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의 열기가 대단하다. 공개 17일만에 시청 가구수가 1억 1,100만 가구, 넷플릭스 사상 최고의 시청률과 시청자다. 수치가 모든 것을 말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면 찾아서 볼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들어 시간 나는 대로 보았다. 이야기를 구성하고 연출하는 황동혁감독의 실력을 ‘수상한 그녀’와 ‘남한산성’에서 확인하였기에 약간의 기대감을 가지고 보았다. 좀 잔인하고 폭력적이란 느낌이었지만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방식은 치밀하고 탄탄했다. 주제의식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다 보고 주보칼럼에 간단한 평을 실었다. 드라마에 대한 많은 평이 있지만, 나의 주된 관심은 드라마에 나타난 기독교에 대한 관점이었다. 드라마 속에 나타난 기독교인의 이미지는 일관되게 부정적이다. 승자는 살고 패자는 죽는 서바이벌 게임에서 상대가 죽고 자기가 살았을 때 감사기도를 드리는 그리스도인이 등장하고, 목사인 아버지에게 성폭행을 당한 딸이 등장하는가 하면, 겨우 살아나 길바닥에 던져진 주인공을 향해 ‘괜찮느냐’는 말 대신, “예수 믿으세요”라고 외치는 노방 전도인의 모습 등, 드라마는 초지일관 기독교인의 모습을 부정적으로 그린다. 한국기독교가 비난받을 지점이 많지만, 지나치게 기독교를 희화화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드라마 마지막에 의미심장한 장면이 등장한다. 잔인한 서바이벌 게임의 설계자인 노인 오일남이 병상에서 최후의 승자인 주인공 기훈을 만나자고 제안한 날짜가 12월 24일 밤 11시 30분이다. 성탄 전야였다. 그날 오일남은 마지막 게임을 제안한다. 그것은 길가에 술에 취해 쓰러진 노숙인을 누군가가 도울 것인가, 말 것인가로 내기를 한다. 인간에 대한 믿음의 내기인 셈이다. 사람들은 모두 무심코 지나가는 듯 했다. 그런데 자정 무렵 길 가던 행인이 경찰을 대동해서 추운 거리에 쓰러진 노숙인을 찾아온다. 그리고 괘종시계가 12시를 가리키고, 주인공 기훈은 ‘사람이 왔어!’라고 소리치고 일남은 숨을 거둔다. 사람이 온 그 시간이 바로 12월 25일 성탄절이 시작되는 시간이었다.
나는 이 장면에서, 이 드라마가 기독교에 보내려는 메시지를 읽었다. 감독이 의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길거리에서 예수 믿으라고 말로만 소리치지 말고, 우리 곁에 쓰러져 있는 이웃에게 사랑으로 다가서라는 메시지를 읽었다. 순전히 내 관점이기는 하지만, 12월 24일과 25일이라는 카이로스적 시간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고, 이 드라마가 단순히 반기독교적 정서만을 담은 드라마라고만 생각할 수 없었다. 이기적인 자가당착에 빠지지 말고, 예수처럼 세상 한복판에서 사랑을 실천하라는 메시지를 읽은 것이다.
육순종 목사(성북교회 담임, 전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장)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