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하여 1년 만에 중국을 거쳐 모스크바 한국대사관에 들어갔을 때이다(1992년7월6일). 마중한 최모 서기관(안기부 요원)과 면담 속에서 그는 김정일이 뭔가 개혁적 인물이 될 거라는 기대를 표시한다. 늙은 김일성보다는 젊은 그가 실권을 쥔 상황에서 타 공산국가의 변화처럼 되지 않겠는가이다. 그런 발언을 할 만큼의 근거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신상옥 감독과 최은희 배우가 가지고 온 김정일의 발언 녹음이었다.
녹음 내용에는 북한의 낙후성을 거침 없이 비판하고 있었으며 반면 자유세계의 우점을 긍정한 대목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기대는 2000년 6.15 첫 남북정상회담으로 최고조에 이르렀다. 김정은 등장시의 기대는 김정일 이상이었다. 스위스 유학까지 다녀온 30 초반의 지도자이기 때문이었다. 기대의 최고조는 2018년 4.27판문점 선언이라 할 수있다. 변화할 것이란 기대는 모두 여지없이 빗나갔다. 김정일은 수백만이 굶어죽는 참혹함 속에서도 <나에게 변화를 기대하지 말라>라고 공공연히 외쳤으며 죽을 때까지 그랬다.
그 유언을 받들어서인지 김정은 역시 변화된 중국을 추구하는 장성택 고모부를 육체까지 박살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의외이지만 개방시도는 김일성 시대에 있었다. 이는 1979년 남포농대 연구원 시절 직접 체험한 바이다. 국내의 도전과 외부위기가 없는 안정된 상황에서 김일성은 바로 한해 전인 1978년에 등소평이 시작한 개혁개방의 여파를 받아들인 것이 틀림없다. 1979년 11월 경으로 기억하는데 김일성은 다음과 같이 교시하였다. 남포시를 특별시로 정하고 국제 도시화하라! 상해, 홍콩, 싱가포르, 뉴욕과 같은 국제항구도시로 만들라. 상기의 도시들은 바다에서 보면 불빛으로 산릉까지 휘황찬란하다면서 남포시(와우도 구역)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다. 3년 쯤 되면 거리에서 외국인과 같이 거닐게 될 것이라 하였다.
국제도시화에 대한 최우선 실감은 주민청소에서 나타났다. 성분이 나쁜 주민들은 모두 남포시 외의 평남도 탄광지대로 소개되었다. 대학에서 먼 남포 와우도 국제도시 건설장에 걸어서 오가며 매주 금요일마다 건설노동에 참여하곤 하였다. 작업의 비효율성은 더 말 할 것 없었다. 보다 난관은 도시생활수준문제였다. 설계상 온수난방으로 되어 건설했지만 입주자들은 살기 위해 다시 뜯어고쳐야 했다. 온수난방은 그림의 떡인 실정에서 얼어죽지 않기 위해 연탄아궁, 구들장을 놓아야 했다. 이런 시커먼 연탄 거리에 외국인을 맞아야 하는 것이 걱정이었다. 이런 것은 약과의 약과였다. 보다 심각한 것은 정치문제였다. 수뇌부가 자리잡은 수도의 관문이 남포인데 너무 가깝게 외세가 들어온다는 것이다. 하여 평양과 가장 먼 함경북도 선봉지구가 개방지역으로 우선시 될 수밖에 없었다. 선봉지구도 주민청소를 하고 철조망으로 나라 안에 나라처럼 봉쇄하여 50년이 지났다.
하지만 최북단 그 먼 선봉지구도 개혁개방 구역이라 말할 수 없는 형편이 현 북한실정이다. 스위스 유학까지 한 김정은이 왜 불변일까. 그게 3대 세습의 속성이고 남과 다른 특징 때문이다.
30대가 뭘 알아서 할아버지 아버지벌들을 쥐고 흔들까. 이것은 3대 세습으로 이어진 신정이기에 가능하다. 그 신정의 권위는 일제타승 나라해방, 미제타승 나라수호이다. 모두 새빨간 거짓말로 신정을 만든 것이다. 신은 오류가 없다. 그러니 개혁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다. 이런 3대 세습 신정이란 특징을 이해 못해 아직도 대화를 해서 국제사회일원으로, 개혁개방으로 이끌어낸다고 주술하고 있다. 그래서 3대 세습이 아니라 북한 동포에게로 향하라고 우리는 주술하고 있다. 아니 이것은 누구의 주술이 아니라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
김정은이 영원히 살 길은 딱 하나이다. 지나간 모든 것을 불문에 부치고 운명으로 지어진 절대권위로 등소평 같은 개혁개방의 길로 가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현실로 될 수는 없다. 공산권 신정 역사가 그랬기 때문이다. 공산종주국의 신정인 스탈린과 그 후계자 말렌코브가 말해주었다. 중공의 신정인 모택동과 그 후계자 화국봉 시대가 말해주었다. 변화는 그 신정을 부정한 때부터 싹텄고 자라났다는 것은 다 아는 역사이다.
이민복 탈북민 선교사(북한동포직접돕기운동 대북풍선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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