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도 여러 가지가 있다. 옛날에는 땅 뺏기 전쟁이었지만, 그 후에는 아편전쟁, 경제전쟁, 무역전쟁, 무기전쟁, 이념전쟁, 종교전쟁 등이 있었다. 그중에 나는 오늘날의 세계관 전쟁을 생각해 보고 싶다.
사실 세계관(世界觀)이란 단어는 영어에는 아예 없다. 그래서 말을 만들어서 World View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독일어로는 세계관을 Weltanschaung라고 하고, 화란어는 Wereldbeschouwing라 한다. 세계관이란, 다른 게 아니고 말 그대로 <세상을 보는 안목이요, 전재>이기도 하다. 가령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은 병이 나면 무당을 불러서 굿을 하는가 하면, 다른 어떤 사람은 병이 나면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을 받고 치료를 한다. 이 둘의 차이는 결국 세계관의 차이다. 전자의 사람은 질병이 몹쓸 귀신이 들려서 되었다고 생각하고, 후자의 사람은 질병이란 인간에게 늘 있게 마련이기에 의사를 찾아가서 수술을 받거나 치료해서 낫는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세계관이란, 어떤 사람이 인생을 살아 가는데 있어서 기본적 전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기본적 입장의 세계관은 개인 생활은 물론, 문화, 사회, 정치와 학문과 예술의 방향을 결정한다. 그런데 세계관은 그 민족이 가지고 있는 기후, 토양, 문화, 역사, 종교, 정치 등 다양한 조건 위에 만들어지기도 한다. 한국 사람과 일본 사람이 다르고, 미국 사람과 한국 사람은 다르다. 그런데 그 차이는 피부나 머리 색깔이 아니고, 세계관의 차이다. 그 세계관의 차이가 삶의 모든 영역에 열매로 나타난다. 이처럼 세계관은 실로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 미친다. 일본이 국가주의 세계관이라면, 미국인들은 개인주의적 세계관이다.
그렇다면 한국인의 세계관은 어떨까? 한 마디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한국인의 세계관은 유교적 세계관, 불교적 윤회사상, 유물주의 세계관과 인본주의 세계관이 혼존하는 듯 하다. 그러므로 오늘의 한국 사회와 정치의 혼미는 세계관의 혼돈에서부터 나온 것이라고 해도 좋을 듯싶다. 개인이나 민족이나를 막론하고, 어떤 세계관을 갖고 있는가는 참으로 중요하다. 왜냐하면 세계관은 그 문화의 역사적 발전과 쇠퇴에 직·간접으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관이란 인생관과 같은 뜻으로 쓰이기도 한다.
아브라함 카이퍼(A. Kuyper) 박사는 1898년 미국 프린스톤 대학에서 <스톤렉쳐>라는 특강을 통해 <칼빈주의>를 말하면서 세계관이란 말을 사용했다. 그는 말하기를 「두 개의 세계관이 생사를 겨루는 격전장에서 서로 싸우고 있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늘날은 사람들이 인간중심주의 세계관을 세우나, 그리스도인은 하나님 중심 세계관을 갖는다고 했다. 그는 더욱 적극적으로 말하기를 「이 세상에는 <중생자의 세계관>과 <비중생자의 세계관>이 있다」고 했다. 중생하지 못한 자연적 인생은 언제나 자기 자신이 하나님이 되어 판단 기준이 되고, 자기에 유익하면 정의이고 진리로 본다. 그러니 중생 되지 못한 인간은 상대적으로 인본주의적 사상체계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복음의 능력과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이 중생의 체험을 갖지 않으면 옛 세계관의 사람으로 살아간다.
중생의 체험을 가진 사람의 세계관은 새로운 것이어서, 세상과 우주와 역사와 인생을 보는 새로운 눈이 열린다. 그래서 중생자의 세계관으로 펼쳐지는 교회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라야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새로운 세상은 낡아빠지고 타락한 이성과 타락한 양심의 소유자가 만들 수는 없다. 새로운 세계관 곧 중생자의 세계관을 가져야 세상이 보이고, 우주가 보이고, 역사가 보이고, 인생과 문화와 예술이 보인다.
우리는 거대한 세계관 전쟁, 그것을 영적 전쟁이라고 해도 좋다. 교회가 무엇인가? 교회는 영혼 구원이 일차 목표이지만, 구속받은 성도들을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자는 얼치기 신자로는 안된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자들은 인본주의자나 불신앙자들은 어림없다. 사탄의 전략은 우리보다 훨씬 우월하다. 사회주의, 공산주의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 지난 수십 년 동안 이 땅을 병들게 했다.
교회는 세계관 전쟁의 중심이다. 교회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전사를 기르는 장소이다. 지금 한국은 중생하지 못한 인본주의, 유물주의 세계관을 가진 자들이 삶의 모든 영역에 진을 치고, 권력을 잡고 나라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럼에도 목사님들은 어찌해서 인본주의 세계관에 함몰되어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방법만을 설교하고, 노래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두 세계관이 삶의 전투장에서 격한 전쟁을 벌이고 있다. 우리는 깨어서 확실하게 <하나님 중심 세계관>으로 이 땅에 젊은이들을 교육하고 새로운 정치, 새로운 문화를 꽃피웠으면 한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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