탤런트 이광기 집사가 지난 25일 부산성일교회(담임 전성철 목사) 금요예배에서 간증을 전했다.
이광기 집사는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의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라는 말씀을 항상 가슴 속에 365일 담고 있다. 나에게 감사함, 기뻐함이 없었다면 오늘 과연 이 자리에서 기쁨의 시간을 나눌 있을지 의문도 들고 세상에 대한 원망도 많이 했을 것이다. 2009년 우리 석규를 떠나 보냈지만, 아직도 생생하다. 저는 죽을 때까지 우리 아이가 항상 함께한다는 마음, 주님이 잘 지켜주시고 제가 천국 가는 날 만나서 아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아빠, 주님의 종으로 멋지게 살다 왔다’고 말하는 그날을 꿈꾸며 살고 있다”며 ‘저에게 주신 기쁨, 감사함을 한 분 한 분에게 주실 거로 생각한다“고 했다.
또 “물질적인 선물도 중요하지만 가장 소중한 선물은 하나님이다. 하나님과 교제와 만남이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선물이라고 생각한다. 믿음이 바탕이 되면 어떠한 어려움이 있어도 분명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하실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는 “아내가 저를 전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 저희 집안이 불교 집안이었다. 결국 저희 어머니는 천국 가기 전에 하나님을 영접하셨고 감사한 선물이라 생각한다. 결국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나를 만들어주시고 나를 하나님 앞에 세워주셨다고 믿는다”고 했다.
이어 “드라마 ‘태조 왕건’으로 상도 받고 인기를 누릴 때 아내가 제 손을 붙잡고 교회에 가려고 했다. 제가 계속 거절하니까 아내가 혼자서 교회를 다녔다. 어느 날 아내가 태국 여행을 잡았는데, 아내가 섬기는 교회의 목사님 내외분과 함께 여행하게 됐다. 밥 먹을 때도 기도하고 잠자기 전에도 기도하고 계속 기도했다. 힘들었는데 5박 6일을 함께 있다 보니까 하나님이 저에게 잠깐 왔다 가셔서 교회는 나가게 됐다”고 했다.
이광기 집사는 2009년 11월 아들 석규가 갑자기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되면서 절망과 슬픔과 고통이 시작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안에 아이의 흔적이 고스란히 있는데 부모로서 너무 힘들었다. 아내는 엄마와 아빠를 너무 좋아하던 아이의 옷자락을 붙잡고 엉엉 울고, 큰아이는 옆에 있던 동생이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니까 혼이 나가서 울 수도 없었다. 그 모습을 보고 내가 여기서 울면 쓰러질 것 같아서 꾹 참았다. 그런데 너무 울고 싶고 온몸이 뜨거웠다. 분노와 화기와 슬픔이 몰려왔다”고 했다.
그는 “많은 분이 석규가 천국에 있을 거라고, 하나님 곁에 천사가 돼 있을 거라고 위로해줬지만 결국 내 곁에 없으니까 위로가 안 됐다. 하필 나에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원망이 됐다”고 했다.
모두 잠든 밤, 비상계단에 앉아서 눈물을 펑펑 흘리던 이광기 집사는 그날밤 처음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나눴다. 그는 “몸이 뜨거워서 베란다 창문을 열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너무 시원했다. 나도 모르게 내 몸은 계속 바깥으로 나가고 있었다. 그 순간 사탄이 나를 흔든다는 게 이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정신이 바짝 들어서 무언가가 하늘을 보게 했는데, 하늘에 별들이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저 별 가운데 작은 예쁜 별이 우리 아이별이라고 생각하면서 처음으로 하나님과 대화를 했다”고 했다.
그는 “하나님께 우리 아이가 하나님 곁으로 가서 천사가 됐다고 하는데 맞냐고 질문했다. 그리고 ‘하나님 저는 내 손에 잡히는 건 다 내 건 줄 알았는데 내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주셨네요. 하나님이 가져가시려면 모든 걸 가져가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우리 아이의 가장 예쁜 모습만 보여주셨습니다’라고 처음으로 그 모습만 보여준 것만 해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리고 저도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고 싶다고 저도 모르게 아버지라고 했다. 그때부터 아버지라는 말이 끊임없이 나왔다. 그때 성령님이 내 안에 오신 걸 느꼈다. 그 이후로 하나님께서 나를 만져주신다는 걸 느낀다”며 ‘성령이 오셨네’를 찬양했다.
이 집사는 “그리고는 제가 하나님만 의지하고 산 것 같다. 그런데 교회에 있을 때는 행복한데 교회 밖으로 나가면 부딪치는 것들이 참 많았다. 그런 가운데 아내와 저는 계속 하나님만 붙잡으려고 노력하며 우리 가족이 흔들리지 않게 잡아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기도 중의 하나가 꿈에 우리 아이가 천국에 있는 모습을 한 번만 보여달라는 기도였다. 그런데 그렇게 안 보여주셨다”고 했다.
이어 “해가 바뀌고 2010년 1월 12일 아이티에 대지진이 일어났다. TV에서 아이들이 우는 걸 볼 수 없어서 TV를 껐다. 그때만 해도 석규 또래 남자아이를 보면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침 그때 통장에 아이의 생명 보험금이 들어왔다. 아내는 밤마다 통장을 보면서 울었다. 저는 아내에게 석규의 보험금을 지구촌 반대편에 우는 아이들을 위해서 기부하고 아이들이 회복도록 기도하자고 했다. 크리스천 정애리 권사의 도움으로 월드비전에 연결해서 보험금 전액을 기부했다”고 했다.
그는 “월드비전에서 제가 석규의 보험금으로 좋은 일을 했다는 게 세상에 알려지면 더 많은 기부가 되고 많은 열매를 맺을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석규의 씨앗이 많은 열매를 맺을 것 같다는 말에 심장이 터질 것 같다. 나는 시들어가고 죽어가는 영혼이라고 생각했는데, 우리 아이가 씨앗이 되어서 열매를 맺는다고 하니까 도움이 된다면 그렇게 하라고 했고, 기사가 나가자 방송국에서도 연락이 왔다. 사랑의 리퀘스트에서 생방송을 준비 중인데 아이티 현지에 함께 가달라고 연락이 왔다. 저는 한번 기도해보겠다고 하고 거절했다”고 했다.
이어 “아내와 새벽예배에 나가서 기도하는데 갑자기 기도해보겠다는 말이 떠올랐다. 기도했는데 아무 응답이 없었다. 다음날도 기도해보겠다는 말이 생각나서 기도했는데 답이 없었다. 그런데 4일이 지나서 갑자기 내가 너와 함께한다는 말씀이 떠올랐다. 하나님께 가라고 하시면 가겠다고 했는데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씀만 하시지 가라는 말씀은 안 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폭풍같이 오열했다. 아버지는 나의 행함, 나의 발걸음을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내가 어디로 향하는지 그 방향을 보고 싶으셨던 것이다. 저는 그게 진리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분명히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주시기도 하지만 하나님이 진정 기뻐하시는 일은 내가 스스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일을 찾아가는 것이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도 저는 그렇게 해석한다. 내가 기쁜 것도 중요하지만 아버지가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자녀들이 기쁘다. 그때 제가 ‘아버지, 그럼 저는 갈게요’라고 말씀드렸다. 그리고 십자가 목걸이를 사고 석규 사진을 하나 가슴에 품고 아이티로 날아갔다”고 했다.
이광기 집사는 “아이티에 가니까 아비규환, 전쟁이 따로 없었다. 건물 잔해에서 시체를 끄집어내지도 못하고 더운 날씨에 난리가 아니었다. 교도소도 다 무너지고, 배식을 나눠주는 곳에서 폭동이 일어나서 칼부림이 나고 총질하는 상황이었다. 한 고아원에 갔더니 부모 잃은 아이들이 앉아 있었다. 아이들은 아직 부모님이 하늘에 간 줄도 모르고 내가 가져온 선물만 보고 있었다. 그런데 한 아이의 눈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흑인 남자 아이가 울음을 참느라 눈물이 맺혀 있었다. 나이가 8살이란 말에 제 심장이 떨렸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팔을 벌리자 아이가 제 품에 팍 안겼다. 그 아이의 체온이 저에게 고스란히 전달되는데 우리 석규의 체온이었다”고 했다.
그는 “아이가 펑펑 울기 시작하자 저도 같이 펑펑 울었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하나님께서 이 한 아이를 품게 하려고 나를 이곳까지 이끌어주셨다는 걸 깨달았다. 제 아이의 따뜻했던 체온이 우리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게 싫어서 한 번만 꿈에서 선명하게 보여달라고 기도했는데 한 번도 안 보여주셨다. 그런데 이 아이를 통해서 온전하게 우리 아이의 체온을 느끼게 해주셨다”고 했다.
이어 “그날 밤 꿈에 석규가 나타났다. 제가 아이를 안고 우니까 아이는 내 눈물을 닦아주면서 너무 잘 있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리고 저에게 내 친구들을 많이 도와달라고 당부했다. 저는 일어나자마자 아내에게 전화해서 석규가 꿈에 선명하게 나타났는데 천국에서 하나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자라고 있다고 말했다. 아내가 펑펑 울며 너무 좋아했다. 저는 아이티에서 하나님이 너와 함께한다는 그 말만 믿고 갔는데 그곳에서 선물을 받았다”고 했다.
이어 “한국에 돌아와서 이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게 무엇인가를 고민했다. 지진 때문에 학교가 다 무너졌다. 하나님께 하나님의 학교를 세워달라고 기도했다. 저는 아무 능력도 없고 백도 없으니 저를 마음대로 사용해달라고 기도했다. 어느날 젊은 작가들과 고민을 나누자 작가들이 서로 돕겠다고 했다. 중견작가, 인기작가, 연예인 작가도 돕겠다고 했다. 그렇게 2010년 5월에 아이티를 위한 자선미술경매를 열었다”고 했다.
그는 “그날 하나님께 시드머니 딱 1억만 모아달라고 기도했는데 1억 700만 원이 모였다. 그 이후 12년간 해마다 자선경매를 꾸준히 진행해서 아이티에 학교 세 개가 만들어졌다. 이건 제가 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만들어주신 것이다. 저는 하나님의 종으로 따라갔을 뿐이다. 결국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믿음만 있으면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여러분을 만져주실 거라고 믿는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도의 응답이 급하신 분들이 너무 많다. 기도도 다 순서가 있다. 저는 기도의 방법을 깨달았다. 저는 절대 저를 위한 기도를 안 한다. 저는 하나님 마음대로 쓰시고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주변 사람들이 행복하면 내가 행복하게 된다. 그게 결국 하나님의 방법인 것 같다. 항상 기뻐하라는 말, 내 이웃이 기쁘면 내가 기쁘잖아요”라고 했다.
그는 “그러다 보니까 하나님이 놀라운 재능을 주셨다. 제가 12년 동안 미술 작품경매를 하다 보니까 그림을 잘 보게 됐다. 또 하나님께 행사 공간 하나만 만들고 싶다고 기도했다. 파주에 7년 전에 땅을 사고 건축해서 지금 그곳에서 전시도 하고 기획도 하고 일 년에 한 번씩 자선경매를 꾸준히 해서 아이티뿐만 아니라 해외 아동을 돕고 있다”고 했다.
이어 “그러자 연말에 월드비전에서 고액 후원자가 됐다고 연락이 왔다. 조금씩 일 년 동안 기부한 게 어느 날 보니까 1억 이상이 된 것이다. 제가 하고 싶어서 한 게 아니다. 그냥 하나님의 일을 했는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만들어 주셨다”고 했다.
이어 “지금 배우들이 저를 부러워한다. 연기자는 일이 없으면 백수다. 나이를 먹으면 점점 불러주는 데가 없다. 저는 아직도 이 나이에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 미술 콘텐츠로 유튜브도 하고 컨설팅도 하고 내년엔 미술 관련 프로그램을 방송국과 함께 제작 준비 중이다. 저에겐 너무나 큰 선물들이 계속해서 쌓여가니까 너무 감사하다. 저의 목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학교를 짓는 것이다. 많이 중보해주시고 기도 부탁드린다”고 했다.
이광기 집사는 “제가 하나님을 만나면서 은혜받은 곡이 있다. 이 찬양을 절벽 끝에서 만났다. 2010년 1월 초 그날 새벽예배를 혼자 갔는데, 추모공원에 있는 석규가 너무 보고 싶어서 새벽 예배가 끝나고 여섯 시쯤 어둠을 뚫고 자유로를 운전해 갔다. 그런데 갑자기 눈물이 나면서 저를 흔들었던 말들이 떠오르면서 진짜 이 아이가 천국에 못 갔으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들이 몰려왔다. 이제 핸들을 꺾으면 자유로를 뚫고 한강 쪽으로 떨어지는데 그때 그 어둠의 적막함을 깨워주려고 하나님이 저를 도와주셨다.
이어 “저는 또 사단이 나를 흔든다는 걸 깨닫고 적막함을 빨리 탈출하기 위해서 CD를 틀었다. 평소에는 가요와 팝송을 듣는데 그날은 아내가 필리핀에 가기 전에 하나님의 노래도 한 번씩 들으라고 선물해준 CD였다. 그 첫 노래가 ‘너는 내 아들이라’였다. ‘힘들고 지쳐 낙망하고 넘어져 일어날 힘 전혀 없을 때 조용히 다가와 손잡아 주시며 나에게 말씀하시네. 광기야 너는 내 아들이야, 광기야 너는 내 사랑하는 내 아들이란다’ 그 가사가 아버지의 음성으로 들렸다. 그래서 갓길에 차를 세우고 펑펑 울었다“고 했다.
이어 “그때 아버지가 나를 이처럼 사랑하시는 줄 몰랐다고 고백하며 절대 이제는 나약한 마음을 먹지 않고 어떠한 고난이 오더라도 하나님만 붙잡고 가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이 찬양을 따라 불렀다. 그때 저 끝에서 태양이 떠오르는데 그 태양이 보혈의 십자가로 보였다. 나에게 또 다른 선물을 주시고, 진짜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걸 느끼면서 석규에게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는데 맑은 구름 아래로 하늘 문이 열리면서 빛이 한강 물을 비치고 있었다. 오늘 이 순간 하늘 문이 열리고 보혈의 십자가를 통해서 이 자리에 여러분의 손을 붙잡기 위해 함께하실 거라고 믿는다. 오늘 그 손을 꼭 붙잡기를 바란다”며 ‘너는 내 아들이라’를 찬양했다.
그는 “하나님께 저는 또 다른 선물을 받았다. 우리 아내가 제발 석규 같은 아들을 선물로 주시면 너무 감사하겠다고 항상 기도했다. 저는 아내의 간절한 기도의 응답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감사하게도 하나님께서 아들을 선물로 주셨다. 그 아이가 2012년 1월 12일 아이티 지진 2주기 때 태어났다. 정말 바라는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는 기도를 드리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저의 기도의 방식도 항상 그랬던 것 같다”고 했다.
끝으로 이 집사는 “열심히 전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전도의 기본은 내가 모범이 돼야 한다. 내가 가장 본이 됐을 때 그게 가장 올바른 전도라고 생각한다. 저도 노력하지만 안 될 때가 있다. 그래도 나는 하나님의 아들로 살아야 한다고 허벅지를 찌르며 노력하는 것이다. 전도의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하지만 결국 내 본이 흔들리지 않으면 된다. 하나님의 중심으로 살아가면 그게 가장 구원의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간증을 마쳤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