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는 지난 2019년 4월 11일, 형법 낙태죄 조항(제269조 1항, 제270조 1항)에 대해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이후 국회는 그해 12월 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해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결국 올해 1월 1일부터 형법 낙태죄 조항은 효력을 잃었고, 3개월여가 흐른 지금까지 그 상황엔 변함이 없다. 그러면서 “국회가 직무를 유기하고 있다”는 비판이 거세게 일고 있다. 이에 본지는 낙태를 반대하는 ‘프로라이프’(Pro-Life) 단체 64곳이 연합한 ‘행동하는 프로라이프’의 박상은 공동대표(안양샘병원 미션원장)를 만나 이런 상황에 대한 입장을 자세히 들어봤다. 아래는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낙태죄 효력 상실로 국민 혼란·태아 위험
국회, 헌재 결정대로 입법부 책임 다해야”
-국회의 낙태죄 개정 논의가 지지부진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낙태 전면 허용을 주장하는 쪽에서는 낙태죄 개정이 안 된 것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굳히기 작전에 들어간 것으로 보입니다. 낙태죄 폐지를 기정사실로 하고 먹는 낙태약의 합법화 시도라든지, 이미 그 다음 스텝을 밟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것이죠. 또 한편에선 건강가정기본법을 바꾸어서라도 이참에 가정에 대한 개념 자체를 파괴하려는 듯한 모습까지 보입니다. 어쩌면 다수를 차지하는 여당이 이것을 진작 알고 개정 자체를 무산시켰을 수도 있다는 의심마저 듭니다.
그러나 국회는 헌재가 결정한 대로 입법부로서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형법 낙태죄 조항이 효력을 잃어 국민들이 혼란에 빠지고 태아를 보호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 상황이 너무 안타깝습니다.”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판결 자체에 대해선 어떤 입장이십니까?
“헌법재판소가 7년 만에 다른 판결을 내렸습니다. 합헌 결정을 했던 2012년엔 제가 태아 측 증인으로 참석해 낙태죄 조항이 지켜져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이번엔 헌법재판관들의 생각을 막아내지 못한 것 같아 많이 아쉽습니다.”
“물질주의 만연, 생명체마저 그런 관점으로
분명한 메시지 못 전한 한국교회에도 잘못”
-그 7년 사이 생명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감수성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요?
“원칙이나 기준을 무시하고 저마다 자기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고자 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또 물질적인 풍요로움으로 인해 모든 것을 다 물질주의적으로 판단하곤 합니다. 생명체마저 그런 관점으로 보아, 태아를 마치 배 안을 차지하고 있는 세포덩어리처럼 생각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나의 행복과 만족을 위해 모든 것을 내가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잘못된 인본주의로 우리 사회가 자꾸만 흘러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교회가 반성해야 할 부분도 있을까요?
“저를 포함해 한국교회가 물질주의에 빠져들어 오염되었던 것을 반성해 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교회의 규모나 교인 수에 너무 많은 관심을 보여 왔습니다. 그러면서 정작 중요했던 예수님의 가르침, 곧 한 생명의 소중함에 대해 무관심했습니다. 얼마 전 한국로잔위원회가 이와 관련해 조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과연 얼마나 낙태에 대한 설교와 메시지를 접했는지 알아보기 위함이었는데, 대부분이 지난 30~40년 동안 그런 경험이 없었다고 답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처럼 우리 교회가 생명에 대한 분명한 가르침을 선언하지 못한 잘못이 오늘날 이런 결과를 낳은 게 아닌가 자문해 봅니다.”
“‘태아’로 오신 예수… 매년 4월 1일 ‘생명의 날’
올해는 고난주간과 겹쳐 특별 기도회 갖기로
태아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면…”
-부활절인 오는 4월 4일, 오후 4시 서울 온누리교회에서 ‘생명주일예배’를 드린다고 들었습니다.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님이 의장으로 계시는 한국로잔위원회가 얼마 전 생명에 대한 주제로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그 때 올해 고난주간과 부활절은 태아와 생명을 묵상하는 기간으로 삼자고 의견을 모았고, 부활절인 4월 4일 오후 4시에 생명주일예배를 드리기로 한 것입니다. 그에 앞서 고난주간에는 매일 새벽 태아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저를 비롯해 사단법인 프로라이프의 김현철 고문님과 베이비박스의 이종락 목사님, 행동하는 프로라이프의 이봉화 상임대표님, 온누리교회 이재훈 목사님이 강사로 나서십니다. CCM 가수이신 송정미 님께서는 낙태와 관련된 곡을 불러주실 예정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12월 25일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신 성탄절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보다 약 9개월 전에 이미 태아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급박한 인간 구원의 사명을 가지고 우리 같은 어른으로 오셨어도 되었을 텐데, 태아도 소중한 생명임을 일깨워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 잉태의 시점을 추정해 보니 4월 1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그 날을 ‘생명의 날’로 지키자는 캠페인을 약 30년 동안 펼쳐왔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낙태죄 이슈도 있고, 마침 고난주간과 겹쳐 더 의미 있게 보내자고 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태아는 어쩌면 이 땅에서 가장 작고 연약한 존재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약 그 태아에게 한 것이 곧 예수님께 한 것이라면, 그 동안 있었던 수많은 낙태는 결국 예수님의 살을 찢은 행위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이번 고난주간에 태아가 겪었을 고통, 그로 인해 예수님께서 느끼신 아픔을 묵상하며 회개의 기도를 드리고자 합니다.”
“생명은 수정 순간… 그러나 현실적으로 6~10주안 지지
‘생명 선언문’ 발표했던 국가생명윤리위, 목소리 내주길”
-현재 정부안을 포함해 몇 개의 형법 낙태죄 개정안이 발의된 상태입니다. 그 개정안들 중 낙태 반대 진영은 대체로 임신 6주(국민의힘 조혜진 의원안) 및 10주 이내(국민의힘 서정숙 의원안) 낙태 허용을 골자로 하는 개정안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아마 대부분의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가톨릭 교인들은 그 어떤 낙태도 허용할 수 없다는 입장일 것입니다. 수정된 순간부터 고귀한 인간의 생명이 시작된다고 보기 때문이죠. 따라서 6주 이내 낙태라 할지라도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미 헌법재판소가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고, 또 기독교인만이 아니라 모든 국민들을 아우를 수 있는 법이어야 하기에 현실적으로 그 두 법안을 지지하는 것입니다. 임신 6주는 태아의 심장 박동이 감지되는 시기고, 10주는 전문가 그룹인 산부인과학회의 의학적 판단에 따른 것이기도 합니다.”
-얼마 전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대표단과 함께 국가생명윤리심의위윈회 이윤성 위원장을 만나 형법 낙태죄 조항의 효력 상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내 줄 것을 요청하셨습니다.
“국가생명윤리심의위윈회는 대통령 직속기관으로 제가 직전 위원장을 맡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현직 장관 6명과 민간의 각계 전문가 14명, 총 20명이 위원으로 있습니다. 태아의 생명이 보호받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위원회 측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지만 아직 이에 대한 논의를 했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습니다.
이 위원회는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할 수 있는 낙태 이슈에 대해 국가적으로 유일하게 심도 있는 논의를 할 수 있는 기관입니다. 특히 제가 위원장으로 있던 2016년, 생명존중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그 안에는 ‘인간의 생명은 선물’이라는 표현이 들어가 있습니다. 인간의 생명을 결정할 권리가 인간에겐 없음을 선언한 것이었죠. 인간의 생명은 우리에게 위탁된 것이므로 우리가 그것을 없앨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그 어떤 생명도 이 우주보다 귀한 목적적 존재이기에,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수단적으로 소모되어선 안 된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것을 선언문을 통해 분명히 발표했습니다.
오늘날 낙태 문제는 결국은 개인의 행복추구권과 태아의 생명권이 충돌해 발생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행복추구권은 물론 존중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생명권보다 앞설 수는 없습니다. 생명은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는 가치이기 때문입니다. 위원회의 생명존중 선언문은 그런 생명의 가치에 대한 우리의 더 깊은 성찰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언문을 지킬 1차적인 책임은 다름 아닌 위원회 스스로에게 있을 것입니다.”
“생명의 소중함,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선포해야”
-낙태 문제와 관련해, 한국교회에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요?
“시대와 사조가 바뀌고, 그 때마다 사람들의 생각이 아무리 변한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진리는 절대 변하지 않기 때문이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한 생명이 우주보다 더 귀하다고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전해야 할 책임이 한국교회에 있습니다. 목사님들께서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이 진리의 말씀을 선포해 주시기를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박상은 원장은
고려대학교를 졸업하고 고신대학원에서 의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이후 고신대 의대 내과 교수, 미국 미주리주립대와 세인트루이스의대 교환 교수, 생명윤리학회 부회장, 대한기독교병원협회 회장, 안양샘병원 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2014년 자랑스러운 전문인선교대상 대상을 수상했고, 2015년 2월부터 제4기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안양샘병원 신장내과 1과 과장과 미션원장, 아프리카미래재단 대표, 행동하는 프로라이프 공동대표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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