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권위 있는 드럼 스틱 회사인 ‘리갈팁’의 아티스트는 전 세계적으로 일만여 명의 회원이 있고 그 중 웹사이트에 등록된 월드 아티스트만 해도 천여 명 정도가 있다.
이 중에서 아시아인 최초로 ‘피쳐드 50인’에 등재된 드러머 리노 씨(박병기, 오륜교회 출석)가 이천시 관광홍보대사, 순천시 관광홍보대사, 제주올레 홍보대사, 드리미재단홍보대사, 십대의벗홍보대사, 31독립운동 유네스코등재 홍보대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주요역할을 감당하고 있어 직접 만나 그의 근황에 대해 들어봤다.
리노 씨는 그동안 눈이 보이지 않고 다리를 쓸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며 극복해냈고 꾸준하게 드러머와 앨범 프로듀서로 활동해오고 있는 크리스천 프로연주인이다.
그는 2000년대 초반부터 유명 대중가수들과 연주 활동을 하면서 CCM찬양팀인 위트니스선교단을 비롯하여 옹기장이 선교단과 주찬양싱어즈에서 오랜 시간 함께하며 밴드 활동을 했고 한스밴드 프로듀서였으며 마커스, 김브라이언, 강찬 목사 등 많은 CCM 아티스트들의 앨범 제작에 참여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어린 시절 실명을 했다가 기도하는 가운데 기적적으로 낫기도 했고 너무나 많은 연주활동으로 인해 발목의 인대가 파손되고 뼈가 부서져 더 이상 연주를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기도 했다. 때로는 공황장애로 정신병원에 다니기도 했고 기억상실증에도 시달렸던 그는 더 이상 버틸 힘을 잃고 쓰러져 극단적인 선택의 기로에서 기도할 때 뒤에서 누군가 안아주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리노야 내가 너를 너무 사랑해. 넌 정말 귀한 사람이야. 네가 아무것도 하지 못해도 너는 가장 존귀한 존재란다’는 음성을 들으며 회복되어 갔다고 한다.
하나님의 은혜로 죽음의 골짜기에서 회복된 그는 코로나 발생 전까지만 해도 미국, 캐나다, 대만, 중국, 호주 등 연간 17개 국가 연주 투어에 초대되어 전세계를 다니며 연주 했었다.
기자는 리노 씨를 만나 최근 근황과 앨범 소개 및 신앙에 대해 들어보려 했다. 그러나 그는 조금 다른 주제를 나누길 원했다. 크리스천 뮤지션들의 비즈니스 애즈 미션(BAM, Business as Mission)에 관한 이야기였다.
먼저 리노 씨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한 사람으로서 내 정체성과 역할이 무엇인지 묵상해보고 혹시 사역자라는 단어가 뮤지션의 본질을 무너뜨리거나 음악인에 대한 성장을 멈추고 있지는 않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다”고 했다.
“사역하는 후배들 중에서도 특히 뮤지션들이 적지않게 직업의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는 것 같다”고 하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리노 씨는 “나는 직업을 말하자면 드러머이다. 연주의 실력과 영향력만큼의 정확한 페이가 측정되어 있는 연주자이며 사람들은 이를 프로 드러머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연주로 돈을 벌고 음악으로 생활하는 연주인이지만 예배의 자리에 간증이나 연주로 초대가 되면 페이를 계산하지 않는다”며 “기업 공연이나 일반 공연은 짧은 시간에 수천 만원의 페이와 특별대우를 받기도 하지만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곳은 자비량으로도 간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렇게 무보수로 교회 공연 사역을 하면 나는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간혹 방문했던 곳에서 후배들에게 리노도 공짜로 왔는데 페이가 어떻게 되느냐고 물으며 후배들에게 난처한 상황을 만들기도 했다.”
“프로연주인의 세계에는 정확한 룰이 있다. 녹음실에서 한 프로(3시간)에 레코딩 연주비로 받는 페이가 정해져 있고 그에 맞는 결과물을 남겨준다. 관계가 없는 곳에 무리하게 금액을 낮추게 되면 후배들은 더 낮은 페이를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에 후배들을 위한 자리를 배려하는 선배 뮤지션들의 의리가 존재한다”고 했다.
이어서 리노 씨는 “생각보다 많은 교회에서 무료를 당연하게 생각하며 후배 뮤지션들에게 사역이라는 말을 앞세우며 무리한 헌신과 봉사를 요구하고 있다”며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 소비자가격이라는 기준으로 페이를 지불하거나 금액이 표시되지 않을 때 주인에게 금액을 물어보고 흥정하거나 구매 의사를 손님이 직접 정한다는 것은 모두가 잘 아는 내용이다. 문화예술인의 활동에 평균적인 금액을 정할 수는 없겠지만 공짜라고 생각하는 것은 바른 생각은 아닌 것 같다”고 했다.
그는 “페이를 넉넉히 줘야 한다는 뜻 보다는 기타 줄이나 스틱을 구입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성의부터 시작했으면 좋겠다. 미국은 팁 문화가 자연스러워 1달러씩이라도 지불하지만 한국에서는 천 원을 팁으로 준다고 생각할 때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하거나 주는 사람이 창피하다고 느껴 아예 팁을 안주는 것 같은 느낌과 비슷한 경우가 있는 것 같다. 좋은 뮤지션이라면 교회에서 작은 성의를 보일수록 감동을 받아 더 많은 것을 내어줄 것이고 부흥을 위해 교역자 이상의 헌신을 아끼지 않을 것이다”고 말했다.
리노씨는 후배 크리스천 뮤지션 들에게도 전할 말이 있다고 했다.
“대중가요 뮤지션들은 더 좋은 결과물을 위해 수 많은 시간과 비용을 아끼지 않고 앨범을 제작하지만 몇몇 크리스천 뮤지션들은 최대한 적은 금액으로 결과물을 만들려고 하거나 본인의 실력향상에 대한 노력과 투자를 중요하지 않게 생각하는 찬양사역자들을 적지 않게 만났다.”
“나도 어릴 적에는 영성과 실력 중에 영성이 우선이고 실력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을 교만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어른이 되어갈수록 깊은 영성을 바탕으로 한 실력의 밸런스는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예배를 넘어 함께 예배하는 성도님들을 위한 배려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멈추지 않고 노력하고 더 좋은 예배를 위해 많은 시간과 투자를 아끼지 않게 되었더니 어느새 세상에서도 인정받는 뮤지션이 되어있었다”고 했다.
크리스천 뮤지션들은 실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는 질문에 리노 씨는 “현재 대표적인 음악 관련 방송 프로그램들만 보더라도 프로 연주자분들 중에서 크리스천이 상당수이며 세계적인 연주자도 대부분 크리스천이다. 다만 그렇게 느끼는 것은 프로 연주자들이 교회 찬양팀에 참여하지 않아서 일 수도 있다”며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환경적인 부분도 있고 대부분의 공연이 주말에 있기 때문에 주 수입을 포기하고 연습이나 예배에 참여하기 어려운 상황도 있을 수 있다”고 했다.
“앞서 말했듯이 교회가 연주자에게 예배에 함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면 실력도 좋고 성품도 좋은 실용음악 전공생들이 많아질 것 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어 “예배에 관한 주제를 나누면서 금전적인 부분을 나누게 되어 죄송하지만 뮤지션은 안정적인 직업이 아닌 프리랜서이기 때문에 가장이 되는 순간 예배나 음악 중 하나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을 겪게 되고 결국 좋은 뮤지션이 찬양팀을 떠나게 되는 가슴 아픈 상황을 수없이 목격했다”며 “이제는 비즈니스 현장에서 복음을 전하는 비즈니스 애즈 미션을 넘어 뮤직 애즈 미션 (MAM, Music as Mission)이 되길 바라며 미션의 현장에서 비즈니스를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리노 씨는 프로 연주자를 꿈꾸는 크리스천 뮤지션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며 뮤지션들의 가치를 분류하여 생각해 볼 필요성이 있다고 했다.
“연주는 못하는데 강의를 잘 하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교육 쪽으로 방향을 잡고, 연주는 잘 하는데 강의를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플레이어나 작편곡 쪽으로 방향을 잡는 것도 좋다”고 했다.
“미국은 이런 것이 잘 나뉘어 있다. 교수인데 연주를 못 해도 티칭 능력이 탁월하다면 비판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마치 축구감독 히딩크처럼 그가 세계적인 선수는 아니더라도 세계적인 선수를 길러낼 수 있는 것과 같다”며 “음악에 관한 모든 것이 예술이기 때문에 연주자나 보컬 이외에 작편곡가도, 프로듀서도 뮤지션이라고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미국 드럼악기회사에 월드아티스트로 등재가 되었는데 아티스트를 선별할 때 중요한 심사 기준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판매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까다로운 심사를 한다고 한다.
“로컬 아티스트, 월드 아티스트, 피쳐드 아티스트로 나뉜다. 피쳐드 아티스트라면 아티스트들 중에서 대표할 수 있는 아티스트다. 미국 회사에서 내가 피쳐드 아티스트가 되었다. 내가 어떻게 그들과 교류할 수 있었는지 또 명단에 등재가 됐는지 후배들이 알면 더 큰 꿈을 꾸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에 대해 소개하기 시작했다.
“저는 이천 증포리 요꼴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자랐습니다. 음악을 접할 수 없는 동네였어요. 공연을 볼 수 있는 곳도 없었고요.
9살 무렵에 저희 교회에 누군가 드럼을 선물해주었고 저에게 드럼은 장난감과 같았습니다. 저는 그것을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데 사용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접하다가 19살에 서울에 올라와 프로를 준비하는 동갑내기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저와 너무 다른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저는 즐겁게 연주하는 것이 목적이었는데 그들은 성공해야겠다는 야심이 가득했습니다. 저와 성공의 기준이 다른 것 같았습니다. 저는 대중들의 만족감과 저에 대한 높은 평가를 성공이라 생각했고 그들은 유명한 밴드에 들어가는 것이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을 성공의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저는 나만의 생각을 자유롭게 연주로 표현하는 저만의 아이덴터티가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동료들은 타 국가의 대표 장르들을 최대한 똑같이 카피하는 입시형식의 뮤지션으로 완성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경쟁상대가 제 자신이었으나 동료들은 주위의 동료가 자신의 경쟁상대였습니다. 물론 당연히 기초는 튼튼해야 한다는 것을 기반으로 한 생각의 차이가 어린 나이에 프로로 데뷔해서 많은 선배님들을 만날 수 있었던 저에게 더 많은 표현력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국악의 장덕수 선배님도 만나고 대금 부는 사람, 농악 하는 사람, 해외 뮤지션들도 만나서 즐겁게 저만의 연주표현을 늘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들었던 생각이 한국의 인간문화재에 관한 것이었어요. 인간문화재는 한국사람도 되기 어려운데 외국인들은 더 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드럼이라는 악기는 본토 사람보다 잘하기는 어렵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됐고, 다른 나라 음악은 나를 발전시키기 위한 정도로만 받아들이고 저만의 연주를 잘 발전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제 자신의 플레이를 존중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기초를 튼튼하게 한 후죠. 그런 후에 음악의 틀과 규칙 안에서 제 것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연습하다가 어느 날 해외의 선교를 위한 모임에서 연주를 하는데 외국인들의 기립박수를 받게 되면서 제 음악이 존중받고 있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해외 프로연주자들이 저의 연주에 대해 관심을 갖고 연주 방법이나 표현 방법들을 물어보았을 때 저는 다른 사람이 가지고 있지 않은 저만의 특별한 음악성을 가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외국인들의 눈에는 제 연주가 동양인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표현력처럼 받아들여진 것 같았습니다. 제가 살았던 시골의 느낌과 그동안 눈이 안 보이는 등 수없이 겪었던 시련 등을 통해서 표현되는 것들이 저만의 아이덴터티가 되었고 가장 한국적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며 큰 무대를 넘어 외국에서도 당당히 활동하게 되는 용기를 가지게 됐습니다. 그런 용기로 나아갔을 때 어느새 저는 월드 아티스트로 나아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태어난 곳은 첩첩산중 시골 중에 시골이었고 선생님도 부족했고 무대도 없었습니다. 건강도안 좋았고 심지어는 부모님도 불화했습니다. 저는 왜 저한테 이런 불리한 환경을 주셨을까 원망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하나님이 저를 창조하시고 저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깨닫고 나서부터 이 모든 것들이 오히려 나만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선물이 되었습니다. 고난은 지나고보면 선물이 되더라고요. (하나님이 계획적으로 고난을 주신 것 같냐는 질문에) 물론 하나님이 일부러 저에게 시련을 주셨다고는 생각지 않아요.
세상에서는 이별을 아프게 겪은 사람이 이별 노래를 잘 씁니다. 어떤 사람은 곡을 쓰기 위해 일부러 헤어졌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웃음) 하나님이 주신 음악적인 스토리가 있습니다. 그것을 인정하고 음악에 녹여내었더니 많은 분들이 공감해주시는 것 같습니다. 모든 어려움을 극복해낼 수 있었던 것은 저를 향한 하나님 사랑도 컸지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더욱 중요하게 작용했던 것 같아요.
지금 우리 모두가 코로나라는 팬데믹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왜 하나님이 이런 시련을 주셨을까 원망하고 있기보다는 이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하고 성장할지에 대해 집중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에 대한 신뢰,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를 신뢰하는 자녀는 아버지의 말을 듣고 잘 견딜 수 있지만 아버지를 신뢰하지 못하는 자녀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떨며 같은 시간을 고통 가운데 지내게 될 것입니다. 누구나 겪는 고난이지만 하나님을 신뢰하는 만큼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리노 씨는 요즘 코로나 때문에 힘드시냐는 질문에 다시 한번 크리스천 음악인들의 BAM에 대해 강조하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코로나 때문에 사역이 줄어들어 힘들다는 표현은 하고 싶지 않습니다. 사역이 생계가 되면 힘이 들겠지만 저는 사역을 생계로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기에 힘든 점을 말하자면 직접 현장에서 들려드리고 싶은 복음을 온라인으로 전해야한다는 것이 불편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기회가 줄어든 것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혹시나 코로나로 인해 사역이 줄어들어 힘들어 하시는 후배 크리스천 뮤지션분들이 계시다면 이렇게 생각해 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세상의 일반 인디뮤지션들도 다 밤이나 새벽까지 알바하면서 음악을 하고 있습니다. 선배 찬양사역자분들도 마찬가지이고요. 음반 내기 위해 대출받기도 하고 월세도 못 내서 쫓겨나는 이들도 있습니다. 후배 크리스천 뮤지션들이 교회나 사역이 줄어듦으로 인하여 어려워졌다고 표현되다 보면 예배를 하기 위한 사역이 아닌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사역이었다고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역의 본질을 깊이 묵상하고 선한 비즈니스를 기획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언젠가 다양한 컨텐츠를 통하여 선한 크리스천 뮤지션들을 위해 어떻게 음악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다양한 사례들을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 돈을 벌려고 하는 미션 애즈 비즈니스가 아닌 세상에서 빛을 발하는 비즈니스 애즈 미션을 이룰 수 있도록 선한 영향력이 있는 뮤지션이 되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