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신구약에 많이 등장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마음으로 깨닫지 못하는 백성이여”(시35;5, 42;20, 43;8, 시69;23, 115;5, 135;16, 전2;14, 렘5-21, 겔12;2, 미13;17, 막8;18, 눅10;24, 롬11;8-10)
저는 이 말씀을 음악용어인 어화(語畫, word painting)에 빗대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개개의 말을 개개의 음으로 묘사해 내는 것을 ‘말의 그림’이란 뜻으로 어화라고 합니다. 음표에는 이해할 만큼 상징이 들어 있습니다. 일반적인 어감, 음악적 스타일, 표현법으로 재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독일어로 톤말레라이(Tonmalerei)란 것도 있습니다. 이를 ‘음의 그림’ ‘음의 색채’란 뜻으로 음화(音畫)라고도 하는데, 표제음악의 일종으로 근대음악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관현악 작품에 많이 나타납니다.
찬송 시에는 은유나 상징이 많이 숨어있습니다. 행간(行間)을 읽어 그 속의 뜻을 알 수 있듯이 찬송의 멜로디나 화성에서도 숨은 비밀을 찾는다면 더욱 아름답고 신비로움을 맛볼 수 있습니다.
영시나 독일어 시로 된 서양의 찬송가를 노래하다 보면 ‘하나님’이라던가 ‘하늘’이라던가 ‘천국’ 같은 단어는 음이 높고, ‘땅’이나 ‘시냇물’ ‘지옥’ 같은 단어는 음이 낮습니다. 수준 높은 음악일수록 비밀이 더욱 많이 숨어있습니다만 일반인들이 즐겨 부르는 회중찬송에도 많이 있습니다.
독일의 니콜라이(Philipp Nicolai) 목사가 지은 코랄 ‘깨어라 먼동이 튼다’(개77장)는 음화의 쉬운 예로써 자주 쓰입니다. 처음 “깨어라”의 ‘도미솔’ 음형은 잠에서 깨어나 일어나는 모티브입니다.
슬기로운 열 처녀 비유(마 25:1-13)에 바탕을 둔 이 코랄에서 처음의 ‘깨’(도)는 가장 아래 음으로 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다 지쳐 누워있는 모습이고, 3도 높은 ‘어’(미)는 나팔소리를 듣고 깨어 일어나 앉으며, 5도인 ‘라’(솔)에선 신랑을 맞이하러 나서려고 일어서는 모습입니다.
예컨대 다익스(J.B.Dykes)의 찬송 ‘거룩, 거룩, 거룩’(8장)은 ‘도도미미솔솔’하며 한 발짝 한 발짝씩 주님 앞으로 계단을 오르는 것 같습니다. 주님은 어디 계실까요? 6째 마디 “우리 주를”의 ‘주’(도)입니다. 가장 높은 곳에 주님이 계시니까요.
헨델의 메시아 중에서의 편곡으로 알려진 메이슨(L.Mason)의 성탄 찬송 ‘기쁘다 구주 오셨네’를 볼까요. “기쁘다 구주 오셨네”(도시라솔파미레도)의 음형은 “기쁘다”의 가장 높은 음인 ‘기’(도)에서부터 2도씩 순차 진행하며 “오셨네”까지 옥타브를 하행(下行)합니다. 성자이신 예수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도시라솔파미레도’ 우리에게 내려오시는 것이 보이지 않습니까?
다월(J.Darwall)의 찬송 ‘만유의 주 앞에’(22장)를 부를 때면 주님의 성전을 향해 껑충껑충 올라가는 느낌입니다. I도 화성(도미솔)의 펼친 화음으로 도약진행(跳躍進行)하면서 수직으로 상승합니다. “네 맘 열어”(솔라시도)의 상행하는 순차진행(順次進行)에선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모양이고, “한소리로 기뻐 주를 찬양하라”(도레미파솔라시도)의 낮은 음 ‘한’(도)에서부터 옥타브를 순차상행하여 “찬양하라”(레도시도)에 도달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보좌 앞에 이르러 서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번역에 문제가 있습니다. 우리 말 가사와 음악이 너무 안 맞습니다. 그중에서도 처음 “만유의”의 ‘유’라든지 “주 앞에”의 ‘페’로 발음되는 높은음의 ‘에’가 몹시 걸립니다. 원어인 영어 찬송 시는 “Rejoice, the Lord is King”으로 음악과 잘 맞아떨어집니다. 이 부분에서 제일 높은 음은 우리말 가사엔 의미없이 ‘페’로 발음되는 ‘에’인데, 원래 영어 가사는 ‘King’입니다. 주님은 왕이시니 음도 높은 자리를 차지해야겠지요.
베나드(George Bennard, 1873-1958) 목사의 찬송 ‘갈보리 산 위에’(150장)를 부를 적마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을 순례하는 것 같습니다. 악보의 오르고 내리는 경치를 보면 마치 빌라도 법정에서 십자가를 메고 갈보리 산으로 올라가시는 골목길 같은 느낌입니다. 처음의 “갈보리 산 위에”(미파솔파라솔)는 “십자가 섰으니”(솔솔라솔시라)에서 2도 모방으로 상승하고, 계속하여 “주가 고난을”(라라시라솔)로 2도씩 상승하여 올라가고 있으니까요. 2도씩 모방되는 모티브가 골목길을 돌아 힘겹게 올라가는 느낌이 듭니다.
“주가 보혈을 흘림이라”의 ‘흘림이라’(파미레도)도 피를 흘리듯이 하행하는 멜로디입니다.
후렴에서도 “최후승리를 얻기까지”는 마치 십자가 형장에서 십자가로 따라 올라가는 것 같지 않습니까? 드디어 “빛난 면류관 받기까지”와 “험한 십자가”(파파미레도)에 이르러선 마치 주님과 함께 시상대에 오른 듯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그리고 보면 스웨덴 민요를 편곡한 에드그렌(E.A.Edgren)의 찬송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79장)는 우리말 번역이 영문보다 더 은혜롭습니다. 후렴에서 “주님의 높고 위대하심을”에서 ‘높’(미)자의 음도 가장 높습니다. 원문은 “Then sing my soul” 의 ‘soul’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높이는 것이 실감납니다. “내 영혼이 찬양하네”에서 ‘찬양’(미파)의 음도 점점 높이는 음형입니다. 원문에선 “how great Thou art!”의 ‘great’ 이지요. 특별히 마지막 “찬양”(미파)의 대목에선 하나님을 가장 높이도록 최고음 ‘양’(파)에다가 길게 내뿜을 수 있도록 늘임표를 붙여 놓았지요? 어화를 느낄 수 있는 감격에 찬 찬송입니다.
시각적인 이미지란 관점에서 몇 편만을 예로 살펴보았습니다. 마음의 눈으로 보면 찬송가에서도 숨어있는 비밀을 굉장히 많이 캐낼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알 수 없는 보물을 찾은 자만의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에게나 한 개씩의 악기를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심금(心琴)이라는 이름의 악기입니다.
*** 이 글은 필자가 진행하는 유튜브 ‘김명엽의 찬송교실’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