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암신학연구소가 11일 오후 서울 안암동 소재 혜암신학연구소 도서관에서 ‘교회 공동체와 목회자의 권위’라는 주제로 ‘2021 가을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김주한 교수(한신대 교회사학)가 ‘루터의 보편적 사제직과 목회자의 권위’라는 주제로 발제했다.
김 교수는 “1520년 농민전쟁이 발발하기 직전 아우구스부르크의 한 무명의 화가가 그린 목판화 ‘서 있는 나무’(Stäandebaum)에는 교황의 어깨 위에서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있는 한 농부의 모습이 등장한다”며 “이 그림은 당대 교회와 성직자 계층을 향한 대중들의 불만이 무엇이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독일 농민전쟁 때 농민들이 발표한 「12개 조항」(1525) 제1항은 경건한 신도들이 자신들의 교회 목사를 스스로 임명하고 검증하며 그 목사가 부적절하게 행동할 때에는 해임시킬 수 있는 권리를 가져야 함을 명시하였다. 제2항과 3항에서는 교회의 과도한 십일조 요구의 부당성을 비판하면서 농민들의 재산권은 합법적으로 보호되어야 함을 주장하였다”고 했다.
이어 “중세기 교회는 성직주의와 교권주의를 기반으로 강고한 지배체제를 구축하였다. 성직계급은 11, 12세기 교회법이 정교하게 발달함에 따라 더욱 특권화 되었고 기성 사회질서의 전체구조와 밀접하게 연계되어 사회 기득권층의 억압의 요소들을 대변하였다”며 “특히 일반 대중들은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생애가 교회가 부과하는 세금 문제와 맞닥뜨려야 했다. 그러한 불만은 이른바 반(反) 성직주의로 표출되어 종교개혁운동의 폭발적인 기제로 작용하였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루터의 보편적 사제론은 성직계층의 특권을 해체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교회 엘리트 계층의 포로로부터 해방시키며 세속권력과 일반 대중의 역할과 책임을 재 정위시킨 신학적 담론”이라며 “루터의 보편적 사제론 개념은 「독일 국민의 그리스도인 귀족에게」(1520)라는 책자에 구체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루터는 영적계급과 세속계급, 사제와 일반 신도를 구분하였던 중세 가톨릭교회의 이중윤리의 철폐를 주장하였다”고 했다.
그는 “루터에 따르면 그리스도인은 모두 세례를 통해 사제로 부름 받았으며 왕 같은 제사장(벧전2:9)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분(estate)에서 동등하며 다만 직무상(office) 차이가 있을 뿐이다. 따라서 영적 계급으로 불리는 사제나 주교, 교황은 하나님 말씀과 성례전을 집행할 임무가 그들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 외에는 일반 그리스도인과 지위에 있어서 아무런 차이가 없다”며 “교황은 이미 영적으로나 법적으로 권위와 리더십을 상실하였다. 교황은 신적인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며 성경의 유일한 해석자도 아니고 그의 지위가 세상 권력보다 더 우월하다고 주장할만한 아무런 성서적 근거도 없다”고 했다.
이어 “루터가 지적한 바와 같이 반(反) 성직주의가 팽배하고 교회지도자들의 권위가 추락하게 된 근본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라며 “그것은 교회의 세속화와 성직계급의 지나친 권력화, 특권화에 있었다. 루터는 반성직주의의 본질을 직시하여 성직주의가 결과한 다양한 사회적 악습들을 비판하였다. 그는 새로운 대안으로 보편적 사제론을 주장하고 교회의 본질과 사역, 목회자의 사명과 직무, 더 나아가 세속 권력과 세상 직무들의 본질적인 성격을 신학적으로 체계화시켰다”고 덧붙였다.
김 교수는 “루터가 보편적 사제론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이 신분상 차이가 없다고 해서 목사 직무의 특수성을 부인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목사란 말씀과 성례를 집행할 권한을 갖는 특수 직무임을 분명히 하였다.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에서 루터는 모두가 그리스도의 사제라고 해서 누구나 설교와 성례를 거행하는 직무를 수행할 수는 없고 또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고 했다.
이어 “목사의 직무는 오직 하나님 말씀을 올바로 선포하는 데 있다”며 “목회자 직무의 본질은 회중들에게 하나님 말씀을 선포하고 성경을 올바로 가르치는 일이다. 이 직무는 교회공동체의 동의와 명령에 의해 주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루터의 보편적 사제론은 교회의 직제와 교직자의 역할과 임무 등 프로테스탄트 교회론 발전에 중요한 신학적 바탕이 되었다”며 “로마 가톨릭교회와 달리 목사의 직무와 책임은 공동체 구성원의 동의가 중요하였다. 루터는 농민들이 「12개 조항」(1525) 제1항에서 요구했던 목사 청빙권의 공동체 귀속 요구에 대해 일정부분 용인하였다. 루터가 교회 회중의 총의를 중요시 여긴 것은 그만큼 목사 직분의 공공성을 강조했다고 볼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는 “목사의 직무는 ‘높으신 분의 부름’ 즉 내적 소명과 ‘공동체의 동의’ 즉 외적 소명으로 그 성격이 규정된다”며 “루터에 의하면 로마 가톨릭교회가 주장한 것처럼 수품성사(ordination)가 목회자를 만든 것이 아니다. 삭발식, 성별식, 도유식(ointments), 의복 등이 사제나 감독이 되게 하지 않는다. 성직자 안수식은 교회공동체가 자신의 설교자를 선택하는 의식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이어 “루터의 보편적 사제론은 ‘종교적 개인주의’가 아니다. 반대로 그것은 교회공동체의 일원으로서 ‘회중의 실체’를 표현한다. 그런 점에서 목사의 권위는 공동체를 향한 무한한 책임과 의무를 통해 확립된다”며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회에서 목사 직분은 소정의 자격요건을 갖춘 사람에게 공적 의식을 거쳐 공인되고 수여된다. 또한 목사 청빙도 교회 회중의 동의를 거친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교회의 외적 행위로서 목사 안수식은 기복적으로 소명의 형식이고 또한 공적인 확인이며 안수 받은 자가 교회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겠다는 결심이 있을 경우에만 타당성을 지닌다는 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루터의 보편적 사제론은 세속 직무의 존재의 목적과 본질을 규명하는데 신학적 근거를 제공하였다”며 “그는 종교적 직무와 세속 직무 사이의 어떠한 질적인 차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종교의 직무와 세속 직무가 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 이 세속 직무 또한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요 세상의 평화와 질서, 공공의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고 했다.
또한 “루터에게 세상은 종교적으로 신성한 하나님의 창조질서이며 하나님의 섭리가 이행되는 장소이다. 따라서 세속 직무 또한 그 자체로 고유한 소명이 있다”며 “보편적 사제 담론에서 루터가 주장한 것은 영적 직분이든 세속 직분이든 모두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이며 그 직분을 감당하는 사람은 자신에게 맡겨진 직무를 각기 그 고유한 영역에서 자유롭게 수행해야 하며 그 궁극의 목적은 공공의 선과 이웃사랑이라는 점이다. 종교적 직분과 마찬가지로 세속 직분 또한 하나님이 주신 소명이며 신자들은 세속의 직분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구현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종교적 직분이나 세속 직분 모두 하나님의 뜻을 실천하는 통로요 수단”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루터의 보편적 사제론이 오늘 한국교회를 향해 제시하는 교훈은 무엇인가”라며 “그것은 목사직의 근거와 내용, 그리고 공적 책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이다. 목사직은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을 위해 존재한다. 목사의 권위와 신뢰는 말씀과 성례를 통해 교회와 세상을 섬길 때 확보된다. 이런 점에서 루터가 목사를 성직자, 사제라고 불러서는 안 되고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고전 4:1), ‘종’ 혹은 ‘교역자’(봉사자)로 불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은 의미심장하다”고 했다.
아울러 “교역은 곧 소명이다. 그 직무는 하나님이 제정하시고 공동체를 통해 위임된다는 점에서 공적인 성격을 지닌다”며 “루터의 보편적 사제론은 성직자의 직무는 이웃사랑과 공공의 선을 위해 존재하며 그 바탕 위에서 직무를 올바로 감당할 때 공동체의 신뢰와 지지를 받을 수 있음을 분명히 하였다”고 했다.
한편, 이후에는 김균진 박사(연세대 명예교수, 혜암신학연구소 소장)의 사회로, 강근환 박사(서울신대 전총장), 장현승 목사(과천소망교회 담임), 김요한 대표(새물결플러스출판사 대표)의 토론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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