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교육에서 '종교교육'은 없습니다.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에서도 '기독교 교육'은 제한받습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만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최근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가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이라는 책에서 현실적이고 실천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기독교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코메니우스가 17세기 사람임을 생각할 때 그가 제시한 전 생애 교육은 매우 선구적이었다. 17세기가 아직 문맹률이 획기적으로 낮아지기 전이라는 점, 그리고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인간 수명이 획기적으로 길어지기 전이었다는 점을 생각하면 그의 선구안이 놀랍다. 코메니우스의 전 생애 교육은 요즘 말로 평생교육에 해당될 것이다.
코메니우스의 평생교육은 그리스도교의 세계관에 입각해있다. 정일웅 교수에 따르면 코메니우스의 태아기 학교의 교육 실천에서는 인간의 '3가지 거주지'를 전제한다. 곧 태아 시절의 거주지 모태, 그리고 이 세상의 현세, 그리고 죽음 이후의 천국이다. 각 단계는 다음 단계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모태에서의 삶은 현생에서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현생에서의 삶은 죽고 난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기간으로 이해된다. 그리스도교의 인간 생애 이해와 같다.
이 가운데 현생에서의 삶을 더 구체적으로 보면 코메니우스는 3가지 조건이 기본적으로 필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첫째는 잘 태어나는 것이고, 둘째는 잘 살아야 하는 것이고, 셋째는 잘 죽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인간 개인이 혼자 독단적으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예컨대 '잘 출생한다'는 것은 육체와 감각과 정신의 손상 없이 건강하게 태어나는 것뿐만이 아니라 정상적인 부부관계가 바탕이 되어 있는 부부의 가정에서 태어난다는 것인데, 여기서 부부는 경건한 부모,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이다. '잘 산다'는 것도 타인과의 관계성 속에서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성 속에서 잘 산다는 평이 가능하다. 잘 죽는 다는 것도 역시타인과 세계와 신과의 관계성 속에서 기대 가능한 이야기다.
이 지점에서 종교교육이 단순히 공교육 기간에 해당되는 유청소년 기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는 부분이 다시금 주목을 받는다. 사실상 전인 교육이라는 것이 특정 기간에 완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육체가 자라는 시기는 정해져 있지만 인간의 정신은 죽는 날까지 순간순간 새롭게 배우면서 성장 가능하다. 종교교육의 영역에 있어서 이 부분은 더욱 두드러진다. 종교교육이 단순한 교리 교육이 아니라 인간과 하나님의 관계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은 마치 구원이 '칭함' 이후에 '성화'의 과정을 평생에 걸쳐 가는 것과 같이 평생에 걸쳐 진행되는 일이다.
이 부분에 있어 정일웅은 교회의 역할에 주목한다: "생각하면 교회야말로 하나님에게서 부름 받은 천국백성으로서 전 세대의 집합체이며, 코메니우스가 말한 전인교육과 평생교육의 장이 분명하다." 그러나 물론 상기하였듯 모든 이들의 교육이 평생 동안 이뤄져야 하므로, 교회 교역자의 교육 역시 몇 년의 신학교육과정과 목사양성 과정에서 완료될 수 없다. 교회 교역자 역시도 일평생 교육을 받을 당사자이고, 이러한 이들이 모인 교회의 프로그램 역시 한 번 만에 완전하게 만들어질 수 없고 끊임없는 연구와 업데이트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다.
다만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이 같은 인식을 가진 방향성을 가진다는 것이다. 공교육 내에서의 종교교육, 기독교 사립학교 내에서의 종교교육, 기독교 대안학교에서의 종교교육과 더불어, 교회 내에서 각 연령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도 무게 있게 다루어야 할 이유이다.
참고한 책
-정일웅,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범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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