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가장 먼저 오는 곳은 사람들이 가꾸는 꽃뜰이 아니라
멀리 떨어져 있는 들판이라는 사실이 놀랍습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것은 꽃이 아니라
이름 없는 잡초라는 사실이 더욱 놀랍습니다.
신영복 선생의 ‘봄이 오는 곳’이라는 시입니다. 그렇습니다. 봄은 사람들이 가꾸는 꽃뜰보다 먼 곳에 있는 들판에, 화려한 꽃보다 무명의 잡초에 먼저 온다는 사실이 우리 마음을 따뜻하게 합니다.
예수님의 오심도 그러합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빛나는 의인이 아니라 세상에서 멸시받는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별명은 죄인들의 친구였습니다. 당시에 죄인 취급을 받으며 사람대접받지 못했던 죄인들의 친구가 되어 주셨고, 주님을 만난 그들의 인생은 아름답게 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탐욕에 사로잡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공공의 적이었던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나고 재산의 절반을 나누어 줄 정도로 완전히 다른 인생이 되었습니다. 인생이 꽃피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등은 사람들의 시선을 빼앗는 꽃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갈릴리에서 이름 없는 잡초 같은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시자, 그들은 세상을 소란케 하는 존재로 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누구나 꽃피는 인생이 됩니다.
세상은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나야 꽃피는 인생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흙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들은 절망합니다. 그러나 복음은 흙수저를 가지고 태어난 사람도 꽃처럼 피어날 수 있다고 약속합니다. 개천에서도 용이 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주님은 세상 사람들처럼 조건적이지 않고, 차별 없는 사랑으로 오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 순간 세상이 아니라 주님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주님을 기다려야 합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라고 말합니다(시 40:1). 기자가 ‘기다린다’는 말을 반복해서 사용한 것은 그가 얼마나 여호와를 간절히 기다렸는지를 보여줍니다. 한두 시간 잠깐 기다린 것이 아니라, 몇 날 며칠 동안 간절한 기도를 드리며 주님을 기다린 것입니다. 주님을 기다리면 주님이 응답하셔서 꽃피는 인생이 되게 하십니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시40:2).”
인생의 겨울을 보내고 있는 청춘들이 있다면 자연을 통해 주시는 주님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겨울이 지나 어느덧 봄이 온 것처럼 우리 인생의 겨울은 반드시 지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봄의 화사함과 따뜻함은 겨울을 참고 견딘 사람만 누릴 수 있습니다. 시편 기자처럼 여호와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우리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실 것입니다. 마침내 우리의 발을 높은 반석 위에 세워 꽃피우는 청춘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우리의 젊음을 아름답고 존귀하게 꽃피우실 주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최철준 목사(나주글로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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