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초월 부재의 시대다. 오늘날 세속 지성인들을 매료시키는 자연주의 철학 등은 이른 바 현상 너머의 초월의 영역마저 자연으로 끌어들이며 그것이 모두 자연으로부터 출발했다는 자연발생설을 주장하기까지 한다. 초월의 근거가 내재라는 이러한 자연주의 그리고 시간의 철학에 의해 초월의 영역이 세속화되고 있는 가운데 종교철학적 과제를 논하는 논문이 발표돼 눈길을 끌었다.
장왕식 감신대 교수(종교철학)는 올해 발행된 「신학과 세계」(100호)에 실은 '초월 부재의 시대와 종교철학적 과제: 목적론적 유신론을 지향하여'라는 제목의 연구 논문에서 시간의 철학과 자연주의 도전 앞에서 종교철학의 과제를 놓고 씨름했다.
장 교수는 오늘날 세속 지성인들을 매료시키는 두 입장, 즉 시간의 철학과 자연주의에 대해 "우주를 생성과 과정의 관점에서 보는 동시에, 모든 사물에 대한 설명을 우연성과 우발성에 근거해 시도하려 한다"며 "나아가 이런 근거에 기초해 신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초월적인 것들, 예를 들어 정신, 영혼, 신 등 마저도 자연이 스스로 발생시킨 것으로 해석한다. 한마디로 말해, 초월은 내재에서 발생한 것으로 기술된다"고 했다.
이어 "이렇게 시간의 철학과 자연주의는 오늘의 세속 지성인들로 하여금 초월자나 신 없이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삶의 의미가 확보될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다"며 "하지만 현대인들이 무조건 시간의 철학이나 자연주의 철학이 제공한 세계관에 만족하는 것은 아니다. 적지 않은 현대인은 이런 포스트-모던적 세계관을 따라 살아가다 보면 삶을 적극적으로 긍정하게 되기보다는 허무주의로 인도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장 교수는 그러면서 논문의 취지에 대해 "이렇게 종교의 자리를 위협하고, 동시에 인간의 삶에 허무주의적 경향을 심는 오늘의 철학적 사조들이 갖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논자는 목적론적 세계관과 유신론적 접근을 하나의 대안으로 소개하겠다. 결국 논자는 목적론적 유신론이 갖는 철학적 장점들을 소개하면서, 그 과정에서 어떻게 오늘의 지성인들이 여전히 현대의 사상적 흐름에 뒤지지 않으면서도 또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지 설명해 보이겠다"고 덧붙였다.
보다 구체적으로 그는 "시간의 철학과 자연주의 철학은 오늘의 세속 지성인들로 하여금 초월자나 신 없이 살아가면서도 얼마든지 진리의 추구가 가능하다고 믿도록 만들었다"며 "오늘의 세계는 초월적인 것보다는 내재적이고 잠재적인 것으로 설명될 수 있다는 것이 그들의 확신이며, 이를 통해 그들은 종교와 신 없는 삶을 추천하게 된다. 하지만 많은 현대인들이 시간의 철학이나 자연주의 철학이 제공한 세계관에 대해 모두 만족스럽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일부의 현대인은 이런 철학적 주장을 따라가다 보면 삶의 적극적 긍정보다는 오히려 허무주의에 빠지기 쉽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먼저 시간의 철학의 문제를 짚었다. 장 교수는 포스트모던 시대를 대표하는 시대 정신의 하나로 시간의 철학을 꼽으며 현대 지성 사회에서 시간의 철학이 득세하게 된 과정을 설명했다. 그는 현대인들 사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현대 시간의 철학을 질 들뢰즈가 제시한 방법에 의거. 칸트 철학에 대한 비판적 분석을 통해서 조명해 봤다.
장 교수는 "본래 사람들은 시간을 생각할 때 시간을 동일한 단위의 형식을 따라서 끊으면서 서수적(ordinal) 연속으로 시간을 이해했다. 예를 들어 1초에서 2초가 된 후, 그 다음 2초가 다시 3초가 될 때, 우리는 이런 순간적 '초' 단위가 연속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1초'라는 균일한 양으로 끊을 수 있고, 그 과정 안에는 동일한 양의 내용이 매 순간 더해진다고 전제해야만 한다"며 "그렇지 않고서는 1초 후에 반드시 동일한 양의 1초가 더해져 2초가 생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을 이런 형식으로 이해하게 되면, 시간은 항상 동일한 단위의 정체성을 지닌 점들이나 순간들로 간주되어야만 한다. 그러나 시간이란 항상 그런 식으로 끊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며, 어떤 경우 그런 방식의 해석은 불가능하다. 소위 '빗장이 풀린 시간'이 바로 이런 동일한 형식으로 끊을 수 없는 시간을 의미하는 경우가 된다"고 했다.
들뢰즈는 빗장 풀린 시간을 미친 시간으로 부르는데 이는 "이런 시간 이해에서는 "동일성이 없는 다양성이 계기적(successively, 繼起的)으로 반복해서" 주어진다고 이해되기 때문이다"라며 "시간의 흐름이 규칙적인 단위를 따라 동일한 내용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방식으로 전개되면서 그곳에서는 균일적인 것이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비균질적 다양이 발생한다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장 교수는 "이로 인해 시간의 흐름은 급진적 우발로 이어진다. 시간이 미쳤고 자율적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뜻이다. 말하자면, 시간이란 동일한 내용의 단위로 잇따르는 연속이 아니라, 우발적이고 폭발적으로 흐르는 무질서함이라 이해하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결국 현대 시간의 철학은 시간의 동일적 정체성을 부인하는 것이라고도 갈파했다.
장 교수는 "시간을 빗장 풀린 미친 것으로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의 철학이 가져온 결과 중 가장 중요한 혁명은 그것이 그 어떤 종류의 동일한 정체성(identity)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라며 "즉, 이런 식의 시간의 철학의 관점에서 볼 때 우리는 결코 자아, 주체, 나 등에 대해 동일한 정체성을 부여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하나의 자아는 균열된 자아가 되고, 주체도 해체된 주체가 되며, 또한 '나'는 분열된 '나'로 둔갑하게 된다"고 했다.
동일적 정체성을 부정하는 이러한 현대 철학의 시간 이해가 사물을 보는 관점 역시 바꾸어 놓았다고 설명했다. 장 교수는 "오늘의 현대인들은 어떤 사물이 지닌 정체성과 동일성이 사실은 어떤 근거에 정초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추상적 사고의 산물로서 가정된 것뿐임을 깨닫게 되었다"며 "이로 인해 모든 사물은 고정된 실체를 갖는 것이 아니라 유동하는 흐름 속에서 생성과 소멸만을 거듭하는 존재임을 알게 되었다. 오늘날 생성과 과정의 사상이 매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현상은 이런 배경에서 기인한다"고 전했다.
자연주의 철학의 인기와 명암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장 교수는 "최근에 세속의 지성인들이 집중적으로 관심하는 철학은 신/자연, 초월/내재, 신학/과학의 이분법적 프레임을 따라서 둘 중 하나를 고르지 않는다. 그들은 새로운 프레임에 기초해 자신들의 주장을 펼치는 방법을 택하고 있는데, 여기서 말하는 그 새로운 프레임의 특징은 이원론적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일원론적이며, 나아가 일의적(univocal, 一義的)이기까지 하다. 오직 존재하는 것은 하나의 차원뿐이라 강조되기에 일원론적이라 불리고, '존재함'이란 개념의 의미도 오직 하나뿐이라 선언되기에 일의(一義)적이라 불리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일방적 프레임을 통해 매우 급진적인 형태의 비종교적 철학을 택하는 경향이 오늘의 세속 지성계를 지배하고 있다"고 했다.
장 교수는 이어 "오늘의 모든 학문은 철저하게 일원론적이고 일의적인 관점에 의해서 지배된다. 둘 중에 하나가 선호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만이 오로지 진리이며 다른 하나는 단지 오류이거나 착각이거나 기껏해야 부차적이라 주장된다. 만일 우리가 이런 식의 프레임을 받아들인다면 학문적인 토론을 즐기는 장에서 신학의 자리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된다. 모든 것은 단지 과학만으로 설명된다는 주장으로 가득 찬 토론장에 신학자는 더 이상 초청되지 않는다. 그리고 사실상 바로 이것이 오늘날 세속의 트렌드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로지 과학만으로 세상의 모든 사실들이 설명될 수 있다는 자연주의적 주장 중에 대표적인 입장은 우리가 익히 아는 것들로서, 우리는 그것을 물리학에서는 '물리적 환원주의'라고 부르고, 생물학에서는 '뇌과학적 환원주의'라고도 부른다. 물론 이를 그저 '물리적 자연주의'라고 부르기도 한다. 모든 설명은 자연에 내재하는 물리적인 것으로 환원해서 설명되기에 '물리적 자연주의'라 부르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장 교수는 특히 신학적으로 중요한 결과를 초래하는 일의성의 철학에 대해 상세한 설명을 보탰다. 그는 "일의성의 존재론에서 '존재' 혹은 '있음'이란 의미는 본래 스스로 '발생'하는 것이거나 혹은 스스로 '됨'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근거에서 하나님과 인간의 '존재함'은 어쨌든 '존재(있음)'에서 동일한 의미를 지닌다고 주장하는 것까지 발전하게 된다. 초월자이든 인간이든 양자의 존재함은 발생함에서 기인되었고, 각기 그런 '존재(being)'는 '됨(becoming)'에 의존해 가능하게 된 것이라 보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의성의 존재론은 모든 존재자가 '있음' 혹은 '됨'에서 동일하며 하나라는 뜻이다"라고 했다.
장 교수는 "오늘날의 자연주의자들이 '초월론적'이라는 개념을 사용할 때의 의미하고자 하는 바는 '초월적'인 것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 맞다. 내재와 잠재가 초월을 만들어 내고, 그것을 따라서 다시 자신들의 존재를 설명해 낸다고 보기 때문이다"라며 "오늘의 자연주의는 그 어떤 의미의 초월자도 배제하는 철저한 유형의 내재주의요, 지독한 형태의 급진적 자연주의인 것이다"라고 했다.
자연주의 철학 사조의 그림자에 대한 설명도 이어갔다. 장 교수는 "오늘의 물리적 자연주의는 무신론과 비종교적 견해를 낳았는데, 이로 인해 적지 않은 부작용도 생겨났다. 그중 하나가 삶의 의미에 대한 자신감을 갖는 데 있어 오늘의 현대인은 매우 심각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라며 "정신과 영혼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과 자연의 부수현상이라고 말할 때, 오늘의 현대인들은 방황한다"고 했다.
또 "정신도 영혼도 신적인 것에 의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이로 인해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방황하게 될 것이고, 영혼 없는 야수들이 토해내는 이전투구의 세상만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라며 "이런 현상들이 바로 현대인들 사이에 허무주의를 팽배하게 한 요인들이라는 것을 부정하기 어렵다. 현대인들은 분명히 삶의 의미의 근거를 찾는 데서 어려움을 느끼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현대 시간의 철학과 자연주의가 초래하는 허무의 문제의 돌파구로 장 교수는 목적론적 세계관을 제시했다. 장 교수는 "목적론적 세계관이 현대 세속 지성인들의 허무주의적 무력감과 종교적 회의감을 씻어줄 수 있다고 보는 이유는 그것이 우선 자연을 기계로서 간주하지 않고 운동성을 지닌 채 목적이라는 방향을 향한다고 보는 세계관이기 때문이다"라며 "또한 자연을 목적의 관점에서 보게 되면, 자연을 자연으로서만 설명하지 않고 초월과 신의 관점에서도 설명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는다고 논자는 생각한다. 자연이 방향성을 갖고 미래로 진보하면서 문명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초월과 신의 역할이 필연적으로 요구된다고 보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장 교수는 "시간의 철학이 현대인들에게 위협이 될 때는 단지 한 경우뿐이다. 시간을 이해할 때 그것이 전혀 인간의 부여하는 형식과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간주하는 결과, 시간이 질서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발과 우연을 만들어내는 것으로만 이해할 때가 바로 그런 경우다. 물론 형식이 없는 시간은 우발과 우연에 휩싸이며, 따라서 예측 불가능한 다양과 무질서를 낳는다. 그리고 이는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의 삶의 여정에서 목표와 목적을 앗아가면서 쉽게 허무주의적인 무기력을 남긴다"고 했다.
그러면서 "자연과 시간은 어떤 경우 인간의 지배에서 벗어날 정도의 자율적 힘을 행사하지만, 동시에 인간은 스스로의 정신과 이성을 사용해 그것들을 역으로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이해할 수 있다"며 "이를 위해 만들어진 하나의 학문이 바로 자연과학이며 또한 그렇게 보는 시간이 바로 목적론적 세계관이다. 목적론적 세계관은 시간의 흐름을 방향성 있는 운동으로 해석하며, 동시에 그런 시간을 인간이 부여하는 이성적 형식에 종속되도록 만드는 과학적이고 철학적인 도구이다"라고 했다.
장 교수는 "우리는 형식 없는 시간이 우선이라는 견해에 일정 부분 반대하지 않지만 동시에 그런 자율적 시간에 형식을 부여하고 질서를 부여하는 인간의 시도도 여전히 중요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말해 시간을 발견한 것도 인간이고 시간에서 형식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인간이며 동시에 형식이 없는 시간에 형식을 부여하는 것도 역시 인간이 하는 일이다. 결국 시간이 자율적이라 생각될 때에만 그것이 인간의 손을 떠나 시간다워진다는 자연주의자들의 견해도 실은 인간이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다"라고도 했다.
나아가 현대 철학의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목적론적 유신론에 대해서도 소개했다. 장 교수는 "인간의 삶이 가치 있는 이유는 인간이 유의미하고 가치 있다고 보장해 주는 체계, 즉 모든 가치들과 가치들을 전체로서 통합한 세계가 있고 그 안에서 그 가치가 하나의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지 무조건 그것 자체가 가치 있는 것은 아니다. 즉, 의미를 만들어내는 장이 형성되어 있고 그런 장에서 만들어지는 행위를 의미 있다고 평가해 주는 존재가 있을 때 진정한 가치가 만들어진다. 신은 이런 장을 부여하고 그런 장을 평가하는 분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무신론적 세계관에 입각한 채 신이 없다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신이 있다고 주장할 때 인간의 삶은 더욱 풍요로워질 수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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