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라키아’는 대기권이다
하나님의 창조명령에 따라 물이 원자 또는 분자의 ‘라키아’에 의하여 나뉘어져 대기를 만들었다. 원자 모델에서 원자는 전자가 회전하는 궤도 안에 원자핵이 자리 잡고 있다. 전자의 회전 궤도가 하나뿐이라면, 그 궤도가 원자의 ‘전자껍질’이 된다. 전자의 수가 많으면 회전하는 궤도의 층이 여러 겹이 된다. 그런 경우에는 가장 바깥 전자궤도가 그 원자의 전‘자껍질’이 되다. ‘전자껍질’은 다른 원자의 ‘전자껍질’과 결합하면 더 크고 무거운 원자가 되거나, 원자가 여러 개가 모인 분자를 만들 수도 있다. 원자 단위로 물을 나누면 수소 원자 2개와 산소 원자 1개이고, 물은 그것들이 결합된 분자(H₂O)이다. 물을 분자 단위로 나누면, 미세한 물방울의 수증기가 된다. 분자는 원자의 가장 바깥 ‘전자껍질’이 다른 분자와 나뉘는 표면이 된다. 원자나 수증기 분자들은 기체가 되어 대기를 형성한다. 그렇게 형성된 대기권이 현대인들에게 하늘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라키아’를 하늘이라고 하신 말씀은 물과 물을 나눈 기체가 위로 올라가서 만들어낸 대기권을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대인의 과학적 지식으로 물을 나누는 ‘라키아’의 실체가 원자들의 바깥을 감싸는, 또는 원자를 나누는 ‘전자껍질’이라는 사실을 이해하면, 창조 톨레도트의 둘째 날 하나님이 대기를 만드시는 과정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물론 현대인들은 대기가 산소와 수소로만 된 것이 아니며 더 많은 원자아 분자가 혼합된 기체이고, 지구의 전자기력에 붙들려 있다는 사실을 상식으로 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만 그렇게 원자와 분자의 기체로 만들어지는 대기가 지구의 하늘이라는 뜻이다. 현대과학적 관점에서 ‘라키아’를 이해하고 보면,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있는 물을 예로 들어 설명하셨지만, 모세가 알아듣게 말씀하지 아니하지는 아니하셨다. 하나님은 둘째 날에 그때부터 현재까지 존재하는 지구의 대기권을 만드셨지만, 모세는 당시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는 지식을 갖추지 못했다.
하나님이 둘째 날 지구에 하늘을 만드신 것은 매우 특별한 계획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그 특별한 계획은 생물에게 호흡, 특히 최종적으로 인간의 호흡을 위한 것이다. 생물의 호흡에는 산소가 필요하다. 여기서 유물 진화론자 오파린이 『생명의 기원』에서 물질이 화학적 진화에 의해 처음 생명체가 만들어졌던 원시 대기에는 산소가 없었다는 주장을 반박할 필요가 있다. 원시지구에는 이미 바다와 태양이 있었다. 그렇다면 태양이 생긴 이후 바닷물에서 증발한 수증기의 산소가 대기 아닌 다른 곳으로 갔다는 말인가? 오파린의 주장을 입증했다고 알려진 유리-밀러의 유기물 생성 실험도 산소를 제거한 시험관 안에서 생겨난 몇 개의 아미노산을 증거라고 해석한 것이었다.
‘라키아’의 실체가 대기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남은 문제는 모세의 창조 톨레도트가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 되었고, 오늘날에도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고 말하는 일부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없지 않다는 것이다. 아직도 그런 믿음을 강요하는 근본주의자들은 천동설이 사실이라고 우기는 고대 히브리인들과 같은 수준의 인식을 하고 있다. 그들은 코페르니쿠스와 갈릴레이가 지동설을 주장한다고 박해했던 중세 로마가톨릭교회 신자들과 다르지 않다. 실재하지 않았던 ‘라키아’를 하나님이 만드셨다고 주장하는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마술쟁이로 생각하거나, 하나님의 창조를 거짓으로 믿는 사람들이다. 현대과학적 지식으로 ‘라키아’를 이해하면, 하나님이 하신 말씀은 사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라키아’에 대한 모세와 근본주의자들의 이해는 사실과 다르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
어느 목회자가 기독교 신앙이 모세가 서술한 ‘라키아’를 문자대로 믿어야 한다고 강변한다면, 현대 기독교인들의 선택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이다. 첫째는 그런 목회자를 시대에 뒤떨어져 무지하다고 불신하거나, 또는 과학적 지식이 없는 사람으로 배척한다. 둘째는 하나님의 창조 톨레도트를 문자대로 믿을 수 없어서 교회를 떠난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창조에 대해 사실과 다른 지식을 가지기를 원하실까? 기독교인들이 그의 이름이 걸린 교회를 떠나기를 원하실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그런 목회자와 신학자들의 몫으로 남을 것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유다왕국 시절에 이미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복을 구하는 자에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사65:17)는 말씀을 전했다. 하나님의 창조를 잘못 가르치는 자는 하나님을 믿는 소자를 잘못 가르쳐 실족케 하는 자와 다름없다. 공관복음서 3곳에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그런 ‘소자 하나를 실족케 하는 자는 연자 맷돌을 목에 매고 바다에 빠지는 것이 나으리라’고 경고하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현대 기독교인들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때이다.
우주에서 지구는, 다른 행성과 달리, 매우 복잡하게 만들어진 생태계가 특별히 잘 보존되고 있다. 그런 사실을 안다면, 지구의 기원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지구에서 생물, 특히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수적인 물과 대기권이 그 대표적인 예다. 따라서 지구는 우연히 존재하는 행성이 아니라, 누군가 인간을 위하여 특별히 창조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강력한 근거를 가지게 된다. 사도 요한에 의하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지구에 직접 임재하여 생태계와 생명체를 창조하셨다. 바로 그분이 모세에게 지구의 창조 사건을 환상으로 보여주신 주 하나님이시다.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과학자들이 제안한 것이 인본 원리(Anthropic Principle)다. 인본원리에 의하면, 지구가 인간의 생존이 가능한 조건으로 운행하는 것은 우주상수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미세조정(fine-tuned)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 정도로 미세조정된 우주상수가 저절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을까? 오히려 기독교의 창조주 하나님이 그런 우주를 창조하셨다고 믿는 것이 더 합리적이지 않을까? 그동안 우주 탐사에 열을 올리고 있는 미국 NASA 팀이 지구처럼 풍부한 물과 대기권이 보존되고 있거나 지구와 같이 생명체가 존재하는지를 탐색했으나, 그런 행성을 아직도 확실히 발견하지 못했다. 최근에 케플러 우주망원경 탐사작업에서 지구와 비슷한 환경을 가진 행성이 발견되었다는 보도가 있었으나, 그곳은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곳에 생물이 살고 있다고 해도 지구의 인간들과 다르다면 우리와 별 상관이 없는 일이다. 우리는 지구에서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창조주로 믿고, 그를 따르는 기독교인들이다. (계속)
허정윤 박사(알파창조론연구소, 창조론오픈포럼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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