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있는 자에게는 풍족하게 주어지고 없는 자에게는 있는 것도 빼앗긴다.

김영한 박사
김영한 박사

달란트 비유(마 25:14-30)는 모든 사람들에게 달란트는 주어져 있으며 받은 달란트에 대하여 하나님은 책임을 물으신다는 교훈을 준다.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 25:29)는 말씀은 자유경쟁 속에서 “강자 승리, 약자 탈락” 이라는 “부익부 빈익빈” 초래하는 19세기 자유방임 자본주의나 이러한 경쟁원리를 더욱 더 심화시키는 21세기 신자유주의 경제원리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열심히 자기 혁신을 노력하는 자(5달란트 받은자, 10달란트 받은 자)에게 더 열심히 하도록 격려금이 주어지나 게으르고 자기 개발에 힘쓰지 않는 자(1달란트 받은 자)에게는 준 것도 회수된다는 것이다. 주어진 직분에 충실하는 책임과 충성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의 협력없이 숙명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노력하는 자가 빼앗는다. 예수는 말씀하신다: “세례 요한의 때부터 지금까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 12). 과격 칼빈주의자들은 자기 달란트를 사용하려고 하지 않는다. 모든 일의 성패를 하나님의 예정에 맡겨 버린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은 인간의 책임과 관련없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끊임없는 노력 속에서 일의 종결 후에 추후적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하나님은 예정의 주체이시나 우리 인간은 하나님 예정의 대상이기 때문에 우리는 어느 누구도 예정하시는 하나님 편에 설 수 없다. 일이 끝난 후에 전 과정을 추후적으로 반성하게 될 때 각 과정에 숨어 있는 하나님의 신비스러운 경륜(예컨데, 요셉이 종으로 팔림, 누명으로 옥중 생활, 애굽의 국무총리 등극, 요셉 가족의 구원)을 깨닫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자신의 믿음과 소망 속에서 노력하는 자, 끊임없이 자기성찰하고 애쓰는 자가 차지하도록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천국의 문을 활짝 열어 놓으셨다.

20. 영광의 보좌에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심판하시는 인자

세상 심판 비유(마 25:31-46)는 역사의 의미와 목적을 가르친다. 예수가 비유로 말씀하시는 세상 심판은 단지 문학적인 레토릭이나 상상(想像)의 세계를 말하는 것이 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의 흐름과 그 의미에 관하여 말해주고 있다. 역사의 마지막에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심판하는 자, 흰 보좌에 앞에 서게 될 것이며, 이들이 생전에 살았던 행위에 대하여 준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을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역사와 세계가 맹목적으로 돌고 도는 영겁의 회귀나 무의미하게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이고 초월자이신 하나님이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사실과 사건의 진면목을 판결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높이 계셔도 낮은 자를 굽어살피시며 멀리서도 교만한 자를 아심이니이다”(시 138:6). 세계 과정이나 역사 과정이나 자연 과정 자체가 신이 아니라 하나님은 이러한 세계, 역사, 자연 과정 위에 초월하시는 존재이시다. 구약의 전도자는 증언한다: “이 모든 것을 내가 마음에 두고 이 모든 것을 살펴 본즉 의인들이나 지혜자들이나 그들의 행위나 모두 다 하나님의 손 안에 있으니 사랑을 받을는지 미움을 받을는지 사람이 알지 못하는 것은 모두 그들의 미래의 일들임이니라”(전 9:1). 진리와 역사의 의미는 역사의 종국에 판결자이신 하나님 앞에서 비로소 드러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모든 세계 과정, 우주와 자연의 과정, 역사의 과정 하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라 이 모든 것의 주관자로서 모든 일을 살피시고 주관하시고 계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성경의 하나님은 그가 창조하신 세계에 대하여 무관심한 분이 아니라 책임을 가지시고 역사와 우주의 진행을 그가 의도하신 목적으로 이끌고 가신다는 것이다.

21.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행한 것은 바로 예수에게 행한 것이다.

세상 심판 비유에서 예수는 가치의 전도(顚倒)를 천명하신다. 그것은 세상과 상식이 말하는 가치관의 전환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큰 자, 부유한 자, 권력자, 유명한 자와 함께 하시지 않으시고 가난한 자, 헐벗은 자, 곤경 속에 있는 자 등 지극히 작은 소자(the least)와 함께 하신다는 것이다. 세상적으로 부요한 자는 스스로 많은 것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교만하기 쉽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으나, 가난한 자는 많은 것이 결핍되어 겸허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을 의존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논리에 따르면 사람들은 지극히 큰 자인 최고의 권력자, 재벌, 최고의 실력자를 구하고 이들의 편에 설 것이다. 사람들은 힘세고 가진 자 편에 서야만 자기가 보호받고 안전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아니하신다. 세상에서 가장 멸시받고 따돌림을 받는 자들을 자기의 편에 세우신다는 것이다. 그뿐 아니라 예수는 지극히 작은 소자에게 한 것이 바로 나에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자신을 지극히 작은 소자와 일치시킨다. 이는 예수께서 높고 높은 보좌에서 하나님(성자)의 신분을 버리시고 인간의 몸을 입으신 성자 하나님의 겸허를 나타내시는 것이다. 그의 성육신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 사랑과 그의 겸허를 나타내시는 것이다. 세상의 가치관으로는 사람은 의당히 최고의 권력자와 재벌의 초청을 받고 그의 인정을 받기를 바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세상의 누구도 중요시하지 않는 지극히 적은 소자와 자신을 동일시한다는 것은 하나님되신 그분의 사랑과 겸손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소자인 우리를 그의 아들 예수 십자가의 대속으로 입양시켜 그분의 아들 딸로 입양시키신다. 이것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사시고 대속의 십자가를 지신 그분의 목적이다.

22. 마지막 때 불법이 성하고 사랑이 식어지고 믿음이 희소해질 것이다.

예수는 역사의 종말을 언급하신다: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 때문에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실족하게 되어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9-12). 그때는 도처에 전쟁과 난리가 일어나며, 지진과 가뭄 등 자연 재해가 있으며 무엇보다도 인심이 흉흉하리라고 예언하신다.

서구사회에서는 간통이 법적으로 허용되고 동성애와 동성혼이 허용되고 있다. 이러한 서구의 퇴페적 윤리가 밀려들어와 한국사회에서도 2015년 2월 26일 헌법재판소의 판결로 간통죄가 폐지되었다. 이 바람을 타고 동성애 물결까지 들어와 동성애 합법화 차별금지법 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2017년 7월 14일-15일 3년째 시민의 휴식처요 교육장인 서울광장에서 동성애 퀴어축제가 개최되어 시민의 윤리도덕 교육장이 동성애 선전장으로 훼손되었다. 미국을 비롯한 서구 문명은 오늘날 그 청교도 정신이 무너지고 정신적으로 퇴폐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고 전통교회가 무너지고 있다. 전통교회 지도자들이 하나님 말씀을 지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예수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b)고 영적 쇠퇴를 예언하셨다. 마지막 때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불법이 성하게 되고 사랑이 식어지고 믿음은 희소해질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말씀을 하나님 말씀과 동일시 하시면서 메시아적 권능으로 증언하신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불변성에 관해 증언하신다: “천지는 없어질지언정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마 24:35). 그러므로 신자들은 하시딤으로서 하나님에 대한 충성자가 되어 많은 사람을 옳은 길로 되돌아 오게하는 데 하나님의 도구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 나라 진리의 핵심은 사랑(감사, 나눔, 섬김)과 성결(겸손, 정직, 검소)의 열매를 가진 믿음이다. 하나님 나라는 폭력자들이 아니라 온유한 자들의 소유이며, 강압이 아니라 희생으로, 증오가 아닌 사랑으로, 지배가 아니라 비움과 섬김으로 쟁취된다. 세상 쾌락에 중독된 자가 변화되어 새 사람이 된다. 혈육이 아니라 거듭 난 자만이 천국의 시민이 된다. 하나님 나라의 질서에서는 먼저 온 자가 나중되며, 나중된 자가 먼저 된다. 천국을 소유한 자는 서로 양보하며 칭찬하고 서로 배우며 은혜 속에서 항상 자기성찰하고 나누고 섬긴다. 겸손하고 정직하며 검소하다. 세상과 사람의 영광 아닌 하나님 영광을 추구한다. 하나님 나라의 덕목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으로 특징되어진다. 믿음은 칭의(justification)를 가져오며, 성령의 능력 안에서 날마다 이성, 감성, 의지를 새롭게 하여, 성화(sanctification) 속에서 소망과 사랑으로 열매 맺는다. (계속)

김영한(기독교학술원장/샬롬나비 상임대표/숭실대기독교학대학원 설립원장)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김영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