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신광교회(담임목사 이현용)에서 지난 17일 진행된 교사헌신예배에서 박상진 교수(장신대 기독교교육)가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막 6:34)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했다.
박상진 교수는 “기독교교육은 크게 사람의 점진적 변화를 강조하는 입장과 급진적 변화를 강조하는 입장이 있다. 평상시에 양육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소위 삶이 변형되는 순간이 있다. 누군가가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것은 순간이다. 그 만남으로 인해 그동안 이성적으로만 알던 기독교적인 교리가 생명을 부여받는 변화를 경험하게 된다. 교사헌신예배가 여름성경학교 수련회 출정식과 같은 자리다. 교회가 투자하고 교사가 헌신하고 성도들이 기도하는 만큼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랍비가 있었다. 그러나 서기관, 바리새인, 율법사들의 가르침에는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고 사람이 변화됐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사람들이 산상수훈 마지막 장인 7장 마지막 절에서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않다고 말한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서기관의 가르침을 차이 나게 만드는 비결이 본문인 마가복음 6장 34절에 나온다. ‘불쌍히 여기사’ 그 단어가 예수님의 가르침은 왜 다른 랍비들과 다른 특성을 나타나게 했는지를 말한다”고 했다.
이어 “이 불쌍히 여기사는 헬라어로 ‘스플랑크니조마이(σπλαγχνίζομαι)’라고 하는데, 창자가 끊어지듯이 불쌍히 여기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가 누가복음에서도 세 군데에 사용됐다.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아직도 상거가 먼데 저를 보고 측은히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췄다고 한다. ‘측은히 달려가’ 창자가 끊어지듯 불쌍히 여기는 마음으로 저 멀리서 오는 둘째 아들에게 달려간 것이다. 이 측은히 여기는 교사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누가복음 10장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도 이 단어가 나온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누가 되겠는가 하는 예수님의 말씀 가운데 사마리아인이 강도 만난 자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상처를 싸매고 돌보아줬다고 나온다. 이 ‘불쌍히 여겨’가 스플랑크니조마이다. 제사장과 레위인도 강도 만난 자를 봤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어서 그냥 지나갔다. 사실 제사장, 레위인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고 그를 치유했어야 한다. 그런데 사마리아인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일으킨 건 불쌍히 여겼기 때문이다. 교사의 학력으로 아이가 변화되는 게 아니다. 불쌍히 여기사에서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는 줄 믿는다고 했다.
이어 “세 번째는 누가복음 7장 나인성 과부의 죽은 아들을 살리는 기적의 사건 속에 이 단어가 사용된다. 유일한 희망인 아들이 죽어버린 과부를 보시고 예수님께선 불쌍히 여기사 울지 말라 하시고 그 아들의 관에 손을 대신다. 관에 손을 대는 건 부정한 것인데 너무 불쌍하기 때문에 예수님께선 손을 대셨다. 그러자 과부의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기적이 나타났다.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엔 물론 하나님의 역사가 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는 통로에는 누군가의 불쌍히 여김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교회학교, 이번 여름성경학교, 수련회에 기적이 필요하다. 어떻게 이 기적이 일어날 수 있는가? 불쌍히 여기사다. 그래서 여름성경학교, 수련회 동안 교사들이 이 마가복음 6장 34절의 말씀을 묵상하면 좋겠다고 했다.
박 교수는 “제가 대학에서 신입생 면접을 볼 때 너의 삶에 가장 영향을 끼친 사람이 한 명을 말하라는 질문을 꼭 한다. 제일 많이 나오는 사람이 어머니다. 어머니가 불쌍히 여기기 때문이다. 그 다음 많이 나오는 사람이 교회학교 교사다. 그 아이가 교회학교 다니면서 만났던 선생님이 그 선생님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잊을려야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있다. 바로 나를 불쌍히 여겨주신 선생님이다. 그 선생님의 불쌍히 여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불쌍히 여김을 경험하면서 그 주님을 나의 구주로 영접하게 된 삶의 터닝포인트가 일어나게 한 그 선생님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저에게도 잊을 수 없는 선생님이 있다. 우리를 제자삼아주시고 제자양육을 해주셨던 선생님이다. 선생님은 여름수련회 마지막날 밤 세족식에서 제 발을 씻겨주셨고 제 발을 붙들고 기도하시며 우셨다. 그 선생님의 눈물방울이 제 발등에 떨어지는 순간 완악했던 저의 자아가 깨뜨려지는 시간이었다. 목사의 아들이어서 신앙이 대단한 것처럼 생각하고 오히려 교사들을 골려주고 어려운 질문을 하며 장난치던 제가 선생님의 불쌍히 여김으로 말미암아 삶에 터닝포인트가 일어나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했다.
이어 “이번 여름 불쌍히 여김이 있는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 불쌍히 여김을 통한 가르침이 될 때 그 아이를 변화시킬 수 있다. 교사의 경력보다 더 중용한 건 그 경력이 깊으면 깊을수록 불쌍히 여김이 깊어져야 한다. 불쌍히 여김의 깊이만큼 변화가 일어난다”고 했다.
이어 “코로나로 인해서 우리가 온라인이냐, 오프라인이냐를 논쟁하지만 사실 문제는 사랑하느냐의 문제다. 정말로 우리가 사랑한다면 할 수 있는 게 얼마든지 있다. 중요한 건 우리에게 이런 불쌍히 여김이 있느냐는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불쌍히 여기사’라는 단어와 붙어서 다니는 단어가 ‘이에’라는 단어다. 예수님은 불쌍히 여기셨다에서 끝나는 법이 없다. 우리가 정말 불쌍히 여겼다면 행동, 실천이 따라온다. 이번 수련회 때 그 아이를 향한 불쌍히 여김이 있기 때문에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이에가 따라 나와서 이번 여름성경학교 수련회에 실천이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그는 “본문에 예수님께선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가지로 가르치셨다고 되어 있다. 예수님도 한 번에 끝내신 게 아니다. 비유법도 쓰시고 문답법도 쓰시고 이런 모양 저런 모양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너무 불쌍하고 너무 사랑하니까 불쌍히 여기는 걸로 끝낼 수가 없고 한 번에 가르치는 것으로 끝낼 수가 없고 여러 가지로 가르치셨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번 여름성경학교 수련회에 많은 준비를 했을 것이다. 그런 노하우나 전략, 어떠한 방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다. 선 불쌍히 여기사, 후 전략이다. 이어 “아무리 전략이 좋고 방법이 좋아도 근본에 영혼에 대한 불쌍히 여김이 없다면 변화가 일어날 수 없다. 지식은 전달될지 몰라도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지 못했다. 그 먼저 우리 심령이 불쌍히 여김으로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이 다시 회복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이어 “기독교교육은 성육신 교육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교육은 하늘에서 강의한 게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것이다. 인간의 눈높이에 맞추셔서 친히 이 땅에 독생성자로 오셔서 인간의 언어로 인간을 변화시킨 교육이 하나님의 교육이다. 하나님의 교육이 이뤄질 수 있었던 원동력은 요한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다. 사랑하기 때문에 하늘에서 강의하고 있으실 수 없어서 오신 것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이번 여름성경학교는 아이들 속으로 성육신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했다.
박 교수는 “예수님의 불쌍히 여기는 가르침에는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 번째, 예수님은 숫자를 보지 않으시고 사람을 보셨다. 한 명을 만나든 수많은 무리를 만나든 예수님의 눈길은 숫자에 있지 않고 영혼에 있었다. 물론 숫자도 중요하다. 그런데 숫자를 본다고 숫자가 느는 게 아니다. 영혼을 봐야 한다. 생명이 번식하는 힘이 있다. 이번 수련회 생명의 번식이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란다면 영혼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고 했다.
이어 “로버트 콜먼은 ‘주님의 전도계획’이란 책에서 예수님의 제자교육의 8가지 원리를 이야기한다. 제일 중요한 원리가 선택의 원리다. 예수님은 수많은 무리가 있었지만 열두 제자를 선택하셨다. 사랑의 대상을 확정하신 것이다. 이번 여름 내가 사랑해야 할 대상을 확정짓는 게 중요하다. 마치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선택하시는 것처럼 사랑의 대상을 확정지어야 한다”고 했다.
이어 “요한복음 1장 42절에 예수님께서 시몬 베드로를 만나시는 장면이 나온다. 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나 장차 게바라 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요한의 아들은 과거, 시몬은 현재, 장차 게바는 미래다. 누군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바라봐주는 것이다. 예수님께선 주목해서 집중적으로 사랑의 눈길로 열두 제자들을 한 명 한 명 바라보셨다. 저는 이번 여름 교회학교 교사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 한 가지만 말하라고 한다면, 집중적인 사랑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한 명 한 명 집중적으로 사랑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집중적인 사랑의 반대말은 흩날리는 사랑이다. 사랑을 흩뿌리는 걸로는 아무도 변화시킬 수 없다. 진짜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건 초점을 맞춰서 집중적으로 사랑하는 것이다. 기독교 교육에서 제일 중요한 것, 영혼 변화에 제일 중요한 게 포커싱이다. 초점을 맞춰야 한다. 사랑을 흩날리지 말고 사랑을 모아서 사랑의 대상에게 집중해서 사랑할 때 불이 붙는다. 이번 수련회에 초점 있는 사랑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했다.
이어 “사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보시고’라는 말이 많이 나온다. 보시는데 집중적인 사랑의 눈으로 보신다. 예수님께서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밝음에 나가서 제자들을 부르신다. 그냥 부르신 게 아니다. 밤새워 기도하시고 사랑의 대상을 한 명 한 명 확정해서 제자로 삼으신 것”이라고 했다.
박 교수는 “이번 수련회 때 아이들 명단을 보면서 영적 의지를 발동해야 한다. 이제 이 아이를 제자 삼아야 한다. 저는 이걸 닻을 내린다고 표현하고 싶다. 배가 닻을 내린다는 건 더 이상 방황하지 않고 정박하는 것이다. 그 아이에게 승부를 거는 것이다. 이제 교사들이 아이들에게 닻을 내려야 한다. 아이들을 나의 제자로 삼는 사랑의 대상으로 확정하는 닻을 내려야 한다. 그러면 거기에서 영혼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고 했다.
또 “예수님의 가르침의 두 번째 특징은 진실을 보시는 것이다. 예수님은 외모를 보시지 않고 진실을 보셨다. 진실을 보시니까 아무 일 없는 듯이 모인 무리를 보시자 목자 없는 양 같아서 너무 불쌍한 것이다. 진실을 보면 불쌍히 여길 수밖에 없다. 교사들이 아이들의 진실을 보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긴다”고 했다.
이어 “목자가 없으면 양은 헤매고 갈 바를 알지 못한다. 지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방황하며 자살 충동을 느끼는 청소년들이 많다. 또 목자 없는 양은 먹을 것을 먹지 못한다. 아이들이 영적으로 기갈 되어 있다. 또 목자를 잃어버린 양은 언제든지 맹수의 공격에 노출돼 있다. 지금 아이들이 클릭만 하면 사탄의 유혹이 확 들어온다.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위험에 노출된 아이들이다. 이번 수련회 때 교사들이 아이들의 진실을 볼 수 있길 바란다”고 했다.
이어 “우리가 교회학교 아이들을 정말 이해하려면 사실은 그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아이들이 정말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방황을 하는지 진실을 알면 너무 불쌍한 것이다. 이번 수련회에 아이들의 진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여름 이 한 계절만이라도 아이들 속으로 들어가서 터치가 있는 수련회가 되길 간절히 바란다”고 했다.
그는 “예수님의 가르침의 세 번째 특징은 구경하시는 분이 아니라 만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예수님께선 사마리아 수가성 여인에게 물 좀 달라고 하시며 접근하셔서 점점 그 여인의 중심을 찌르는 말씀을 하신다. 사람의 만남도 차원이 있다. 교사라고 다 똑같은 교사가 아니다. 표면적으로 껍질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 적당히 만나는 교사, 내면과 내면이 만나는 교사가 있다. 우리가 관계 3인칭의 관계로는 아무도 변화시킬 수 없다. 나와 너로 만나는 2인칭의 만남이 중요하다. 그건 인격적으로 만나는 것이다. 껍질이 아니라 내면이 만나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했다.
이어 “어떤 아이는 인격적으로 만나는 교사를 만나서 영혼의 변화를 경험하는데, 어떤 아이는 스쳐 지나가는 교사를 만나서 아무런 영혼의 변화를 경험하지 못하고 성전 뜰만 밟고 돌아가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이번 여름 교사들이 아이들을 구경하는 게 아니라 직면하고 만나고 사건이 일어나는 수련회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 교수는 “우리가 작은 예수가 돼야야 한다. 예수님의 가르침 그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회복되길 바란다. 그러기 위해선 아이들을 만나기 전에 교사들이 먼저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내가 어떤 은혜를 받은 존재인지 내가 얼마나 불쌍히 여김을 받은 자인지 깨달을 때 누군가를 불쌍히 여길 수 있다. 다시금 주님의 보좌 앞으로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서 우리를 향한 주님의 긍휼하심과 불쌍히 여기심, 그 은총과 구속의 은혜 속에 침잠하길 바란다. 그 은혜와 불쌍히 여김에 감격함으로 아이들의 내면을 변화시키는 진정한 변화를 일으키는 교회학교 교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