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다른 신에게 절하지 말라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임이니라" - 출애굽기 34장 14절
'질투'라는 단어는 이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에 대한 긍정적인 뉘앙스보다는 부정적인 뉘앙스를 강하게 풍긴다. 질투심을 품은 사람은 으레 콤플렉스를 지닌 열등한 존재로 인식된다. 질투심은 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는 보편적인 감정상태로서 다른 사람의 외모, 배우자, 명예, 재물 등에 대한 부러움과 관련돼 있다. 도가 지나친 질투심은 상대방에 대한 적개심으로 이어질 수도 있고, 상대방을 해치려는 실질적인 행동으로 표현될 수도 있다.
출애굽기 34장 14절은 하나님의 많은 속성 가운데 하나를 '질투'로 나타내고 있다. 이 구절은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을 '질투'라고까지 표현한다. 질투는 불안하고 연약하며 툭하면 원망이나 하는 인간들 속에나 있는 감정인 줄 알았는데 하나님이 질투하신다고 하니 영 어색하고 와닿지 않는다. 하나님은 왜 질투하시며 그 의미는 무엇일까? 전지전능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완벽한 '우리의 아버지'께서 어떻게 질투하실 수 있다는 걸까?
크리스천 작가 '제시카 브로디'씨는 이 같은 질문에 관해 해외 복음주의 사이트 '크로스워크'에 상세히 풀어 설명했다. 그의 글을 번역 및 요약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질투하는 하나님'은 무슨 뜻일까?>
출애굽기 20장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시면서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이라고 말씀하셨다. 이어 출애굽기 34장 14절에서는 거의 동일한 말씀으로 "여호와는 질투라 이름하는 질투의 하나님이니라"고 반복하셨다.
한국어로 번역된 출애굽기의 '질투'에 상응하는 히브리어는 'QUNNA'(칸나)로서 이 단어는 사실 '질투' 뿐 아니라 '열렬하게 보살피는' 이라는 뜻도 동시에 갖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께 속한 백성들이 다른 누군가의 마법에 빠지지 않기를 바라신다. 창조주이자 아버지로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고, 우리를 사랑하시며,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 그런 하나님의 품에 우리가 안전하게 거하기를 하나님은 간절히 바라신다. 그것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질투다.
성경은 하나님의 '질투'가 이기적인 사랑에서 비롯된 게 아니라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심 없고 사랑스러운 관심에서 비롯됐다고 말한다. 이는 사도바울이 초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 내용과 흡사하다. "이는 내가 경건한 질투로 너희에게 질투를 느낌이라. 내가 너희를 한 남편에게 정혼시키나니 이는 한 순결한 처녀로 너희를 그리스도께 바치려는 것이라"(고린도후서 11장 2절) 바울이 말하는 '경건한 질투'는 의로우며 온전히 교린도교회 교우들을 위한 성격이었다.
하나님의 질투는 순전한 질투로서 사람의 유익을 위해 의도된 것이었다. 이는 우리가 '거짓의 아비' 마귀에게 속해 타락하지 않도록 하고, 영원한 창조주이신 하나님과 교제하기를 갈망하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진실된 사랑으로 표현된 질투였다.
<'경건한 질투'의 의미>
전술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질투는 인간의 질투와 성격이 다르다. 그러나 '질투'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뉘앙스와 느낌, 사전적 정의 때문에 종종 하나님의 질투를 사람이 하는 질투와 비슷한 성격으로 오인하곤 한다.
하나님의 '경건한 질투'와 대비되는 인간의 질투는 철저히 이기적이다. 인간의 질투는 남을 위한 질투가 아니라 자기를 위한 질투다. 질투는 불의한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징 중 하나로서 로마서 1장 29절에 나열된 죄의 목록 가운데 하나로 등장한다. 갈라디아서 5장에는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는 육체의 열매 가운데 하나로 '시기'를 제시하면서 이 같은 것을 멀리하라고 가르친다. 성경 교리에 따르면 모든 인간은 본질적으로 죄 가운데 있으며 질투는 성도가 경계해야 될 죄의 목록 중 하나다. 로마서 3장 23절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한다. 예외없이 죄 가운데 있는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가 없다. 예수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는 온전하신 분"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경건한 질투'란 본질적으로 죄인인 인간의 사심 있는 질투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을 '자기 백성의 것'이라 하실 때 느끼시는 의롭고 이타적인 질투심을 의미한다.
<'질투하는 하나님의 속성'으로부터 깨달을 수 있는 점>
질투하는 대상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이기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인간의 질투와 달리, 하나님의 질투는 의롭고 아름다운 성격임을 확인했다. 사랑이신 하나님은 피조물인 인간이 당신과 사랑의 교제를 하도록 그들에게 자유의지를 주셨다. 따라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인간의 자유로운 선택에 달린 문제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인간이 진정으로 당신을 선택하길 원하신다.
예수는 마가복음 16장 16절에서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고 말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질투에는 큰 희망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질투하실 정도로 우리를 원하신다는 것을 알게 됐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분과 함께 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선택했다. 이는 우리가 그 어떤 것에 관해서도 두려워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예수는 마태복음에서 이 사실을 상기시켜 주었다. 예수는 육체는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털까지 다 세실 정도로 우리를 열렬하게 보살피시며 귀히 여기시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다. 그러나 죄인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 찬 분이라 의롭고 선한 질투까지 하시는 분이다. 하나님의 경건한 질투야 말로 '모든 인간이 주님의 것이며 주님에게 사랑받는 존재'임을 확인시켜주는 보증수표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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