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총신대 역사학 교수 김형석 목사
고신대학교 석좌교수,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문재인 정부의 역사 전쟁은 '건국 100년'에 국한되지 않았다. 2018년 1월 10일 문재인 대통령은 신년 기자회견에서 '생활속의 적폐 청산 의지'를 피력했다. 그리고 5월 13일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새 정부 국정과제 1호인 적폐청산 1년에 대해서 "적폐청산과 부패 척결이라는 시대적 과제의 주무 부서인 민정수석실은 법과 원칙에 따라 그 과제를 추진해 왔다. 많은 성과가 있었지만 여전히 갈 길이 멀다."고 보고하면서, 방향성을 '권력형 적폐' 청산을 넘어 민생 영역의 '생활 적폐' 청산으로 전환할 방침을 밝혔다. 생활적폐 청산은 교육 현장에서 친일 잔재 청산으로 나타났다.

2019년이 시작되자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전국 교육계가 일제 잔재 청산에 팔을 걷어붙였다. 교과서에서 친일파 작곡가 9인(김동진 김성태 김재훈 안익태 이종태 이흥렬 조두남 현제명 홍난파)의 노래를 빼고, 이들이 작곡한 학교 교가도 바꾸도록 독려하였는데, 그 대상이 전국적으로 214개교다. 광주시교육청의 경우 교가는 물론이고 교과서 속 친일 작품, 행정 용어 등 무형의 친일 문화까지 조사를 시작했다. 경남도교육청은 교육청 정원에 있는 일본 가이스카 향나무를 뽑고 그 자리에 고유종인 소나무를 심었다. 이런 일이 전국의 교육현장에서 경쟁적으로 일어났다.

21세기 초일류 국가를 지향하는 세계 속의 대한민국에서 가이스카 향나무를 찾아 뽑아내는 기막힌 상황이 펼쳐진 것이다. 그 향나무도 원산지가 일본일 뿐 조상 때부터 한반도에서 태어나 자랐을텐테. 이 논쟁의 정점에는 안익태의 애국가가 자리한다. 2019년 1월 15일 안익태를 가리켜 '친일을 넘은 친나치'로 비난한 이혜영의 『안익태 케이스』가 출판되자 주요 언론이 일제히 그 내용을 보도하였고, EBS TV에서는 사전에 준비된 3부작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우연이라기에는 다분히 정치적이고 기획된 보도였다. 그 다음 순서는 애국가 바꾸기였다. 불과 1개월도 지나지 않은 가운데 40여개의 신문 논설과 방송 해설에서 애국가 바꾸기를 주장하였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⑦ 끝나야 할 역사전쟁
 ©김형석 교수 제공

안익태의 애국가가 대한민국 국가로 제정된 데는 전적으로 김구 선생의 역할 덕분이었다. 1940년 12월 20일 임정 국무회의는 '올드랭 사인 곡조의 애국가'를 '안익태 곡의 애국가'로 바꾸기로 의결하고, 1941년 2월 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 공보 제69호'로 고시하여 임시의정원과 광복군에 보급하였다. 이어 환국을 열흘 앞둔 1945년 11월 12일 중국 충칭에서 <한국 애국가>를 소 책자로 발행하였다. 귀국한 후에 애국가 보급운동을 펼치기 위한 사전준비였다.

1945년 11월 23일 마침내 꿈에 그리던 환국길에 오른 김구 일행은 비행기에서 한반도 해안이 내려다보이자 눈물을 흘리며 애국가를 불렀다. 당시 김구의 비서로 비행기에 동승한 장준하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묘사했다.

"누군가 조선 해안이 보인다고 소리쳤다. 누구의 지휘도 없이 애국가가 울려 나와 합창으로 엄숙하게 흘러나왔다. 애국가는 우리들의 심장에 경련을 일으키면서 조국을 주먹에 움켜잡은 듯이 떨게 했다. 애국가는 끝까지 부르지 못하고 울음으로 끝을 흐렸다. 울음섞인 합창, 그것이 그때의 나의 가슴 속에 새겨진 애국가다. 기체 안의 노 투사(김구)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자신을 달래지도 못했다. 어느 누가 이 애국가를 울지 않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그의(김구의) 두꺼운 안경알도 뽀얀 김이 서리고 그 밑으로 두 줄기 눈물이 주르르 번져 흘렀다." - 장준하, 『돌베개』중에서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⑦ 끝나야 할 역사전쟁
 ©김형석 교수 제공

이때부터 해방 공간에는 몽양 여운형이 주도한 조선인민공화국(이하 '인공')의 「해방의 노래」와 백범 김구가 주도한 대한민국의 애국가가 맞서 싸우는 형국이 조성되었다. 임시정부는 귀국 직후 '조선'을 내세워 법통성을 부인하는 '인공'을 우선 견제하기 위하여 '대한민국'을 국호로, '태극기'를 국기로, 「애국가」를 국가로 사용할 것을 발표했다. 이에 비해 '인공'은 국호를 조선인민공화국, 국기를 인공기, 국가를 「해방의 노래」로 주장하면서 대립하였다. 이때 조선음악가동맹 회원들은 안익태의 애국가를 봉건적·종교적 잔재(적폐)로 주장하면서 폐기시키려다가 실패한 후에 월북하였다.

그로부터 74년이 지난 2019년 서울에서는 그때의 상황이 반복되었다. 7월 19일 몽양 여운형의 후예들이 모여 몽양72주기추모제에서 안익태의 애국가를 거부한데 이어, 친일 청산을 명분 삼아 '애국가를 바꾸자'는 공청회가 8월 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렸다. 안익태가 '친나치'라는 왜곡에 대한 엄중한 지적과 "1942년 9월 18일 만주축전국 공연도 친일이 아니라 극일이라는 시각에서 재조명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 마당에 안민석 문화관광체육위원장 주최의 공청회는 찬반 의견 청취를 기본으로 하는 취지와는 달리 반대 측은 아예 초청조차 하지 않았다. 애국가를 바꾸자는 선전만 반복하고 검증과 토론이 없는 전형적인 프로파간다였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⑦ 끝나야 할 역사전쟁
'애국가 바꾸기 공청회'에서 인사말을 하는 주최자 안민석 의원(2019.8.8) ©김형석 교수 제공

이 무렵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단연 조국 청와대 민정 수석의 죽창가 사건이었다. 7월 14일 조국은 페이스북에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죽창가」를 소개했다. 이것은 이틀 전 조국이 '아베 정권의 졸렬함과 야비함' '실질적 극일'을 언급한 언론 칼럼을 페이스북에 올린 것과 연관지어 동학운동 당시의 반일 항쟁을 현재 양국 갈등 상황에 빗댔다는 관측이 일면서 반일 투쟁의 불을 지피는 계기가 되었다. 곧이어 2019년 8월 2일 일본이 각의에서 수출심사우대국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하자, 문 대통령은 긴급 국무회의를 열고 "우리는 다시는 일본에 지지 않을 것이다. ... 일본을 뛰어넘겠다"고 선언했다. 이때부터 문재인 정부는 항일투쟁에, 여권과 시민사회는 친일잔재 청산에 올인하였다.

그러나 애국가 바꾸기는 국민들의 압도적인 반대 여론에 부딪쳤다. 일본과의 무역전쟁으로 경제적 위기가 닥쳐오고 북한의 핵 위협으로 안보 위기까지 우려되는데, 친일잔재 청산을 명분으로 한 정치 행위에 국민들이 강한 거부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2020년 7월 10일 6·25 전쟁 영웅 백선엽 장군이 별세하자 그를 둘러싼 친일 공방이 불붙으면서 역사전쟁은 정점으로 치달았다. 게다가 광복절마다 계속되는 광복회장 김원웅의 무차별적인 친일 정쟁은 국민들의 공분을 사기에 이르렀다.

 

역대 대통령의 역사인식⑦ 끝나야 할 역사전쟁
 ©김형석 교수 제공

한편 문재인 정부의 역사 전쟁은 '건국 100년'과 '친일 잔재 청산'만이 아니었다. 문재인 대통령 당선 19일만에 '국정 교과서 폐기'지시를 내리자 곧장 국정교과서 폐기 작업에 들어갔으며, 5월 31일 관보 게시를 끝으로 공식 폐기됐다. 그리고 취임 초부터 각 부처, 기관별로 과거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과거사진상규명에 들어 간 문재인 정부는 2019년 12월 5.18민주화운동진상조사규명위원회를 시작으로, 2020년 12월 10일 제2기 "진실과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를 다시 출범시켰다. 이어 제주4.3사건, 여수순천사건 등 현대사의 쟁점 사건에 대한 과거사진상규명작업에 돌입했다. 모두 현재 활동이 진행 중인 사인이어서 구체적인 내용을 알 수는 없지만, 이제까지의 현대사를 부정하는 작업임에는 틀림없다.

앞으로 특별법에 의한 특별위원회들의 활동이 종료되고 결과 보고서가 공개되면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큰 충격에 휩쓸릴 것이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서가 아니라, 특정한 목적을 가진 정부기관의 조사 결과에 따라 현대사의 중요 사건들이 중구난방으로 정리되고 정당화 될 것은 뻔한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우리 국민들에게 올바른 역사를 알리려면 지난 2007년 이후 국회 특별법에 의해서 새롭게 정리된 역사적 사실에 대한 재평가가 필수적이다. 무엇보다 국민통합이 시대정신으로 부각되는 시점에 윤석열 정부가 감당해야 할 역사적 과제임에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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