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펜데믹 상황에서 부활절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2000년 전에 십자가에 죽으시고 말씀하신 대로 사흘 만에 부활하셨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에 기초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없었다면, 기독교는 없었고, 교회도 없었다. 그리고 기독교인은 물론 없었다.
흔히들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한다. 맞는 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없었다면, 그 말은 기독교가 종교로서 그렇다는 것뿐이다. 또 기독교는 <십자가의 종교>라고 한다. 이 또한 맞는 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이 없었다면, 그 뜻은 온전한 것이 되지 못한다.
크리스챤들 가운데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확신 있게 믿는 사람도 드물기도 하지만, 목사님들의 설교에서 예수의 부활을 말하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따라가는 신자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목회자들마저 예수의 부활 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뜨겁게 증거하기보다, 그냥 종교 윤리적으로 예수가 부활했으니, 그것은 불의에 대한 정의의 승리이고, 사망에 대한 생명의 승리라고 비유적으로만 말하고 있다. 물론 그것도 맞는 말이지만 그 정도로는 우리의 가슴이 감격과 확신으로 뛰지 않는다.
교회에서는 부활절 아침에 계란을 대량 구입해 삶아서 교인들에게 나누어 준다. 그것은 성경적이 아니고, 그냥 기독교의 전통일 뿐이다. 그래서 주일학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마치 계란에서 병아리가 나오는 것 같은 것을 부활이라고 가르친다. 참 엉터리이다. 어떤 이는 누에고치에서 나방이 나오는 것 같은 것이 부활이라고 설명한다. 그것도 참으로 웃기고 미련한 설명이다. 어떤 이는 봄에 만물이 소생하듯 하는 것이 부활이란다. 참 한심하다. 또 어떤 목사들은 악에 대한 선의 승리가 부활이라고 어물적 넘어간다. 사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사건은 오늘처럼 현대과학이 발전한 세상 사람들에게는 믿을 수가 없을 것이다. 어떻게 예수가 십자가에서 물과 피를 다 쏟고 죽은 지 3일만에 다시 살 수가 있는가? 하면서, 불가능할 뿐 아니라, 그것은 이성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특히 19세기는 과학주의, 계몽주의, 합리주의, 진화론의 발달로 사람들은 <증명되는 것은 믿고, 증명되지 않는 것은 믿을 수 없다>라는 것이 지배적이었다. 이런 사상에 편승해서 세계적인 신학자들이 성경의 이적과 초자연성을 부인하는 운동을 일으켰다. 어떤 이는 성경의 윤리적인 부분만을 받고, 성경의 계시나 영감을 모두 부인해 버렸다. 그러니 19세기의 교회는 온통 자유주의자들의 독무대가 되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인 루터(M. Luther)와 칼빈(John Calvin)을 통해서 겨우 성경중심의 개혁교회가 되었으나, 300년도 못 가서 유물론적, 진화론적 사상이 개신교 안에 범람해서 성경을 부인하고, 교회가 자유주의로 세속화되어 가고 아무런 힘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부터 꼭 100년 전에 스위스의 위대한 신학자 칼 빠르트(Karl Barth)가 나타나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과 신앙에 도전하고, 신학운동에 대안을 내놓는 줄 알았다. 그런데 칼 빠르트와 뜻을 같이 하는 학자들의 논리는 이랬다. 즉 그들은 자유주의자들처럼 성경을 부정할 것만이 아니고, 성경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가르치는 교훈이 무엇인지 알아서, 그대로 믿으면 된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성경에 나타난 말씀에 이적이나 초자연적 사건이라는 것을 굳이 따질 필요 없고, 그냥 성경의 배후에 있는 의미(meaning)가 무엇인지 알면 된다는 것이다.
이 논리로, 사람들은 성경을 부인하던 자유주의자들이 다시 정통으로 돌아가는 줄 착각을 했었다. 빠르트는 역사(History)와 설화(Geschite)를 구분하면서, 성경은 설화, 전설, 민담이 섞여 있다고 했다. 그는 정통신학자가 못되었다. 그런데 1980년대에 미국의 한스 프레이(Hans W. Frei, 1922~1988)라는 학자가 그것을 가지고 <설화 신학>을 만들었고, 이것이 발전되어 오늘날 이야기 설교(Narrative Preaching)가 유행했다. 그러니 난다 긴다 하는 학자들과 대 설교가들인 이른바 신복음주의자들도 그 논리를 그대로 받았다. 그러니 이들은 예수께서 육체적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성경에 기록된 내용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던지는 교훈을 캐내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결국 예수의 부활을 믿지 않았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주로 성육신 하셨고,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성경대로 죽으시고 성경대로 부활하셨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육체대로 부활하신 것은 역사이자 사건이었다. 그 당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은 많았고,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직접 목격한 사람도 500명이 넘었고, 12제자와 사도 바울에게 특별히 나타나 보이셨다.
예수의 부활사건을 기록으로 남긴 사람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베드로, 바울 등 6명의 정확한 기록이 있다. 이들은 기록자(Report)들이다. 이들은 예수 부활의 증거자들이다. 당시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을 은폐하기 위해서 정치권은 군병들에게 돈을 뿌려 물타기 공작을 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사건은 오히려 온 세상에 널리 퍼졌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구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고 무덤에서 부활하셨다. 우리는 성경의 영감된 기록을 믿는다. 오늘도 한 사건을 두고, 일간지, 주간지, 월간지 등 다양한 매체가 다양한 기자들이 쓰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적으로 부활하셨다. 왜냐하면 그는 참 하나님이시고, 참 인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그냥 그 의미만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건(Fact)이 더 중요하다. 이것이 기독교의 복음의 생명력이다.
이토록 정부가 코로나19를 빌미로 교회를 통제하므로 위축된 교회 지도자들과 성도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부활 사건이 우리의 가슴을 뛰게 하고, 어둠의 권세와 불의와 불법을 이기고 궁극적 승리를 할 줄 믿는다.
정성구 박사(전 총신대·대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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