지라도 너무나 이기적이고 이기주의어서 동포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무관심했던 우리 겨레의 심정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유일한 종교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이승만의 비망록에서, 「기독교 선교와 한국의 독립운동』, 을 참조)
이와 같이 우남은 한성감옥 안에서 이상스럽게도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하였고 예수가 자신의 구주가 되심을 고백하였다. 우남은 예수를 구주로 고백하고 하나님을 섬길 것을 다짐하며 기독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이는 마치 감리교회의 창설자 요한 웨슬레(Rev. John Wesley, 1703-1791)가 로마서 주석을 읽다가 가슴이 뜨거워지는 경험을 한 것과 같은 경험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웨슬레의 경우는 다음과 같다. 1738년 5월 24일(수)에 쓴 웨슬레의 일기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있다.
"저녁에 나는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모이는 집회에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참석했다. 그 집회에서 어떤 사람이 루터의 ‘로마서 주석서의 서문’을 읽고 있었다. 오후 9시 15분 전쯤 그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역사하시는 변화를 말하고 있을 때 나는 내 가슴이 이상하게 뜨거워짐을 느꼈다(I felt my heart strangely warmed). 나는 그리스도, 오직 그리스도만이 나의 구주이심을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그리고 그가 나 같은 죄 인의 죄까지도 가져가 주시고,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구원하여 주셨다는 확신을 얻게 되었다. 그 후에 나는 나를 악의에 차서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모욕하고 핍박하던 자를(마 5:44) 위하여 온 갓 정성을 다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거기 모인 모든 사람들에게 내가 새로이 얻은 내심의 체험을 공개적으로 증거 했다. 집에 돌아온 후 여러 가지 유혹으로 괴롭힘을 당했다. 그래서 소리를 치니까 모두 달아났다. 그러나 유혹들은 찾아오고 또 찾아왔다. 그때마다 나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다 본 즉 하나님은 그의 성소로부터 도움을 보내주셨다. 여기서 나는 나의 현재 상태와 나의 과거 상태가 서로 다름을 발견했다. 과거에는 은혜 아래 있고, 또한 율법에게 속하였으므로 비록 전력을 다해 싸웠는데도 패한 때가 많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항상 승리하는 자다." (1738년 5월 24 (수)에 쓴 웨슬레의 일기)
이처럼 웨슬레는 마음이 뜨거워지는 중생의 경험, 성령의 체험을 통하여, 참 믿음 (True faith)를 갖게 되며, 확신(Assurance)을 갖게 될 뿐 아니라, 성경의 말씀을 참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게 된 것이다. 이후부터 웨슬레는 적은 일에나 큰일에나 성서적 그리스도인, 성서적 기독교를 재 긍정하는 감리교회운동을 하게 된 것이다. 웨슬레도 그러했듯이 신자는 이런 성령의 증거를 체험하지 않고서는 참 신자가 될 수 없는 것이다.
이처럼 회개가 이루어진 후에 웨슬리가 감리교회를 세운 것이라면 우남의 회개는 전통적인 사고로 가득 차 있었던 자신의 생각과 생활에 변화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동양의 유교적 사고에 착념해 있던 조선인들의 사고를 서양적 기독교적 사고로 전환하는데 앞장을 서는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옥중에 있었던 우남에게 있어서 회개는 처음에는 참으로 미미하고 보잘 것 없는 것이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우남의 이 회개는 자신의 삶의 가치관을 송두리째 바꾸는 계기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한국이 아시아 지역의 최대 기독교 국가가 되는 데에 단초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우남이 예수를 믿기로 회개한 날짜가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으로 보아서 1899년 1∼2월경 이었을 것이다. 우남이 감옥에서 극한 고문을 받으며 육체적인 고통 속에서 괴로워하면서 주님을 만나는 극적인 경험을 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남이 양반출신의 지식인으로서 국내에서는 거의 최초의 개신교도로 회심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 p.61.)
옥중에서 종교적 중생(重生)을 경험한 우남은 그 후 모진 고문을 거뜬히 이겨 냈으며, 누추한 감옥 안에서 형언 할 수 없는 안위와 평안 그리고 희열을 느끼게 되었다. 후일 그는 자기의 자서전 안에서 “나는 6년 반 동안의 감옥살이에서 얻은 축복에 대해 영원히 감사한다”라고 고백하였다. (이정식, 「청년 이승만 자서전」, p 439.)
일단 기독교인이 된 우남에게는 예상치 못했던 활력이 솟아났다. 그 결과 그는 감옥 안에서 독서, 전도, 교육, 저술 활동을 눈부시게 펼칠 수 있었다. 그가 제일 먼저 착수한 일은 미국인 선교사가 차입해 준 성경을 공부하는 것이었다. 가끔 벙커(D. A. Bunker),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존스( George H. Jones) 게일(J. S. Gale) 등 미국인 선교사들이 감옥을 심방하여 그들의 성경 공부를 도와주었다. 이러한 성경연구를 통해 우남은 옥중에서 한국 개신교 역사상 처음으로 40여명의 양반(兩班)출신 관료 지식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그는 이러한 자신의 신앙 체험담을『신학월보』등 선교잡지에 기고하였다.
특히 그는 이상재, 이원긍, 김정식, 홍재기 등 과거 독립협회에서 함께 활동했던 양반 지식인들이 감옥에 들어오자 그들과 더불어 성경공부와 신학연구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고 1902년 12월 28일에는 감옥 안에서 처음으로 예배를 드렸다. 그 결과 그와 그의 신앙 동지들은 한성 감옥을 복당(福堂: The Blessing Room)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회개 이후에 그의 사고에 거의 혁명적인 변화가 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그의 일생에 걸쳐 선한 영향을 주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그가 남긴 여러가지 문헌들을 통하여 알게 된다. 기독교 개종을 통해 전통적, 유교적 사고를 하는 전 근대적 인간에서 이제 그는 서구적, 기독교적 사고를 하는 근대적 인간으로 탈바꿈한 우남의 인생관, 정치관에는 근본적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이다.
우남은 옥중에서 기독교에 귀의함으로써 그의 사상에는 근본적인 변화가 발생하였다. 투옥되기 전에 우남은 국내의 다른 개화파 지식인들에 비해 더욱 ‘급진적’인 인사였다. 그는 부모의 훈도와 서당교육을 통해 받은 유교 및 불교의 영향 때문에 한국적 미풍양속을 보수하려는 동도서기(東道西器)적 사고체계의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나 옥중에서 기독교도로 회개한 다음, 그는 ‘동도’(東道)에서 멀리 떠나 탈아입구론(脫亞入歐論)자들의 입장에 다가갔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남은 기독교 회심을 통해 -그의 선배 혹은 스승이었던 윤치호와 서재필에 이어- 서양화된 ‘근대적 인간’으로 탈바꿈을 한 것이다. 그는 한국 역사상 국내에서 최초로 탄생한 동·서문화의 혼합형 인간이기도 했다. 이 점에서 한성감옥은 그에게 사상적인 용광로였다고 말할 수 있다. 기독교인으로 회개한 다음 우남의 인생관, 정치관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고 종래의 인생계획은 수정되었다. 기독교적인 근대적 인간이 된 우남의 사상과 행동에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변화가 일어났다고 본다.
우남은 종전의 정치 지상주의에서 벗어나 자기 인생을 정치개혁 보다 더 중요한 일 즉 기독교 전도 사업에 바치기로 결심하였다. 좀 더 구체적으로 그는 투옥 전에 구현하려 했던 정치 제도의 개혁보다는 기독교 교화를 통한 동족의 정신적, 도덕적 자질 향상을 우선시하게 되었다. 그 결과 그는 조국을 동양 최초의 예수교 국가로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이처럼 기독교 개량주의적 입장을 택함으로써 그는 종전의 급진주의적 정치개혁 노선을 버리고 점진주의 노선을 택한 셈이다.
그렇다고 우남의 정치사상이 전보다 더 보수화되었다고 볼 수는 없다. 왜냐하면 그는 조선왕조의 전제 군주제도를 입헌 군주제로 개혁하려 했던 종전의 집념 대신 -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 자유· 평등· 민주주의· 법치주의· 국제주의를 바탕으로 한 모범적인 기독교 국가, 미국의 공화제를 본받아 신(新)대한 [공화국]을 건설하려는 꿈을 꾸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우남은 기독교 회심을 계기로 개혁가(reformer)에서 혁명가(revolutionist)로 바뀌었다. 이렇게 그의 사상이 기독교 내지 미국 중심으로 바뀌었기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일본, 일본인, 친일 개혁파들에 연연하지 않고 미국과 미국인, 특히 선교사들과 친화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던 것이다. (유영익, 『젊은 날의 이승만』, p. 158-160.) <계속>
※ 지면 관계 상 일부 각주는 생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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