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신앙 사역을 하고 있는 '잭 웰먼'(Jack Wellman) 목사는 오늘날 크리스천에게 희망을 던져주는 성경 속 스토리를 소개했다. 이를 번역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1. 간음 하다 붙잡힌 여인 이야기 - 요한복음 8장
간음한 여인이 예수님 앞에 끌려온 이야기에서 내가 놀란 점은 "남자는 어디 있는가"였다. 남자도 여인처럼 동일한 죄를 범했는데 왜 사람들은 그를 끌고 오지 않았던 걸까? 어쩌면 간통을 시작한 건 남자의 생각이었는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 스토리는 요한복음 8장에서 예수께서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와서 제자들을 가르치시는 것으로 시작한다. 그 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하다 붙잡힌 여인을 가운데 세우고는 "이 여자가 간음 하다 붙잡혔다. 모세 율법에 따르면 이런 여자는 돌로 치라고 한다. 선생은 어떻게 생각하는가?"라고 예수를 시험한다. 만약 예수께서 여인을 놓아달라고 하신다면 모세의 율법을 어겼다고 비난할 참이었다. 반면 예수께서 여인을 돌로 치라고 하시면 그들은 '로마 당국만이 누군가를 정죄하고 죽일 수 있다는 내용을 담고 있는 로마법'을 근거로 예수를 책잡을 생각이었다.
예수는 자기 의(self-righteousness)에 가득 찬 이 독선적인 심판관들을 향해 흙 속에다가 무언가를 썼다. "이에 일어나 시르시되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요한복음 8장 7절). 그러자 이를 보고 양심의 가책을 느낀 이들은 모두 다 그 자리를 떠나버렸다. 아무도 없는 것을 보자 예수는 여인에게 "너를 고발하던 자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고 물었다. 여인이 "없나이다"고 대답하자 예수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고 했다.
이 이야기가 주는 희망은 중한 죄에 빠져서 공개적인 수치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설령 그게 최악의 죄 가운데 하나라고 해도 용서의 여지는 있다는 점이다. 핵심은 예수께서 여인에게 "지금부터 더 이상 죄는 없다"고 하신 말씀에 있다. 현장에서 죄 없는 사람은 유일하게 예수 뿐이었고, 여인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는 자격을 갖춘 유일한 사람도 예수 뿐이었지만 그는 여인에게 돌팔매질을 지시하지도, 본인이 직접 하지도 않았다. 대신 예수는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를 보여주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과거에 무거운 죄에 빠져 있었거나 지금 빠져 있더라도 절대 희망을 잃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이 스토리에 담겨있다. 너무나도 큰 죄여서 공개적으로 노출됐을지라도 구원자 그리스도 보다 더 큰 죄는 없기 때문이다.
2. 예수를 세 번 부인한 베드로 이야기 - 마태복음 26장
십자가형을 앞둔 예수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배반 당할 것이며 원수들의 손에 넘겨져 사형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기록된 바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의 떼가 흩어지리라 하였느니라"(마태복음 26장 31절). 이 말을 들은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며 의기양양한 맹세를 했다. 그러자 예수는 "오늘밤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세 번 부인하리라"고 대답했다. 이에 질세라 베드로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며 한목숨 바쳐 주를 따르겠다고 당차게 고백했다. 베드로의 고백은 결연하고 흔들림 없어 보였다. 베드로가 죽음을 각오하고 주를 따르겠다고 하자 나머지 제자들도 똑같은 맹세를 했다.("모든 제자도 그와 같이 말하니라" - 마태복음 26장 35절)
모두가 알고 있는대로 예수가 붙잡히자 베드로는 예수의 예언처럼 그를 세 번 부인했고, 나머지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져 도망치고 말았다. 그래도 베드로는 좀 나았다. 그는 적어도 끝까지 예수 곁에 가까이 붙어 있으려고는 했으니까.
우리 중 누구라도 베드로처럼 두려움이나 다른 이유들로 인해 신앙의 길에서 떨어졌다면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는 베드로를 용서하시고 회복시키겨서 강력한 방법으로 그를 사용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용서해주신다. 용서하신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며, 주님의 영광을 위해 다시 사용해주신다. 여기에 바로 우리의 희망이 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