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대 설립위원장이며 초대총장을 지낸 윌리엄 린튼(한국명 인돈) 선교사가 ‘2022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됐다고 지난달 28일 밝혔다.
국가보훈처는 3.1절을 앞두고 28일 광복회,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군산 3·5만세 운동의 주역인 이두열, 고석주, 김수남, 윌리엄 린튼 선생 등 4명을 ‘3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 발표했다.
군산 3.5만세운동은 호남 최초 만세운동으로 당시 참여 인원만 3만 7000여명에 달했고, 이후 전북지역에서 28차례에 걸쳐 만세 운동이 일어나게 된 촉매제 역할을 했다.
국가보훈처에 따르면, 윌리엄 린튼은 미국 조지아공대 전기공학과를 수석졸업하고, 제너럴 일렉트릭(GE) 입사가 예정된 전도유망한 청년이었지만 1912년 21세의 최연소 선교사로 한국에 들어와 군산 영명학교 교사로 교육선교를 시작했다. 1년 만에 한국어를 능수능란하게 구사해 한글로 성경과 영어를 가르쳤으며 1917년 전임 선교사가 한국을 떠나면서 영명학교 교장으로 임명됐다.
린튼은 군산 3.5 만세운동 당시 교사들과 학생들의 준비를 은밀히 지원했으며, 안식년을 맞아 미국으로 돌아간 뒤 애틀란타에서 열린 남장로교 평신도대회에 참석해 3.1 운동의 정당성을 알리고 일제의 만행을 폭로하는 강연을 했다. 애틀란타 저널에 ‘한국인들이 어떻게 자유를 추구하는지에 대한 애틀랜타인의 증언’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상황을 알리고 지속적으로 한국독립의 필요성과 지원을 주장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전주 신흥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린튼은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부해 학교가 폐교됐으며 1940년 미국으로 추방됐다. 그러나 린튼은 광복 이듬해인 1946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1956년 한남대(옛 대전대학)를 설립하고 초대 총장을 맡아 암 투병을 하면서도 대학 기반을 다지는데 헌신했다. 1960년 미국에서 암 치료를 받던 중 세상을 떠났다.
한편 린튼은 2010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외국인으로는 드물게 독립운동과 인재양성, 사회정의 구현에 앞장선 공로로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 받았다.
린튼은 유진벨 선교사의 사위로 지금도 5대에 걸쳐 후손들이 한국을 위한 봉사활동을 펼치고 있다. 북한의 결핵환자를 돕는 유진벨재단 스티브 린튼(인세반) 회장과 한국형 앰뷸런스를 개발한 세브란스병원 국제진료소장 존 린튼(인요한) 등이 후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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