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대한민국의 공교육에서 '종교교육'은 없습니다. 기독교재단이 운영하는 중고등학교에서도 '기독교 교육'은 제한받습니다. '공'교육과 '사'교육은 전혀 다른 영역이기만 할까요? 이 문제에 대하여 최근 정일웅 박사(전 총신대 총장)가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이라는 책에서 현실적이고 실천적으로 다루고 있습니다. 본지는 이 책이 전하는 내용을 기반으로 기독교교육의 방향성에 대한 논의를 함께 해보고자 합니다.
재일한국인으로서 처음으로 도쿄대학 정교수를 지낸 강상중 박사는, 맑스 베버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자본주의의 앞날의 인간에 대하여 "정신없는 전문인, 가슴 없는 향락인"이라 한 것을 언급하면서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하였다. 여기서 등장하는 '정신없는 전문인'은 오늘 주제와 같은 맥락에 있다.
정일웅 박사는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에서 오늘날 공교육이 '지식' 교육에만 치우쳐져 있어 '지혜'를 가르칠 수 없는 구조임을 지적한다. 그는 이 문제를 다루면서 코메니우스 교육론의 핵심 용어 '모든 지혜'(범지혜, Pansophia) 개념을 들고 나온다. 지식은 인간이 측정 가능하고 소유할 수 있는 것이라면, 지혜는 말하자면 옳고 그름을 분별할 수 있는 시각이다. 정일웅 박사는 범지혜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단순한 사물에 관하여 아는 지식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바르게 생각하고, 행동하며, 말할 수 있는 사물분별의 능력 기르기에 있으며...." 그러므로 지혜를 배운다는 것은 지식습득과 구별된다.
현재 공교육기관의 교육방향은 지식교육 중심이다. 정일웅 박사는 지혜 교육이 결여된 지식위주 교육의 현실을 지적하면서 새로운 세대가 오직 자연과 정신의 영역만 배운다고 하였다. 한스큉이 중세인의 자연과 성서의 책이 근대인에게서는 세계와 자아의 책으로 대체되었다고 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용어 사용의 차이는 있지만 정일웅 박사가 말한 자연과 이성은 각각 한스큉이 말한 세계와 자아에 해당될 수 있다. 지식 위주의 교육은 존재의 근거와 목적을 고려하지 않는다. "존재의 효용가치만을 습득하여 그것만을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는 기술만을 배우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교육의 결과를 정일웅 박사는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인간은 자아 중심적인 인간형성을 피할 수가 없게 된다. 존재하는 사물의 출처[근거]와 목적에 대해서는 다만 다윈의 진화론적인 사고에 의존하여 자연적이거나, 우연적인 존재로 이해할 뿐인 것이다."
때문에 지식교육만으로는 전인적 교육을 기대하기 어렵다. 물론 인간에게는 '양심'이 있어 공중도덕과 사회법을 배우면서 도덕성과 윤리성이 일깨워질 수 있다. 그러나 존재의 근저를 생각하지 않고 단지 세계와 자아만 생각하는 차원에서의 도덕성과 윤리성이라면 상대적인 차원에서만 머무를 수 있을 뿐이다. 정일웅 박사는 인간의 도덕성과 윤리성에서 종교성을 거세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다. 그는 슈밑드(G.Schmidt)의 말을 빌려 "인간을 교육한다는 것 자체가 종교교육"이라고 강조하면서, 도덕성과 윤리성도 종교와 함께 있을 때만 온전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다고 밝힌다.
서두에서 언급하였던 '정신없는 전문인' 용어로 다시 돌아가보면, 지식교육만으로 '전문인'은 얼마든지 양산해낼 수 있다. '가슴 없는 향락인'들도 마찬가지 맥락으로 존재를 생각하지 않고 자기중심주의에만 빠진 예술가들로 읽을 수 있다. 그런데 베버는 이 정신없는 전문인과 가슴 없는 향락인이 '무'(無, nichts)라고 선언하면서 "무인 존재는 일찍이 인간성이 도달해 본 적이 없는 단계에까지 이미 올랐다고 우쭐해할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강상중은 이에 대하여 "정말 신랄하고 비아냥거림으로 가득찬 경구"가 아닐 수 없다고 평한다. 지혜 없이 지식만 가진 전문인들이 어떤 한계를 가지고 있고, 그 전문지식으로 어떻게 자기 자신과 타인과 세계를 해하는지 우리는 구체적 예를 들지 않아도 익숙하게 알고 있다.
구약성경 잠언서는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라 가르친다. 단순히 유대교의 유일신을 믿으라는 단편적인 메시지로 읽을 것이 아니다. 인간 자신의 유한성을 생각하는 것과 존재의 근저와 목적을 생각하는 것은 동시에 이뤄지는 일이다. 종교교육이 배제된 공교육에서 기대할 수 있는 인간성 교육은 이같은 명백한 한계를 가진다. 그리스도교인인 교육자들은 이 부분을 책임감을 가지고 숙고해야 한다. (계속)
참고한 책
-강상중, 『살아야 하는 이유』 (사계절)
-구약성경, 「잠언서」
-정일웅, 『교육신학자 코메니우스와 형제연합교회의 신앙』 (범지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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