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은 심리학의 단계에서 시작해서 수학의 단계를 거쳐 의학의 단계에서 극복된다고 한다. 초기 심리학의 단계에서는 전염병에 대한 정보가 없고 사람이 죽어 나가기에 심리적으로 극심한 공포를 겪는다. 모든 생활이 정지되고 제한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병에 대한 전염경로와 감염자에 대한 역학을 파악하며 심리학에서 수학의 단계로 넘어간다.
수학의 단계는 병에 대해 알게 된 의학 지식과 축적된 경험, 통계적 수치를 바탕으로 안전수칙을 만들고 이를 활용하여 제한 된 생활을 회복해 간다. 마지막 의학의 단계는 백신과 치료약이 개발되어 집단면역(herd immunity)에 도달한 때다.
이미 일부 국가에서는 의학의 단계를 바라보며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대한민국은 현재 의학의 단계 직전인 수학의 단계에 있다. 각 단계마다 진행된 정부의 엇박자 대응과 늦장 대응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향후 대처 방향을 알아보고자 한다.
우리나라는 초기 심리학의 단계 대처에서 결정적 실수를 한다. 초기 전염병이 발생했을 때 정부가 할 조치는 외부 유입을 차단하는 일이다. 전문가 단체인 대한의사협회의 반복적인 외부유입차단 권고를 무시하고, 친정부 성향의 교수들의 주장에 귀 기울였다. 전문가의 의견을 무시한 결과, 대규모 확진자를 발생시켰다. 정부는 실책을 반복했다.
수학의 단계에서 정부가 할 일은 정확한 전파경로를 분석하고 수시로 방역수칙을 보완하여 위축된 국민들의 일상 활동 영역을 확장시켜 주는 일이다. 하지만 정부는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 했다. 과도한 공포심만 유발시키고, 사과대신 희생양을 찾아 정부의 실책을 전가시켰다.
정부가 제시한 일부 방역수칙은 과학적이지 못하거나 객관성이 떨어지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지자체마다 형평성없는 행정명령을 남발하여 혼란과 분열을 일으켰다. 잠시 확진자 발생이 주춤하자 임시 공휴일을 만들고 각종 상품권을 남발하여 2차, 3차 환자 발생을 유발시켰다. 백신과 치료약으로 전염병을 극복하는 의학의 단계를 앞당기는 것은 전 세계 국가들의 최대 역점 사업이다. 2021년 2월 현재 세계 79개국에서 백신접종을 하고 있지만, 대한민국 정부는 무슨 생각에 빠져 있는지 백신 확보에 뒷북을 쳤다. 지난 1년 동안 정부의 엇박자 처신과 늦장 대응을 보면 정치방역이라는 오명을 벗기가 어려울 것 같다.
이제 백신접종이 곧 시작된다고 한다. 백신의 종류는 국민이 선택할 수 없고, 접종을 미루면 후순위로 밀려 난다고 한다. 국민에게 접종 참여를 독려하기 위한 발언이지만 이런 방침은 백신의 효과가 비슷할 때에 적용할 수 있는 방법이다. 행정 편의적인 적용과 효과가 다른 제품에 대해 접종을 강요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처음 도입되는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 제품이라고 한다. 이 제품은 노인층과 변이를 일으킨 바이러스에 대해 면역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워 독일, 프랑스, 오스트리아,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네덜란드, 스페인, 폴란드는 65세 미만에게만 권장하고, 이탈리아와 벨기에는 55세 미만에게만 권장하고 있다. 정부에서는 의사들의 판단에 따라 접종을 시행하라고 하지만 일선 의사들은 정부의 실언에 어이없어 하고 있다. 어떤 기준으로 접종을 결정해야 하는지 접종기준도 없이 모든 책임을 의사들에게 전가하는 무책임한 행정을 펼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19 확진자의 99.6%가 경증환자이고, 19세 미만에서는 잘 감염되지 않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1년 2월 14일까지 30대에서 한 명의 사망자가 발생한 것 제외하고는 20대 이하 연령에서는 사망자가 한 사람도 발생하지 않았다. 코로나19의 특성상 70대 이후 기저질환을 가진 노인층이 위험그룹이다. 아스트라제네카 제품은 백신효과를 얻을 수 있는 젊은 층에 접종하고, 위험그룹인 노인층은 효과가 확실하고,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는 다른 백신을 접종해야 한다.
아무리 급해도 실을 바늘허리에 묶어서 사용할 수는 없다. 밀린 숙제하듯 실속 없는 보여주기식 접종은 반대한다. 정치적 결정에 휘둘린 엇박자 정책과 실책을 반복해서는 안 된다. 실제적으로 국민에게 도움이 되도록 객관적이고 의학적인 정책을 펼쳐 주길 바란다.
이명진(성산생명윤리연구소장, 명이비인후과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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