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으로 초기 기독교에서 성모마리아를 기렸던 운동은 일종 여성운동이었다. 크리스천 여성들은 동정녀 마리아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였던 그 품성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품성은 1531년 멕시코 과달루페에서 발현한 성모마라아의 품성을 본받자는 마리아니스모(Marianismo) 현상에서 보는 바와 비슷하다. 그 여성적 덕성은 대인관계에서의 하모니, 내적 힘, 자기희생, 가족에의 헌신, 순결, 도덕성, 순응성, 그리고 침묵 등이다.
중세 기독교 시대 내내 여성들에게 이런 덕성이 요구되었다. 당연히 이런 가치관은 현대 세속적 페미니스트들은 시대착오적이라고 한다. 그러나 여성에게도 영성이 있다는 생각은 중세에도 존재하였다.
19세기에 등장한 여성해방운동은 투표권 같은 기본권 탄원 수준이었지만, 당시 여성들은 남자들에 의해 존경받고 보호받기를 원하였으며, 남자들의 자리를 대신하겠다고 하지 않았다. 당시 크리스천 페미니스트들은 남녀평등 주장의 근거를 성경에서 찾았다. 당시 크리스천 여성들은 역사적으로 유명한 기독교 절제운동을 벌렸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크리스천 여성들도 동시대의 맹렬한 인권운동과 성혁명에 영향을 받았다. 크리스천 페미니스트들이 등장하여 결혼과 교회 내에서의 불평등에 대해 글들을 쓰기 시작하였다. 이에 호응하여 크리스천 페미니스트들의 단체들이 생겨나, 조직적 활동을 시작하였다. 급진페미니스트들이 여성우월주의를 넘어 젠더(남녀) 구별 자체가 없애자는 극단적 주장까지 하고 있는 것에 비해 크리스천 페미니즘은 아직 온건하다.
크리스천 페미니스트들은 주로 삶과 교회 내에서의 여성의 가치와 여성의 도덕성을 강조하고, 결혼에서의 성경적 남녀평등과 여성의 도덕적 및 사회적 능력을 주장하고, 성경읽기에서 생식권이나 젠더중립(gender neutral)을 찾아보고, 여성적 영성 또는 젠더초월적 신성을 탐구하고, 교회내 리더쉽에서의 남녀평등의 증진을 옹호한다.
논점의 차이에 따라 크리스천 페미니즘에 대채로 다음과 같은 분파들이 있다.
보완주의는 남자와 여자는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 역활과 책임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다. "존재론적으로는 동등하나 기능적으로는 다르다“(Ontologically equal, Functionally different)는 것이다.
기독교적 가부장제(Christian patriarchy)는 일반적인 개혁복음주의 프로테스탄트의 견해이다. 하나님께서 창조적 질서로 남녀에 구별되는 역할을 주셨다고 하며 위계적 질서를 강조한다. 같은 원리로 가족에서는 아버지가 가장으로 가족에 대해 책임자, 지도자 (생계)제공자, 그리고 보호자가 된다. 가족에서의 리더쉽은 그대로 교회와 사회로 이전되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개념은 구약적 세계관이라 비판된다.
기독교 평등주의(Christian egalitarianism)는 페미니스트운동과 선을 그으며, 흔히 젠더 평등과 공평(gender equality and equity)을 옹호한다. 성경은 가정에서 남녀평등과 동등한 책임을 명하신다는 것, 여성도 성직자로 영적 권위가 있다는 것, ”서로 복종하라“ 등을 강조한다.
복음주의적 프로테스탄트 기독교 프로페미니즘(Evangelical Protestant Christian Profeminism)(프로페미니즘은 회원은 아니지만 페미니즘 운동의 동기를 지지한다)은 남녀차별은 안된다고 보지만, 남녀 차이는 인정하고 옹호한다. 이들은 LGBT와 낙태도 반대한다. 그들이 보기에 급진주의자들이 남녀 차이를 없애려고 하는 것은 모성과 가사(homemaking)를 무시하는 것이고, 미국의 일상적 여성을 대변하지 않는 극단적 행동이다. 이런 주장은 반페미니스트 복음주의와 유사하다.
카톨릭 신페미니즘은 교황 요한바오로 2세의 ”여성의 위엄“(Mulieris dignitatem)이라는 교서가 그 발전에 영향을 주었다.
신(보수적) 페미니즘 또는 반동페미니즘은 급진적 페미니즘에 대한 반동으로 등장한, 반드시 기독교적은 아니지만, 보수적 페미니즘들이다. 이들은 섹슈얼리티의 정치화를 반대하고, 가족체계를 옹호하며, 남녀차이를 인정하고, 여성성과 모성을 옹호한다. 그러면서 남성지배에 대한 반대를 우선시하지 않는다, 이 그룹에도 균형적 페미니즘, 우익페미니즘, 모성페미니즘, 공정페미니즘, 개인주의 페미니즘, 국가여성파티, 국가페미니즘, 제국주의페미니즘, 여성공정활동법연맹 등 여러 분파들이 있다.
이처럼 크리스천 페미니즘은 가능하지만, 복잡하다. 페미니스트들이 뭐라고 하든 우리 일반 크리스천들은 성경에서 계시하는 바에 따라 해답을 찾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형상대로 인간을 남녀로 창조하셨고(창 1:27, 막 10:6-9)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었다. 그리고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루라고 하시었다(창 2:24). 창세기 2:20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여자를 원래 남자의 배필(helper)로 창조하시었는데, helper는 복종하는 노예를 의미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돕는 분(helper)이시듯, 돕는 것(helping)은 위대하고 명예스러운 특성이다.
성경에는 하나님을 섬기거나, 예수님을 따르던 수많은 위대한 여성들이 등장한다: 구약에는 드보라,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왕후 에스더, 모세의 어머니와 누이, 셀로페하드의 딸들(상속권을 주장), 에브라임의 딸 세에라(도시를 건설하였음) 등이 있다. 신약에서는 막달라 마리아, 사마리아 여인, 마리아와 마르다, 브루스길라, 등등이 있다. 특히 시편 68:11에, ”주께서 말씀을 주시니 소식을 공포하는 여자들은 큰 무리라“는 말씀이 있다. 이는 요즘 자녀들의 국가성교육 문제로 추운 거리에서 애쓰시는 어머니들이 위대하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무엇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예수믿고 구원받음에는 남녀 구별이 없다(요 3:16). 예수님께서 여성들에게 보이신 공감 능력은 실로 경이롭다.
하나님께서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신다(롬 2:11). 성경은 끊임없이, 사람을 남녀로 차별하지 말며(약 2:1; 롬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에(갈 3:28),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며(엡 5:21), 서로 사랑하라(요 13:34)고 명령하시었다. 고전 13장은 온통 사랑에 대한 교훈이다.
특히 남자가 여자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라고 명령하시었다(벧전 3:7).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사랑하라(엡 5:26), 또는 남편들이 자가를 사랑하듯 자기 아내를 사랑하라(엡 5:31)고 하시었다.
아들 르무엘 왕에 대한 어머니의 훈계(잠언 31장)에서 언급한 ”현숙한 여인“의 모습은 남자 이상으로 영웅적이다. 꼭 읽어보시기 권한다. 흥미있는 구절은 단연코 3절 ”서원대로 얻은 아들아 내가 무엇을 말하랴. 네 힘을 여자들에게 쓰지 말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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