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번째, 리더가 갖추어야 할 요소는‘영력’이다. 우리는 세상적인 지도자가 아니라 사실 영적인 멘토, 영적 부모가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영력은 공동체 멤버와 동떨어진 수직적 리더십이 아니라 함께 하는 관계적 영성을 말한다.
21세기 리더는 공동체 지체를 잘 챙겨야 한다. 섬기고 있는 멤버들을 겉으로 봤을 때는 건강하고 아주 괜찮아 보인다. 행복한 것 같고 힘든 것 같지 않다. 그러나 상담을 하고 일대일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전혀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나는 청년을 만날 때 카페에서 일대일로 만난다. 이른 아침에 만나야 할 때는 주로 맥도날드에서 일대일로 만난다.
여러 사람이 있으면 마음속 깊은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 그리고 단체로 만나면 아무리 만났어도 자신을 만나 주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한 시간을 만나 이야기를 하면 참 많은 간증과 고백을 듣게 된다. 때로는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을 다시 듣는 시간이 되기도 한다.
커피잔 너머로 기가 막힌 이야기, 삶의 깊은 골짜기에서 건져 올린 간증, 눈물 없이 들을 수 없는 삶의 이야기를 건네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일대일로 만나야만 들을 수 있다. 또한 섬기는 자도 자신의 아픔이나 상처, 부족함을 나누어야 들을 수 있다.
젊은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듣게 되면 리더는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강단에서의 설교도 달라진다. 또 리더가 공동체에서 메시지를 나누고, 교제할 때도 피상적이지 않게 된다. 꼭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그룹의 리더라면 멤버를 개인적으로 따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야 한다.
“왜 예배에 나오지 않느냐? 왜 교육과 훈련받지 않느냐? 왜 공동체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느냐?” 묻기 전에 한 영혼이 어떤 인생의 고통과 고난으로 피눈물을 흘리는지 들어야 한다. 청년들의 삶의 이야기를 들어 보면 법정투쟁 중이기도 하고, 부모님이 자식을 신용불량자로 만들기도 한다. 가족 중에 자살한 사람도 있다. 커피가 더 쓰게 느껴진다.
이 시대는 사람들이 다 각박하게 살아간다. 공동체 모임에 와 있는 사람들도 인생이 녹록하지 않다. 표면적으로는 좋아 보이지만 그 속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한 영혼 한 영혼을 품을 수 있는 영적인 멘토이자 아비인 리더가 절실한 것이다.
한 영혼을 담당하는 리더는 반드시 1:1로 섬기는 영혼을 만나야 한다. 청년들은 아무리 열 번을 만나도 무리로 만난 것이라면 자신을 케어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그냥 같이 먹고 논 것이지 개인적 케어가 아니라는 것이다. 30분, 10분을 만나더라도 “정말 기도 제목을 듣고 싶어! 아픔과 상처를 듣고 싶어! 그리고 나의 이야기를 조금 해주고 싶어!” 이런 1:1 케어를 짧게라도 하면 일 년 동안 다시 만나지 않고, 문자만 나누어도 영적 교감이 있다.
리더는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한다. 나는 대구에 있을 때 약 1,850명에게 일주일에 두세 번씩 말씀 문자를 보냈다. 지금 주님의 교회에서는 약 500명에게 교회에서 일어나는 행정적인 일보다 그냥 말씀 문자만 보낸다. 힘겨울 때 위로가 되는 말씀, 삶에 도전이 되는 말을 밤 21시 21분에 보낸다.
말씀 문자를 보내면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자신의 삶을 문자로 보내오는 것이다.
“오늘 아빠랑 엄마랑 이혼했어요.”
“지금 엄마가 세 번째 암이 재발하여서 지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목사님, 사실은 제가 창업을 해서 경제적으로 괜찮아지고 있지만 제 두 여동생은 다 지체 장애가 있고, 어머니는 교통사고를 당하셨고, 아버지는 식물인간으로 몸을 못 움직이세요.”
“저는 집에 부모님이 계시지만 가정을 다 책임져야 해요. 그래서 저는 교회에서 헌신도 못 하는 그런 상황 가운데에 있어요.”
“목사님! 저는 지금 법정 시비가 있어서 지금 3년째 법정 투쟁을 하고 있어요.”
이런 내용을 어떻게 들을 수 있을까? 영혼을 케어 하면 그 영혼이 마음의 문을 연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나누기 시작한다. 예전과 달라진 것이 있다. 요즘 젊은이들은 자신을 얼마나 케어 하려고 하는 사람인지 판단한 후에 마음 문을 연다.
몇 번을 만났느냐?, 밥을 몇 번을 먹었느냐?, 여러 사람들과 같이 몇 번을 놀러 갔느냐?, 이런 것이 중요하지 않다. 정말 조용하게 30분이라도, 10분이라도 진짜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해 주어야 한다. 그러면 그런 사람하고는 마음이 통한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계속 들을 수 있다.
“법정 시비가 이번에 이렇게 되었어요, 목사님!”
“이번엔 이렇게 되었어요.”
“이렇게 수술비가 들어가는데 기도해주세요.”
계속해서 업데이트를 받을 수 있다. 여러분 중에서 주위에 기도 제목을 계속해서 업데이트해 주고 있는 지체가 있다면 여러분이 그 사람의 영적인 부모이다. 그런데 누구도 나에게 지속적인 기도 제목을 주지 않고 있다면 정말 영적 목양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야 한다.
여러분은 정말 리더인가? 정말 리더가 되려면 영적 부모가 돼라! 영적 부모가 아닌 리더에게 사람들은 절대 자기의 마음의 문을, 수치스러운 과거를 나누지 않는다. 병원에 가면 의사 앞에서 옷을 벗는다. 왜 그런가? 검진받고 수술도 받는다. 왜 그런가? 의사이니까 그렇다. 신뢰하니까 다 맡기는 것이다.
“어, 안 돼요, 왜 이러십니까? ” 이런 사람 없다. 의사가 “진찰합시다, 수술합시다.” 하면 그렇게 한다. 영적인 아비고 영적인 어미이면 “나 힘들어요. 정말 죽고 싶어요. 이번에 또 떨어졌고 이번에 또 안 되었고 미치겠어요. 자살하고 싶어요. 언제까지 이렇게 살아야 합니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한다.
영적인 멘토 혹은 아비가 된다는 것은 축복의 자리이지만 분명 부담스러운 자리이기도 하다. 그러나 부담스럽다고 피하면 안 된다. 깊은 교제를 나누어야 한다.
교제는 달걀과 같다. 마음을 열지 않은 사람은 딱딱한 껍데기만 부딪치며 이야기한다. “안녕! 잘 지내지? 밥 먹었어? 다음에 보자!” 이런 대화가 달걀 껍데기 교제이다. 진짜 교제는 껍데기를 딱 깨고 흰자는 흰자끼리 노른자는 노른자끼리 섞이도록 해야 한다. 흰자 대화는 기쁜 소식을 나누는 것이다. “사실은 있잖아. 내가 이런 좋은 일이 있었어!” 그리고 노른자 대화는 가슴 아픈 상처까지 꺼내는 것이다. “정말 이런 사고로 내가 이렇게 되었는데 너무 힘든 것 같아!” 이게 노른자를 나누는 그런 교제인 것이다.
대구에서 10여 년의 사역을 하고 아쉬운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열심히 한다고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청년들 만나고 사역하였다. 한 텀에 35가지 교육과 훈련을 하였다. 양육 기초만 해도 12개 반이 진행되었고, 양육 고급반은 8개 반이 진행되었다. 제자반이 7개, 그리고 사역반만 해도 8개 반이 있었다. 그 35가지의 교육과 훈련 중에 수많은 가지가 거기서부터 뻗어 있었다. 그런데 그것을 다 하면서 뭔가 아쉬웠다. 대구동신교회 아포슬 청년 공동체를 떠나면서 함께 뛴 교역자들에게 이 이야기를 했다.
바로 같이 동역하였던 교역자들과 ‘얼마나 차를 마시며 대화를 했는가’이다. 1:1로 얼마나 각 교역자의 눈물의 이야기를 들었는지 후회가 되었다. 사역한다고 청년들은 정말 많이 만났다.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만났지만, 동역자들은 얼마나 챙겼는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내가 마지막 자리에서 떠나기 전에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정말 사역 재미있었고, 정말 좋았습니다. 우리 관계도 사실 너무 좋았습니다. 지금 마음속에 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감사하고,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이 있습니다. 정말 청년들 많이 챙긴다고 뛰어다녔는데... 진짜 우리끼리도 따뜻한 커피를 놓고 같이 이야기 나누면서 그런 시간을 조금 더 가졌어야 했는데... 저는 그게 진짜 후회가 됩니다. 미안합니다...”
리더로 섬기면서 같이 뛰는 동료를 챙기는 것도 멤버를 챙기는 것만큼 중요하다. 좋은 리더는 자신의 주위부터 가장 잘 케어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리더는 가정 공동체를 더 잘 사랑하고, 돌봐야 한다. 영향력 있게 사역을 하고, 섬기려면 가정이 건강해야 한다. 가정이 건강하지 못하면 아무 일도 못 한다.
영성이라고 하면 일만 많이 하고, 많은 사람을 챙겨야 하는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영성 있는 리더는 자기의 가족을 챙긴다. 예전 베이비붐 시대 교역자들은 가족이 너무 희생했다. 그러나 요즘 젊은 교역자들은 너무 가족만 챙긴다. 가정 중심적인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러나 교회 혹 공동체보다 가정이 더 중심이고, 섬김이 뒷전인 경우도 많다.
적절한 균형이 있어야 한다. 영성 있는 리더는 사랑을 줄 줄도 알고, 받을 줄도 안다. 균형이 잡혀 있다는 말이다. 리더도 사랑을 받아 봐야 한다.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나는 젊을 때 나 자신을 위해 돈을 쓰는 것을 잘하지 못했다. 좋아하는 치킨도 잘 사 먹지 않았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다음 세대 멤버들을 사 줄 때는 아깝지 않았다. 어느 날 이것도 문제라는 자각이 들었다. 나중에는 나 자신을 위해서도 물질을 쓸 수 있게 되었다.
누군가 사랑을 베풀어 주고, 선물을 주어도 잘 받을 줄 몰랐다. 서울에서 사역하는데 예전 교회에서 함께 섬겼던 지체가 올라왔다. 같이 대화를 나누는데 처음에 상처를 받았다고 이야기를 했다. 자신이 나에게 간식을 챙겨 주었는데... 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엇을 받는 것이 나에겐 익숙하지 않아 거부했었는데 그것이 마음에 상처가 되었단다.
사람은 사랑을 받아 본 만큼, 사랑을 베푼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을 잘 받을 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이 모든 것을 받는 종착역이 되어서는 안 된다. 베풀어야 한다. 다른 지체에 흘려보내야 한다.
많이 어려운 집사님이 있었다. 내가 섬기는 분은 아니었다. 직접 그분에게 주면 부담스러워할 것 같아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 흘려보냈다. 다른 교회의 교역자분, 선교사님에게 다른 나라에 가서 쉬고 오시라고 항공권을 보내 드리기도 하였다.
2017년부터 2018년까지 1년 동안 책을 10권 정도 썼다. 감사하게 모든 책이 괜찮게 나가고 있다. 2018년 주님의 교회를 오기 전에 잠깐 안식 기간을 가질 수 있었다. 그래서 8월~9월은 제주도와 해외에 갔다가 10월 한 달만 집회를 스무 번 정도 섬겼다. 강사료는 필요한 곳에 흘려보냈다. 하나님이 이렇게 축복을 해 주시는 이유가 있다. 계속해서 흘려보내라고 주시는 축복임을 알기에 그렇게 했다.
리더는 자신과 함께 하는 리더들을 잘 챙겨야 한다. 보통은 잘 안 나오는 사람에게 진액을 쏟아붓는다. 그러나 정말 챙겨야 할 사람들이 있다. 교회에 잘 나오고, 많은 일을 감당하는 리더들을 만나야 한다. 맛난 것도 사주고, 교제해야 한다. 이들이 회복되고, 행복하고, 재미있으면 섬김을 받는 멤버들이 힐링을 받는다.
목회자끼리도 행복하고, 재미가 있어야 한다. 한 지체가 이런 말을 건네 왔다. “목사님끼리 행복한 게 저한테는 힐링이 됩니다.” 부모인 엄마, 아빠가 굉장히 행복하면 자녀도 행복하다. 나중에 가정을 꾸리게 되면 행복한 가정을 보고 자랐기에 그렇게 잘 산다. 그런데 부모가 싸우고 있으면 아이들이 불행하고, 나중에 그런 싸우는 가정으로 마치 대물림하듯이 된다. 영적으로도 그렇다. 리더들끼리 품어 주고, 칭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멤버들도 리더들을 칭찬하지 않는다.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을 하면 몸이 경직된다. 이처럼 공동체 안에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며 서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공동체성은 고사하고, 생지옥을 체험하게 된다. 그러니까 진짜 사랑을 받아 본 사람, 진짜 헌신을 받아 본 사람은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자기가 받은 만큼 내리사랑을 하게 되어 있다. 이것은 영적인 멘토 혹, 리더에게만 이런 사랑의 관계적 영성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가정과 사회에서도 필요하다.
우리가 다 리더지만 다 같은 영성의 리더는 아니다. 관계적 생명이 있는 영성을 가진 리더는 공동체에 밝은 꽃을 피운다. 생명이 없는 곳에는 절대 생명이 일어나지 않는 원칙이 적용된다. 무정란과 유정란은 크기가 같다. 색깔도 똑같다. 무게도 똑같다. 그러나 가격이 다르다. 왜 그럴까? 유정란은 생명을 꽃 피우고 무정란은 먹는 식용으로만 쓰이기 때문이다.
김영한 목사(품는 교회 담임, Next 세대 Ministry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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