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보훈처(처장 황기철)는 광복회 및 독립기념관과 공동으로 올리버 알 애비슨((Oliver R. Avision)·로버트 그리어슨(Robert Grierson)·스탠리 에이치 마틴(Stanley H. Martin) 선생을 ‘올해 9월의 독립운동가’로 선정했다고 31일 밝혔다.
보훈처는 “선정된 3인은 1919년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나자 부상자들을 치료하고 가혹하게 우리 민족을 탄압한 조선총독부에 항의하고 그들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는 등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지원했던 의료선교사들”이라고 했다.
보훈처에 따르면, 애비슨 선생은 1860년 영국 요크셔주에서 태어났으며, 1890년 6월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부임했다. 1892년 제중원 원장으로 재직하면서 고종의 시의(侍醫)도 겸했고 의학교육도 실시했으며, 1919년 3·1운동이 전국적으로 확산되자 일제의 무력 진압에 발생한 부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하고 보호했다. 뿐만 아니라, 일본 헌병의 가택 수색과 환자 이송에 저항하고 항의했다.
3·1운동 이후에는 조선총독부가 주최한 선교사 회의에서 한국인 차별 철폐, 집회·출판의 자유 등을 요구했고, 선생은 당시 미국으로 귀국하는 선교 총무를 통해 자신이 직접 3·1운동의 실상을 알리려 작성한 ‘한국 독립 봉기(3·1운동)에 대한 비망록’을 미국 장로회와 감리회 등 각 교단 교회 지도자들에게 보내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이후 1935년 12월 선생은 미국으로 귀환했으며, 미국에서도 1942~43년 기독교인 친한회 재무를 맡아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승인과 독립운동 지원을 호소하기도 했다.
또한, 그리어슨 선생은 1868년 캐나다 노바 수코셔주에서 태어났으며, 1901년 함경북도 성진(지금의 김책시)에 선교지부와 진료소를 설치하고 선교 활동을 했는데, 이 진료소는 제동병원(濟東病院)으로 발전했다. 그는 성진지역에서 3·1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왔고, 독립만세운동을 준비하던 사람들에게 자신의 집을 비밀회합 장소로 제공했으며, 만세운동 부상자들을 적극적으로 치료했다. 아울러 만세운동에 연루돼 옥고를 치르는 사람들을 면회하여 사식도 제공했다.
선생은 이동휘(李東輝) 선생이 독립운동 중 일제의 감시와 탄압이 심해져 1909년 선생을 찾아와 설교자로 나서줄 것을 요청하자, 기꺼이 그를 성서 판매원으로 임명하고 1년이 흐른 뒤 선교사로 임명했다. 이를 통해 이동휘 선생이 자유롭게 국권회복 운동을 하도록 후원하고 국외 망명도 도와줬다.
마틴 선생은 1870년 캐나다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났으며, 1916년 의료선교사로 용정선교지부에서 선교 활동을 했다. 선생이 부임하고 건립한 제창병원(濟昌病院, St. Andrew Hospital)은 30개의 병상을 갖춘 현대식 병원으로 남녀 입원실과 수술실, 방사선(X-ray) 촬영실 등을 갖추고 있었다.
당시 용정이 속한 북간도 지역은 1919년 국내 만세 소식을 듣고 ‘독립선언 축하회’ 형식으로 만세운동을 했다. 만세운동 중 발생한 사상자(死傷者)는 모두 제창병원으로 옮겨졌고, 선생은 의료진과 함께 부상자는 정성껏 치료해주고 사망자는 합동장례도 치러줬다.
이후 제창병원과 그 부속건물들은 독립운동을 위한 독립 운동가들의 집회 장소로 이용됐고, 이곳에서 독립사상을 고취하기 위한 각종 자료들이 등사판으로 인쇄됐다. 선생의 독립운동 지원 활동은 일제의 정보 보고에 탐지될 만큼 적극적이었다. 간도 대한민국회는 이러한 선생의 독립운동 지원에 1920년 2월 감사 기념패를 수여했다.
보훈처는 “세분은 우리 민족의 병든 몸과 마음을 치료한 의료선교사의 역할 뿐만 아니라, 독립운동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전 세계에 알린 조국독립의 숨은 조력자들이었다”며 “정부에서는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올리버 알 애비슨 선생에게 195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수여했으며, 로버트 그리어슨 선생과 스탠리 에이치 마틴 선생에게는 1968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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