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내가 입었던 옷을 갖고 집을 나섰고, 다시는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이 나의 개종에 대해 알게 된다면 내게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있었다.”
최근 영국 크리스천투데이는 소말리아와 에리트레아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소국인 지부티 국적의 로다(가명)에 대해 소개했다. 로다는 이슬람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개종은 강력한 이슬람 국가에서 심각한 결과를 초래한다.
로다에게 (개종은) 불확실한 삶을 준비하기 위해 부유한 생활 방식을 뒤로 하는 것을 의미했다고 한다. 로다는 하인들을 거느리는 좋은 집에서 태어났다. 그러나 그녀의 가족은 엄격한 규칙을 가진 매우 엄격한 이슬람교도였다.
로다는 기독교 박해 감시단체 오픈도어에 “우리 가족은 항상 보수적인 이슬람교도였다”라며 “의식을 행하지 않는 기독교인이나 온건한 이슬람교도는 우리 가정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이슬람 성가 외에는 음악도 허용되지 않았다. 우리 가족은 급진적인 이슬람교도라고 말할 수 있다”라고 했다.
기독교인은 지부티의 1백만 인구 중 약 1%를 차지한다. 그곳의 모든 법률과 정책은 이슬람 법 체계인 샤리아에 의해 형성된다. 무슬림 배경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경험하는 박해의 수준은 엄청나며, 지역 사회와 가족 모두에게 박해를 받는다.
어떤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하거나 소문이 나면 그 사람은 상속권을 모두 잃게 된다. 지역 당국은 기독교인이 공격을 받더라도 보호하지 않는다.
로다는 친구로부터 기독교를 소개받았다. 로다는 기독교인 모임에 초대받고 그 곳에 참석했을 때 복음을 소개하려는 그들에게 “내 친구 때문에 이곳에 왔다. 나는 여러분의 동화를 듣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로다는 마음이 변하는 것을 느꼈고 결국 기독교로 개종했다. 그녀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녀는 즉시 그리고 영구적으로 가족을 떠나야 했다. 도망친 그녀는 기독교를 소개해준 친구 테스파예(가명)와 결혼했다.
그녀와 달리 남편의 가족은 매우 가난했다. 부부는 마을을 떠나 난민촌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다.
로다는 “우리는 9개월 동안 캠프에 머물렀다”라며 “그곳의 생활환경은 열악했다. 하지만 캠프 생활의 좋은 점은 영적인 삶이 더 강해졌다는 것이다. 그 캠프에서 저는 강한 신념을 가진 기독교인이 되었다”라고 했다.
로다는 캠프에서 임신했다. 적절한 수입이 필요했던 그들은 더 나은 삶을 찾아 에티오피아로 이주하기로 결정했다. 로다의 가족은 이 곳을 찾았다.
로다는 오픈도어즈와의 인터뷰에서 “어느 날 어머니가 우리에게 와서 나를 죽이겠다고 위협했다”라며 “그녀는 계속 소리쳤다. ‘그녀를 죽이고 싶다. 우리 가족 역사는 기독교와 아무 관련이 없었다. 그녀는 어떻게 ’카피르‘(예언자 무함마드의 명령을 거부하는 사람)가 되었는가? 그녀를 죽이는 것이 지하드”라고 말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로다의 남편에게 이혼하면 얼마든지 돈을 주겠다고 말했지만 남편은 이혼하지 않겠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로다의 가족은 그녀를 죽이지 않았지만 다시 그녀를 완전히 버렸다. 로다와 남편은 생계를 꾸리고, 아이들을 먹이고, 학비와 집세를 내기가 어려웠다.
오픈도어는 로다와 남편에게 실질적인 비즈니스 교육을 제공하고 신선한 과일 주스를 만들고 판매하는 사업을 시작하도록 도왔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술을 사용해 로다는 또 다른 수입원인 양계 사업을 배웠고 양계장을 시작했다. 곧 그들의 운명은 크게 바뀌었다.
그녀의 가족은 계속해서 그녀를 방해하지만 로다는 그녀가 떠난 그날처럼 단호하게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맹세한다.
로다는 “때때로 우리 가족은 저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한다. ‘너는 하찮은 삶을 살고 있다. 너는 우리와 함께 아름다운 집에서 살았다. 주변에 하인을 두고 명령했다. 왜 가난한 기독교인의 삶을 선택하는가?’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은 없어지고 사라져 버릴 것이지만 주님과 함께 사는 것은 영원하다’라고 말씀하시기 때문에 행복하다”라고 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