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신학과 과학의 만남』(새물결플러스)이 출간됐다. "아마도 신은 없을 테니, 걱정 말고 인생을 즐겨라" 10여 년 전, 영국의 상징인 붉은 이층버스 차체에 붙었던 광고 문구다. 『만들어진 신』의 저자 리처드 도킨스의 모금으로 화제가 된 무신론 광고였다. 그런데 당시에 나온 한 뉴스에 따르면 영국 감리교회의 반응은 분노나 비난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람들이 (광고를 보면서) 신에 대해 얘기할 기회를 주기 때문에 무신론 광고를 환영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에는 그때 이미 120년 역사를 돌파한, 기독교 신학과 타학문 간의 지적인 공론장 전통이 존재하고 있었다. 바로 이 책이 소개하는 기포드 강연이다.
기포드 강연은 1888년부터 "자연과 이성을 통한 신 인식의 문제"를 관건으로 하는 자연신학의 연구를 촉진하기 위해 시작된 전통적인 신학 강연이다. 연사는 다양한 분야의 최정상급 석학들로, 칼 바르트나 몰트만 같은 신학자, 한나 아렌트 등의 철학자, 닐스 보어 같은 자연과학자는 물론 리처드 도킨스를 비롯한 무신론적 입장의 학자까지, 다양한 전공과 신념을 가진 인물을 포괄한다. 이 책은 한국에도 기포드 강연이 보여주는 것과 같은 신학과 과학의 대화 모델이 구축되기를 바라며 뜻을 모은 학자들의 첫 번째 연구 결과물이다.
앞으로도 이어질 학제 간 연구의 토대로서, 1980년대 이후의 기포드 강연 중 대표적인 것을 분야별로 선별하여 그 핵심 내용과 기조를 파악한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영국의 유서 깊은 대학교 강연장으로 들어가, 그동안 쉽게 접할 수 없던 흥미로운 강연들을 열두 저자의 해설과 함께 만나게 된다.
책은 강연 분야에 따라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우선 자연과학 분야의 8개 강연을 소개한 1부의 몇몇 강연을 살펴보자. 맨 처음 소개된 것은 『코스모스』의 저자로 유명한 행성과학자 칼 세이건의 강연이다. 세이건은 기포드 강연에서 신 존재 가설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류의 미래를 위해 종교인의 역할이 필요함을 역설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세이건의 신관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그 비판이 자연에 대한 기독교의 보다 깊은 이해를 촉구한다는 긍정적인 해석도 한다.
마이클 아빕과 매리 헤세는 종교와 과학의 인식 활동을 인지신경과학적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두 연사가 제시한 "스키마 이론"이 종교와 과학의 인식 태도 사이에 대화와 상호작용을 활성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평가한다. 한편 션 캐럴은 초자연적·영적 영역을 인정하지 않는 이론물리학자다. 그러나 강연에서 그는 모든 것을 물리적 차원으로 환원하는 엄격한 자연주의 또한 거부한다고 하며, "시적 자연주의"라는 제3의 길을 모색한다.
2부에서는 과학신학 및 과학철학 분야와 관련된 8개의 강연을 소개한다. 이론물리학자이자 신학자인 존 폴킹혼은 인간과 세계에 대한 과학의 이해와 부합하는 경험적이고 귀납적인 신학의 재구성을 제안한다. 그는 구체적으로 자연신학의 관점에서 20세기의 과학적 통찰들과 대화하면서 니케아 신조의 주제들을 성찰한다.
물리학자이면서 신학자인 이안 바버의 강연은 과학과 종교 사이의 관계를 네 유형으로 정리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과학 시대에 종교의 자리가 어디인지를 탐구하고, 역사적 전통과 현대 과학에 모두 응답할 수 있는 신학을 제시하고자 한다. 또한 분자생물학자인 데니스 알렉산더는, 인간의 행위가 뉴런이나 뇌의 작용에 의해 결정되어 있다는 결정론을 비판하면서 인간 행위의 자율성을 역설한다.
3부는 철학과 관련된 8개 강연을 소개한다. 저명한 분석철학자로 개혁신학 전통에 철저했던 앨빈 플랜팅가는 기포드 강연에서 과학과 유일신 종교가 겉보기에는 갈등 관계지만 심층적으로 보면 조화 관계라고 주장한다. 반대로 오히려 과학과 자연주의는 겉으로는 조화되는 것처럼 보여도 심층적으로 보면 갈등 관계임을 역설한다.
양자물리학자 러셀 스태나드는 강연에서, 창조를 통해 자연 안에 각인되어 있을 신의 모습을 발견하고자 한다. 지리학자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장로교의 다양한 교파가 각 지역의 철학적 기반에 따라 다윈주의를 수용했던 다양한 양상을 탐구한다.
4부는 신학과 관련된 7개 강연을 소개한다. 신학자이자 철학자인 존 맥쿼리의 강연은 기독교 신앙을 위한 철학적 틀과 지성적 변증 근거로서 변증법적 신론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신의 초월성과 내재성, 영원성과 시간성 등, 신의 존재 및 활동과 관련된 모든 변증법적 대립을 종합하는 개념이다.
20세기 후반의 세계적 신학자로 꼽히는 위르겐 몰트만은 강연에서 "인류를 위한 창조론"을 펼친다. 그의 역작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은 이 강연을 기초로 한 책이다. 성공회에 소속된 미국 신학자 캐트린 태너는 인간을 끊임없이 과제와 역할로 환원하는 현시대의 금융 자본주의를 비판하고, 그 올무에서 빠져나갈 기독교 정신의 대안을 제시한다. 이 밖에도 뛰어난 석학들의 강연을 이 책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현대의 공론장에는 인간을 "생각하는 별 먼지"라 부르고 우주를 광대하고도 허무한 공간으로 느끼며, 과학과 사상을 통해 그런 허무함을 직면하고 살아가는 것만이 합리적인 태도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다. 모든 것을 물질로 환원하는 극단적인 관점이 대중서를 타고 유행처럼 번지기도 한다.
이를 두려워하는 것도, 무시하는 것도, 일방적으로 기독교적 입장을 강요하는 것도 올바른 반응은 아닐 것이다. 이제 다시 신학이 대화 상대로서의 태도를 갖추고, 인간을 신의 형상으로, 우주를 창조성 가득한 공간으로 보는 관점을 들고 공론장에 입장할 때다. 이 책은 그러한 열망을 가진 모든 독자에게 지적인 자극과 희망을 선사할 것이다.
김기석 성공회대 총장은 "사랑, 희생, 희망, 겸손, 비움 등 종교의 진리는 영원하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은 새로운 사실을 탐구하면서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간다. 그러므로 신학은 과학과의 대화를 통해 시대와 호흡할 수 있고, 보다 설득력을 가질 수 있다. 기포드 강연은 국내에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신학과 철학, 과학과 종교 분야의 최고 석학을 초대하여 스코틀랜드 유수의 대학들에서 130년 넘게 진행해온 연속 강좌다. 이 책은 한국 독자들을 이 놀라운 지성의 향연으로 초대해줄 것이다"라고 추천사를 남겼다.
서울신대 박영식 교수도 "그 유명한 기포드 강연이 드디어 한국에 왔다. 기포드 강연이 우리말로 이뤄진 것으로 착각할 정도로, 이 책에는 다양한 강연 주제가 형식적인 면에서나 내용적인 면에서 매우 깔끔하게 잘 정돈되어 있다. 낯익은 이들과 더불어 미처 알지 못했던 우리 시대의 저명한 과학자, 신학자, 철학자들이 신과 인간, 자연, 종교, 우주에 관하여 솔직하고 명쾌하게 쏟아낸 다양하고 다채로운 학문적 견해를 한 권의 책으로 만날 수 있다니,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또한 심화 연구를 위해 관련 서적과 글도 제시하고 있어, 이 분야의 입문자나 연구자 모두에게 도움을 준다. 지금까지 다양한 학문과 교우하며 자신의 진리를 설득력 있게 전하고자 했던 기독교 신학은, 오늘날 과학계의 도전에 적극적으로 응답할 책임이 있다. 따라서 지적 책임성을 가지고 신앙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에게 이 책이 필독서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