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25일 제 17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명박은 3.1절 기념사에서 독립운동에 기초한 이전의 대통령들과는 달리 대한민국 건국과 미래에 방점을 둔 역사인식을 나타냈다. 기념사의 서두에 3.1운동의 의의를 간략하게 정리한 후 대부분의 내용을 건국 60년을 맞아 세계 일류국가로 도약하려는 국가 비전을 밝힌 특별한 내용이었다.
건국 이후 60년, 우리는 세계가 기적이라고 부르는 ‘성공의 역사’를 만들어왔습니다. 전쟁의 잿더미 위에서 가난에 고통 받던 나라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으로 우뚝 섰습니다. … 이토록 짧은 기간에 이렇게 놀라운 성취를 이루어낸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습니다.세계 중심에 당당히 서는 부강한 나라, 인류 공동번영에 기여하는 선진 일류국가가 우리의 목표입니다. … 한국과 일본도 서로 실용의 자세로 미래지향적 관계를 형성해가야 합니다.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앞으로의 60년이 달려있습니다. 세계는 창의와 변화의 시대입니다. 새 정부는 3.1정신을 선진 일류국가 건설의 지표로 삼을 것입니다. - 이명박 대통령 <제89주년 3.1절 기념사> 중에서
곧이어 5월 22일 이명박 대통령의 훈령으로 건국 60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위원회가 국무총리 산하의 대한민국건국60년기념사업위원회를 설치하고, 한승수 국무총리·현승종 고려중앙학원 이사장·김남조 숙명여대 명예교수가 공동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8월 15일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식이 광화문의 옛 중앙청 광장(경복궁)에서 열렸다. 광복과 건국을 함께 기리는 자리였다. 이명박 대통령은 경축사를 통해서 "대한민국 건국60년은 '성공의 역사' '발전의 역사' '기적의 역사'였다"고 주장하였다.
60년 전 오늘, 바로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 정부 수립이 선포되었습니다. 5천년 한민족의 역사가 임시정부와 광복을 거쳐 대한민국으로 계승되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한때 이 자리에는 동족상잔으로 붉은 깃발이 올라가기도 했습니다. 용맹한 우리 국군이 태극기를 다시 꽂았지만 수백만 명의 목숨이 스러지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일어섰습니다. ... 비록 시련과 굴절은 있었지만 우리는 줄곧 전진해 왔습니다. 저는 오늘 분명히 말하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건국 60년은 '성공의 역사'였습니다. '발전의 역사'였습니다. '기적의 역사'였습니다. - 이명박 대통령 <제63주년 광복절 및 건국60년경축사> 중에서
민간에서도 '건국60주년기념사업추진위원회'(공동위원장 강영훈·이인호·박효종)가 결성되어 대한민국건국60주년기념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 이 같은 일련의 움직임은 노무현 정부의 진보적인 정치 성향과 역사인식에 비판적인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이 주도했다. 이들이 내세운 주장은 '1948년 건국' '이승만 국부론' '건국절 제정' 등인데, 이 중에서 가장 큰 논란을 부른 '건국절 제정'은 1995년 조선일보가 「거대한 생애 이승만」을 65회에 걸쳐 연재하면서 건국기념일을 제대로 기념하지 않는다고 비판한 것이 건국절 논의의 시작이었다.
그러던 것이 서울대 경제학과 이영훈 교수가 동아일보 2006년 8월 1일자에 「우리도 건국절을 만들자」는 글을 기고하면서 8월 15일을 '광복절'이 아닌 '건국절'로 기념하자는 논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이에 따라 2007년 9월 한나라당 정갑윤 의원이 8월 15일을 광복절에서 건국절로 변경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국경일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제출하였다. 그 취지는 이러하였다.
8월 15일은 일제 식민지로부터 해방된 기념일인 동시에 1948년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접목한 독립된 입헌국가로서 '대한민국 정부'가 최초로 수립된 날임에도 광복절 기념에만 국한되어 '대한민국 건국 이념'과 정신이 등한시되고 있으니 건국정신을 되살리고 헌법정신에 맞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국민 의식 속에 자리 잡게 하기 위해 건국절이라고 명칭을 고쳐야 한다.
이 같은 움직임에 광복회가 중심이 된 대한민국임시정부기념사업회는 건국60주년기념사업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다."는 헌법을 위반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청구와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헌법재판소에 제출하는 한편 독립운동사 학계와 연대하여 대대적인 반대 투쟁을 전개하였다. 이렇게 반발이 커지자 이명박 정부는 행사 명칭을 '제63주년 광복절 및 대한민국 건국 60년 경축식'으로 정정했다. 광복회는 '건국 60주년'도 거부했으나, 63주년 경축식에는 참여했다. 반면에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과 독립유공단체들은 따로 탑골 공원에서 '광복절 63주년 기념 국민대회'를 개최했다.
이후 이명박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광복절 유지를 천명하면서도 3.1절 기념사와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서는 1948년 '건국'을 거듭 강조하고 현대사 박물관 추진 계획을 밝혔다. 그러다가 2010년 광복절 경축사부터는 1948년 건국을 연상하는 내용이 사라져버렸다. 결국 건국60년기념사업회는 '건국일 제정 문제'로 극심한 논란만 야기한 채 아무런 성과도 얻지 못하고 2013년 1월에 폐지되고 말았다.
한편 이명박 정부의 한일 관계는 초기에 대일 협력을 강조하면서 '한일 군사정보포괄보호협정(GSOMIA)'과 '한일 통화스와프' 등이 활발하게 추진되었지만, 2012년 8월 10일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으로 모든 것이 중단되었다.
정치보다는 경제를 중시하며 실용적 대일 외교를 펼치던 이명박 정부가 임기를 얼마 남겨놓지 않은 시점에 이 같은 무리수를 두게 된 것은 2011년 8월 30일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 조치를 이행하지 않는 한국 정부에 대해 '부작위(不作爲) 위헌'이라고 판결을 내린 것이 계기가 되었다. 이에 이명박 정부는 일본 정부에 대해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양자 협의를 제안하였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개인 청구권 문제가 1965년 한일 국교정상화로 해결이 끝난 사안이라는 입장에서 한국 정부의 요청을 받아들이지 않고, 오히려 한국 NGO들이 정신대 피해자들의 1000회 집회를 기념하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세운 '평화비'의 철거를 요구하였다.
이 때문에 과거사 문제에 대한 정부의 적극적인 대응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위안부 문제가 대일 외교의 최대 관심사로 부상했다. 이런 가운데 2011년 12월 17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일정상회담에서는 논의의 대부분을 위안부 문제에 집중하였다. 이명박 대통령이 미래지향적 파트너십의 구축을 위해서는 양국 관계의 걸림돌인 군대 위안부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노다 총리는 종래의 일본 정부의 법적 입장을 고수한 채 인도주의적 배려를 언급하며 평화비의 철거를 요구하면서 별다른 성과 없이 회담을 마쳤다. 이후 2012년 연말의 제18대 대선을 앞둔 이명박 대통령은 반일 감정이 고조된 분위기의 반전을 시도하기 위해 현직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그는 문화체육관광부와 환경부 장관, 소설가 이문열, 김주영과 함께 독도를 찾아 방명록에 기록을 남기고 독도경비대를 찾아 격려하였다. 당시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광복절을 닷새 앞둔 10일 우리 대통령으로는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일본 정부가 방위대강 및 방위백서, 외교청서 등을 통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계속 강화하고 있고, 초·중·고 검정교과서의 영유권 관련 표현도 점점 강해지고 있다"며 "더 이상 조용하게만 대처하지는 않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이날 저녁 무토 마사토시 주한 일본 대사를 소환하는 등 강하게 반발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지극히 유감이며, 단호하게 대처하겠다"고 말했다. 겐바 고이치로 외상은 이날 신각수 주일 한국 대사를 불러 "왜 이 시기에 방문하는지, 전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의 한일관계는 이 날의 독도방문으로 인해 완전히 파탄나고 말았다. 그가 퇴임할 때까지 양국 간의 외교관계는 단절된 채,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책임은 고스란히 박근혜 정부로 이관되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역대 정부의 무관심이 문제만 키운 셈이었고, 특히 노무현 정부가 남긴 이중적인 형태의 '과거사 정치'가 사태를 악화시킨 결정적인 원인이었다. 그렇지만 결국은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이명박 대통령의 편향된 역사인식이 건국절 논쟁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독도 방문으로 인한 한일관계의 악화를 가져다 주었다.
김형석 교수(고신대학교 석좌, (재)대한민국역사와미래 이사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