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법의 역설
문재인 정부에 들어와 전광훈 목사를 비롯하여 일부 목사들이 교회 예배에서나 대규모 옥외 집회를 통해서 직접 정권을 비난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목사들의 정치적 발언이 어디까지 허용되는지가 법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2020년 4.15총선을 앞두고 교회의 예배도중 설교에서, 특정 정당 후보의 지지를 호소한 목사에게 유죄(벌금형)를 선고한 판결(1)과 그 반대로 집권 여당과 대통령을 비난하고 지유우파 정당 지지를 주장한 전광훈목사, 김진홍목사에게 무죄를 선고한 판결(2,3)을 앞에서 소개하였다.
이처럼 유사한 사안에서 법원이 엇갈린 판결을 내린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판결 1에서는 불과 10여명의 교인이 모인 작은 교회 예배에서, 그것도 전체 50분에 걸치는 설교 중 1분 30초라는 짧은 시간에 특정 정당 후보자 지지를 호소한 목사에게는 유죄판결을 하였음에 반해 판결 2와 3에서는 수천, 수만명이 모인 대중집회에서 집권 여당과 대통령을 비난하고 지유우파 정당 지지를 주장한 목사에게는 무죄를 선고하였다. 발언의 수위나 파급 효과면에서 훨씬 더 죄질(?)이 무거워 보이는 전광훈, 김진홍 목사에게는 무죄가 선고되고 작은 교회 목사에게 유죄가 선고된 것은 우리 상식에서 볼 때 얼핏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선거법의 역설인 것이다.
민주주의와 선거
민주주의는 다수의 지배이며 이를 실현하는 제도가 선거이다. 선거에서 이기는 쪽이 정권을 잡고 지배한다. 결국 누가 더 많은 지지를 받느나의 싸움이고 유권자의 지지를 얻기 위해 각 정치집단은 선거운동을 한다. 이러한 민주정치의 핵심인 선거운동의 자유와 공정을 보장하기 위해 제정된 법이 공직선거법이다. 공직선거법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고 하면서도 수많은 제한사항을 두고 있다. 대표적으로 선거운동기간의 제한, 선거운동을 할 수 있는 사람의 제한, 선거운동방법의 제한이며 그 위반에 대해서는 당선무효, 형사제제 등 벌칙을 부과한다.
‘선거운동’이란 무엇인가 ?
대법원은 공직선거법에서 말하는 선거운동을 “특정 선거에서 특정 후보자의 당선 또는 낙선을 도모한다는 목적의사가 객관적으로 인정될 수 있는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로 정의한다. 이에 따르면 선거법상 금지 또는 허용되는 선거운동의 핵심적 지표는 ‘후보자의 특정’과 ‘행위의 능동성과 계획성’이다.
첫째, 공직선거법이 당선'의 기준을 사용하여 '선거운동'의 개념을 정의함으로써, '후보자를 특정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선거운동의 요건으로 삼고 있다. 그러므로 선거운동에 해당하기 위하여는 반드시 특정 개인 후보자의 존재가 필요하고, 개별 후보자들을 특정할 수 없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만으로는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 다만 인물에 대한 선거가 아닌 정당에 대한 선거로서의 성격을 갖는 비례대표국회의원선거에 있어서 반드시 그 정당 소속 후보자들이 개별적으로 특정되어야 할 필요는 없다.
둘째, 선거운동에 해당하려면 후보자에 대한 일반적 지지나 비판을 넘어 능동적이고 계획적인 행위이라야 한다. 따라서 선거에 관한 단순한 의견개진 및 의사표시이거나 투표 참여를 권유하는 행위, 특정 정당에 대한 일반적인 비판 또는 지지를 호소하는 것은 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 나아가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나 비난 행위도 이를 개별적으로 말로 하거나 전화로 하거나 문자메시지 카톡등 SNS등을 통해 전달하는 것은 허용된다.
결국 판결 1에서 목사에게 선거법 위반죄를 인정한 것은 문제의 발언이 415총선에서 각 당의 후보자가 결정된 후 특정 후보자에 대한 지지 발언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비해 판결 2,3에서는 후보자가 결정되기 이전에 특정 정당에 대한 일반적인 지지나 비난으로 선거법이 금지하는 사전선거운동에 해당하지 않는다. 청중의 다수나 발언 수위는 선거법 위반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 되지 않음을 유의해야 한다.
선거운동을 할 수 없는 사람은 누구인가?
국민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선거의 평온과 공정을 보장하기 위하여 대통령을 위시한 공무원과 같이 공익을 대표하는 사람이나 직무의 성질상 정치적 중립성이 요청되는 사람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또한 18세 미만의 미성년자나 선거권이 없는 자, 외국인 등은 선거운동을 할 수 없다. 목사와 같은 종교인은 공직자가 아니기 때문에 개인 자격으로는 얼마든지 합법적인 선거운동을 할 수 있다.
문제는 목사가 교회라는 특정한 조직 내에서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은 금지된다는 점이다. 공직선거법 제85조 제3항은 “누구든지 교육적·종교적 또는 직업적인 기관·단체 등의 조직내에서의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에 대하여 선거운동을 하거나 하게 할 수 없다”라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결 1에서 보면 목사가 불과 10여 명의 소수 교인들에게 한 짧은 설교지만 이는 교회라는 종교단제조직 내에서 직무상 행위를 이용하여 그 구성원인 교인에 대해 한 발언이기 때문에 금지되는 선거운동에 해당한다고 보았다. 이에 비해 판결 2,3에서 전광훈목사, 김진홍목사의 발언은 목사와 교인이라는 관계성이 없는 일반 청중을 상대로 하는 대중집회에서 한 발언이기 때문에 선거법 위반이 아니라고 한 것이다.
목사의 교회내에서 선거운동금지는 위헌인가?
판결 1에서 피고인인 목사는 종교인 등에 대해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공직선거법 제85조 제3항이 헌법상 기본권인 정치적 표현의 자유, 선거운동의 자유, 종교의 자유를 제한하는 위헌적인 법률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이에 대해 대법원은 “종교직무상선거운동금지조항은 종교적 관계를 이용한 부정선거의 위험을 차단하고, 선거운동에서의 부당한 경쟁 및 과열 양상과 종교와 관련된 후보자들 간의 선거 기회의 불균형을 방지하며, 선거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종교적 단체․기관 내에서 그 구성원들을 상대로 직무상의 행위를 가장하여 이루어질 수 있는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이므로 그 목적의 정당성 및 수단의 적합성이 인정된다”고 하여 위헌주장을 기각하였다.
그러나 헌법재판소에서는 아직 공직선거법 제85조 제3항의 위헌 여부가 다투어 지고 있는 바, 그 위헌주장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첫째, 각국의 입법례에서는 특정한 공무원에 대해서만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다. 이는 공무원이 정치적 중립의무를 지켜야 하고, 그 지위를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불이익을 줄 가능성이 상당하여 상대방의 의사를 왜곡시키거나 억압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사는 정치적 중립의무가 없을 뿐 아니라 설교를 듣는 교인에게 어떠한 불이익을 주면서 교인의 의사를 왜곡시키거나 억압할 가능성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공무원과 동일한 기준으로 선거운동을 금지하는 것은 불합리하다.
둘째, 온라인을 통한 설교는 선거운동이라도 허용되면서 오프라인(현장)상의 설교만을 문제삼는 것은 형평성에도 맞지 않는다.
셋째, 목사의 발언에 영향을 받아 교인들의 의사가 왜곡되거나 억압되어 목사가 원하는 후보자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식 수준에 비추어 볼 때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이다. 오히려 목사가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찬반을 노골적으로 들어내는 경우 교인들이 항의하고 심지어는 다른 교회로 옮기는 시대로서 더 이상 이 조항에 따른 처벌의 필요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결국 이 조항은 헌법상 보장된 종교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는 규정에 지나지 않는다.
정교분리와 목사의 정치참여
대한민국 헌법 제20조는 “정치와 종교는 분리된다”는 정교분리원칙을 선언하고 있다. 한편 개혁교회의 대장정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20장과 이를 따른 주요교단 헌법에도 동일한 내용의 정교분리원칙이 있다. 그러나 현실적인 측면에서 볼 때 종교가 정치에, 또는 정치가 종교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수 없다. 선거로서 정권이 결판나는 상황에서 각 정치집단은 표를 가진 종교의 지지를 받아야 하고 또 종교에 영향을 미치는 각종 법과 제도를 만들어나가는 정치에 종교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영적 지도자인 목사는 현세의 삶에 지친 사람들에게 정신적 위안을 제공하며 영원한 내세를 지향하는 윤리적 삶의 지표를 제공함으로서 이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놓이는 종교인 본연의 사명에 충실해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반목하고 혼탁해서 국민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는 현실정치에 종교가 선한 영향력을 미치는 진정한 길이라고 믿는다. <끝>
서헌제(교회법학회장, 중앙대 명예교수, 대학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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