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욱 교수
정성욱 교수

지난 번 에세이부터 조직신학의 인간론 (doctrine of human beings)에 대한 묵상을 나누고 있다. 이번 주에는 인생의 본질과 목적에 대하여 숙고하고자 한다. 특별히 성경 66권 전체와 조직신학의 전 체계를 기반으로 인생의 본질과 목적에 대한 중요한 비유 (parable)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우리 인생의 본질과 목적은 다음과 같은 이미지 언어 (image languages)를 통해 이해할 수 있다. 물론 여기서 인생이란 그리스도인의 인생을 의미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개인적인 주님과 구주로 믿고 영접한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첫째, 인생은 신학교이자 예배의 현장이다. 우리는 평생을 통해 하나님을 알아가도록 창조되었고, 구원받았다. 우리는 인생 전체의 과정을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배워가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온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목적이 바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계시하시려는 것이기 때문이다 (시 19, 롬 1:19-20). 드러나고 계시된 하나님의 영광을 우리는 보고, 알아간다. 단순히 알아갈 뿐 아니라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체험하고, 즐거워하고, 찬양하고, 예배한다. 특별히 우리가 구원을 받은 이후 우리의 삶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아가고, 예배하고, 순종하는 과정으로서 특징 지워진다. 그러기에 우리 인생 자체는 하나님의 영광과 어떠하심을 알아가는 신학함의 과정이고, 예배의 현장이다. 인생이 신학교라는 이미지를 한 차원 더 진전시키면 모든 그리스도인은 신학생이며, 신학자라는 결론에 이른다 (theologianhood of all believers).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가는 과정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아가는 과정이다 (롬 8:29). 더 나아가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욱 깊이 알아갈수록 우리 삶의 모든 영역에서 우리 몸을 산제사 (living sacrifices)로 드리는 참된 예배자 (true worshipers)가 되어간다 (롬 12:1-2). 결국 우리 삶 전체는 예배의 현장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예배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둘째, 인생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valley of the shadow of death) 이다. 인생의 어느 시점, 어느 공간에도 우리는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음을 감지한다. 그래서 주님이 함께 해주셔야 하며, 그래야만 인생으로 인하여 궁극적인 해악을 입지 않는다. 시편 23편에서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4절)이라고 노래한다.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코로나 팬데믹 같이 인생의 어떤 특정한 기간이 특별하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는 기간일 수 있지만, 더 넓게 보면 우리 인생 자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임을 깨닫게 된다. 그렇더라도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우리를 보호하시기에 우리는 인생을 통하여 해를 입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는 (롬 8:28) 놀라운 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셋째, 인생은 실험실 (experimental lab) 이다.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신 재능과 개성을 실험적으로 알아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인생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어떠함을 배워간다. 우리 자신의 죄성과 연약성, 장점과 단점, 강점과 약점, 은사와 재능, 개성과 독특성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우리의 인생은 하나님을 배워가는 신학교이면서, 동시에 우리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가를 확인해가는 실험실이다. 우리의 인생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어떤 존재인지에 대해서 깊이 알아가게 된다. 이 지식은 우리의 현세의 삶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 자신에 대한 바른 지식은 현세를 살아가는 동안 깊은 지혜와 통찰력의 원천이 된다. 동시에 영원한 새하늘과 새땅에서의 삶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왜냐하면 새하늘과 새땅에서도 우리는 각자의 재능과 개성을 따라 살아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넷째, 인생은 유격훈련장 (ranger school) 이다. 인생은 하나님이 당신의 자녀들을 강한 군사들, 영적인 전사들로 세워가는 과정이다. 따라서 매우 고되고 힘든 유격훈련과 같이, 인생은 다양한 고난과 시련들을 통해서 (질병, 인간관계의 실패, 사업의 실패, 경제적 파산, 이혼, 장애 등) 우리를 단련시키는 하나님의 유격훈련장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당신의 백성으로, 자녀로 부르셨지만 동시에 우리를 하나님 나라의 군사로, 병사로 부르셨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딤후 2:3-4). 영적인 싸움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강한 훈련을 견뎌내어야 한다. 바로 우리의 인생이 이 훈련의 현장인 것이다.

다섯째, 인생은 지뢰로 가득한 전쟁터이다. 우리의 인생은 단순히 유격훈련장일 뿐만 아니라, 실재적인 전쟁터 (battle field)이다. 우리는 인생이라는 전쟁터에서 거룩한 영적 전쟁을 수행한다. 공중의 권세 잡은 마귀, 어둠의 권세를 이끄는 사단과의 끊임없는 전투를 수행한다 (엡 6:12-13). 또한 인생이라는 전쟁터는 온갖 유혹과 함정들이 난무하는 곳이다. 우상숭배, 간음, 살인, 도둑질, 거짓말, 탐심 등 강력한 유혹이 역사한다. 잘못 디디는 순간 폭발하게 되고, 생명까지도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지뢰들로 가득한 밭과 같다. 주기도문에서 주님은 "시험에 들게하지 마옵시고"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맞다. 우리는 온갖 시험 즉 유혹에 직면하여 살아간다. 잠시만이라도 한눈을 팔면 즉시로 덫에 걸릴 수 있다. 우리는 이 지뢰로 가득한 전쟁터와 같은 인생을 지나가면서 더욱 더 근신하고,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행보해야 한다 (딛 2:11-14).

여섯째, 인생은 마라톤 경주 (marathon) 와 같다. 우리는 경기하는 자, 경주하는 자들이다.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딤후 2:5). 이 경주에서 승리하는 길은 오직 인내뿐이다. 참고 견디는 것뿐이다. 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아야 승리할 수 있다. 그렇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을 뛰다가 중단하거나 포기하면 그는 패자로 남을 수 밖에 없다. 진정한 승자가 되기 위해서는 일단 완주해야 한다.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견뎌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인생의 경주를 완주케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빌 1:6). 우리가 신실하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동행하면 반드시 승리하게 된다.

일곱째, 인생은 선교현장 (mission field) 이다. 주님이 우리를 불러 당신의 자녀로, 제자로 삼으신 것은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벧전 2:9)는 것이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여, 죄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 인생 전체는 하나님의 덕을 선포하는 현장,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현장 (마 28:18-20),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현장 (행 1:8) 즉 선교의 현장이다. 이 비유를 한 차원 더 진전시키면 우리 삶의 모든 영역이 선교의 현장임을 깨닫게 된다. 우리가 속한 가정, 교회, 일터, 사회, 문화, 국가, 전세계가 선교의 현장이다. 우리가 유지하는 모든 인간관계의 현장 또한 복음 전도의 현장이다. 그런 의미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선교사이다 (missionaryhood of all believers). 어떤 선교단체에 의해서 파송을 받아 풀타임으로 선교사역을 감당하는 전문선교사들 뿐만 아니라, 문자 그대로 모든 그리스도인은 누구도 예외 없이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에 의해 삶의 현장으로 파송된 선교사이다 (the sent ones).

정성욱 교수(덴버 신학대학원 조직신학)

  • 네이버 블러그 공유하기
  • 페이스북 공유하기
  • 트위터 공유하기
  • 카카오스토리 공유하기

<외부 필진의 글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press@cdaily.co.kr

- Copyright ⓒ기독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정성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