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 들어 처음으로 발간하는 ‘국방백서’에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敵)으로 규정하는 표현이 다시 들어간다고 한다. 북한 김정은 정권이 하루가 멀다고 각종 미사일을 발사하며 무력도발을 계속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의적절한 조치가 아닐 수 없다.
‘국방백서’에서 북한 정권과 북한군을 ‘적’으로 표현한 규정이 사라진 건 2016년부터다. 문재인 정부는 ‘북한군=적’이라는 표현을 완전히 삭제해버리는 대신 ‘적’의 개념을 대한민국의 주권, 국민, 재산을 위협하고 침해하는 세력으로 간주했다. 이는 주적의 개념을 보다 폭넓게 정한 것처럼 보이나 실상은 북한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 우리의 안보를 해치는 대상에 관한 판단을 흐리게 만든 것에 불과하다.
이런 ‘국방백서’를 대하는 국군장병이 어떤 상대를 염두에 두고 경계근무를 서고 어떻게 나라를 지킬지 혼란스러울 건 자명한 이치다. 결과적으로 이런 비정상적인 안보 자해행위가 군의 기강해이로 이어진 게 아니겠나.
근무 중 바다에서 실종된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한군에 의해 살해돼 소각된 사건의 전모는 또 어떤가. 당시 문 전 대통령의 핵심 측근 중 서훈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바다에 빠져 실종된 국민을 구난하기는커녕 자진 월북한 것으로 조작하고 그에 배치되는 첩보를 삭제토록 지시한 혐의로 구속됐다.
문 정부 안보수장의 이런 혐의가 사실이라면 북한 정권을 ‘적’이 아닌 ‘동지’로 탈바꿈시키지 않은 이상 상상도 할 수 없는 짓이다. ‘적’이 아닌 ‘동지’가 어찌 우리 국민을 총으로 쏴죽이고 불태우는 만행을 저지를 수 있겠나. 그러니 차마 진실을 공개할 수 없어 조작하고 은폐하려 한 것이라는 의심이 든다.
이런 자들이 국가 안보에 구멍을 내고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 ‘종전선언’ 운운했으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지난 정부 집권 5년 내내 앵무새처럼 되뇌어온 ‘평화’ 타령에 대한 화답으로 오늘도 북한이 미사일과 핵무기로 우리를 겁박하고 있다.
북한은 러시아와 중국의 묵인 속에 한반도뿐 아니라 동북아의 평화를 노골적으로 위협해 자유세계의 공적으로 낙인찍힌 상태다. 그동안 북한이 벌여 온 위험천만한 불장난을 묵인 또는 은근히 부추겨온 러시아와 중국도 문제지만 이런 북한 정권에 지난 5년간 질질 끌려다닌 정부 또한 그 책임이 가볍지 않다.
그런 점에서 지난 정부에서 사라진 ‘북한군=적’의 개념을 새로 발간되는 ‘국방백서’에 적시하기로 한 건 국방 안보 ‘정상화’에 한발 더 다가간 유의미한 결정이다. 특히 ‘국방백서’는 국가 안보를 총괄하는 정책 안내서란 점에서 누가 우리의 ‘적’인지를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다.
남과 북이 평화롭게 공존하기 위해서는 무력의 방법이 아닌 대화가 우선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윤석열 정부도 남북관계의 실질적인 개선을 위해 대화로 문제를 풀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선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대화가 모든 걸 대신해주리란 착각은 금물이다. 특히 북한에 매달리고 끌려다니며 평화를 구걸하는 행위를 되풀이해선 안 된다. 우리 스스로가 만든 안보 무력증에 빠지게 되면 그 피해는 국민의 안전과 생명에 결정적인 위해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북한은 최근 각종 미사일을 동해와 서해상으로 퍼부으며 군사 도발의 능력을 과시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 미국과 국제사회를 향한 선전포고인데 정작 유엔과 미국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기류다. 걱정스러운 건 북한 권력자들이 헛된 욕망에 사로잡혀 군사력을 낭비할수록 북한 주민의 삶은 더 피폐해질 것이란 점이다.
북한이 최근 들어 쏘아대고 있는 각종 미사일만 해도 그 비용이 수천억을 넘을 것이란 건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군사 전문가들은 최근 북한이 분단 후 처음으로 동해 북방한계선(NLL) 이남으로 발사한 미사일에만 약 1000억 원의 비용이 든 것으로 추정된다는 분석자료를 내놓기도 했다. 이는 북한이 중국에서 수입하는 1년 치 쌀값에 맞먹는 금액이라니 북한 주민의 목숨값을 허공에 날리고 있는 셈이다.
유엔 제재로 수년동안 정상적인 교역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북한은 코로나 이후 더 극심한 경제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 국무부 대변인실 관계자는 미국의소리(VOA)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자국민을 착취하고 불법 핵무기와 탄도무기 프로그램을 위해 재원을 전용하고 있다”고 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밖으론 한반도와 동북아의 평화에 큰 위협 요인이지만 안으론 북한 주민의 심각한 생존 문제와 직결된다. 이는 곧 북한 주민이 더 가혹한 인권상황에 처해진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국방백서’에 적시된 ‘적’의 개념에서 우리가 명확히 구분해야 할 게 있다. 우리의 ‘적’은 무력도발로 적화통일을 노리는 김정은 3대 세습정권과 북한군이다. 이들에게 핍박을 받으며 하루하루 삶을 지탱하고 있는 북한 주민은 ‘적’이 아닌 우리 모두가 구해야 할 ‘강도만난 이웃’이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이때 저 어두운 동토에 우리가 품어야 할 이웃이 있다는 걸 잊지 말자.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